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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Dec 03. 2024

엄마가 니 친구야???

헤어 싹둑 VS 가출

이제 나 안 해!!!


  꽃내음이 퍼지고 숲이 초록으로 우거지는 아름다운 그때, 띠~이이이용~~~ 나는 뒤통수를 맞는 전율을 느꼈다. 나름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절벽 끝에 매달린 가느다란 잡초끄트머리를 붙잡고 서있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럼 어떻게 하지? 다시 잘해보자! 정신 차리자~' 자꾸 머릿속으로 되새기지만 그게 한 달, 두 달, 유난히 더운 여름을 맞이하며  선포하게 되었다. "이제 나 안 해!"


  어디 명함내밀정도는 못되지만 나름 코로나시기와 더불어 엄마표로 전전긍긍하며 안간힘 쓰고 열심히 살았다.

  가족수대로 도서관 상호대차를 신청하여 카트를 끌고 책을 이고 지며 날랐고, 하루에 2시간씩 목이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책 읽어주는 지혜로운 어머니, 신사임당인양 코스프레를 떨며 살았다.  

  돈이 없어서 사교육을 못 보내는 게 아니고 책 읽을 시간을 벌기 위해 학원에 안 보내는 거라며 자기 위안을 하며 직접 엄마표영어를 배워가며 매일 조금씩 그렇게 했건만 아이들의 실력이 나아지는 눈 씻고 비비고, 워~ 워~ 여유를 갖고 아무리 찾아봐도 모래에서 진주 찾기였다. 

  휴가를 가도 싸들고 가서 영어책을 읽히며 열정적인 엄마인척했다.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엄마표영어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사실 난 영포자이다. 그래서 더 잘해보고 싶었고, 티칭이 아닌 코칭으로 잘해보려 했지만 내가 그 코칭의 마무리인 암기를 못하고 무작정 읽기만 하다

허송세월 보내다 보니
6학년이 되었다.


  즉 1년도 남지 않은 예비 중학생이었다. 예민하고 느린 아이인 딸을 보고 있자니 예비중학생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예비중학생 학부모라는 초조함으로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무기력함으로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나마 읽던 책도 멀리하고, 미라클 모닝 알람은 꺼버린 지 오래이고  갱년기라도 찾아온 듯 아이들 등교를 챙겨주기 위한 마지노선의 시간에 간신히 일어나 겨우 콘후레이크에 우유를 말아 먹이고 학교를 보냈다. 서서히 이러는 내 모습을 보자니 나 자신도 한심해 넋두리하기 바빴다. 

바뀌고 달라지고 깨트리는 것이 아닌 자꾸 점점 내 안에 동굴, 긴 터널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극도로 예민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엄마는 [인사이드아웃]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작아졌지만 불안의 최고봉이었기에 눈을 치켜뜨고, 귀를 기울여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일어서지지가 않았다.

  느슨한 엄마의 뒤로 아이들은 어느새 핸드폰, 패드의 세계에 빠져 주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으라 고래고래 소리를 쳐도 수백 번을 불러야 하고, 심지어 볼일 보는 것조차도 시간이 아까워 참고참다가며, 이마저도 패드를  팔에 끼고, 핸드폰을 입에 물고 엉거주춤 바지를 내려가며 화장실로 행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는 천불이 났다.

  그러다 참고 참다 참을 인자를 팔십구 번쯤 하다 결국 그 한 번을 못 참고, 말끝마다 떽떽대고 논리적 인척 하나하나 말대꾸하고, 송곳처럼 찌르는 체리의 말투에 폭발하고 만다.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랬지?
엄마 말이 아주 우스운 줄 알아???
엄마를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하랬지
엄마가 니 친구야?
그만큼 해줬으면 적당히 해~~~ 알았어???


  하루는 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앉혀놓고 훈계를 하고 정정할 것을 가르쳤다. 물론 고상하고 우아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 핵폭탄이라도 터지듯이 쫠쫠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역시나 딸아이는 격분하며 참는 듯하더니 조금뒤... 


나 머리 자를 거야!
그래! 니 머리 네가 알아서 하는 거지~ 자르고 싶으면 잘라!


  다음날 미용실에 가자고 할 줄 알았다. "어깨만큼만 자르자~" "십 센티만 자르자 그 정도가 젤 예쁜 헤어라인이야!" 해도 절대 싫다고 결단코 거절했던 아이였건만 허리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던 그 머리카락을 잡고 댕강 잘라버렸다.

 야! 뭐 하는 짓이야?


 그 순간 반대쪽 머리도 잘라버렸다.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싹둑싹둑 가위질이 되고, 엄마 보란 듯이 자르는 모습을 보니 혈압이 터져 올랐다.

 야!!! 엄마 나갈 거야!
 너네 맘대로 해!


  내 눈으로 저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며 흥분된 마음을 씩씩거리며 집을 나와버렸다. 사춘기와 갱년기 엄마의 심리전의 서막이 열렸다.


엄마가 이긴듯했지만...
사실 승리의 깃발을 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출 후 갈곳 없이 방황하는 건 십대만이 아니었다.
그 와중 뭘 그리 아깝다며 청승을 떠는지... 드라이브하면 주유비, 카페에 가면 커피값을 걱정하며... 사실 돈보다는 그러고 혼자 있는 내 모습이 다른사람에게 들키기라도할까봐 그게 더 초라할지도...
그래서 결국 차에 주구장창 처박혀 시동도 안 키고 핸드폰만 하고 있는 현실이...
금요일 밤, 다 늦은 시각 불러낼 사람도 없는 아줌마의 현실에 더 빡쳐버렸다.

이 시간 찾을 사람은 내 전 남자친구,
그 사춘기 딸내미의 아비뿐이었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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