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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Jan 22. 2024

그분이 오신다.

5시 30분까지 작전 수행!

  토요일이다! 느슨하면서도 제일 분주한날이다. '아침부터 빨래 널었고, 청소기는 돌렸어~ 오케이!' "아침 뭐 먹을래? 봉봉~ 자장밥! 체리는 멸치밥! 이거 다 먹고 양치하고 알았지?" '그럼 토요일이니까 나도 마실 한번 댕겨오자!'하며 볼일을 보러 나간다. 그리고 땡땡땡 3시가 되어 집으로 부리나케 들어온다. 집에 오니 부엌은 이미 만신창이다. '5시 30분에 그분이 오시니... 빨리 하자! 정신 차리고.... 차분하게 뭘 할지 순서를 정하고 요~이, 준비~ 땅!'

다행히 어젯밤에 냉동실 화석을 꺼내놨다. 뭔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풀떼기라는 건 확실하다. 엄마가 손수 고이고이 뜯어서, 한 땀 한 땀 다듬고 삶아서 한 봉지씩 담아 얼려준 사랑의 결실이 드디어 쓰일 때가 왔다. 우리 집이 템플스테이도 아닌데 절밥을 좋아하는 크리스천, 정월대보름도 아닌 그냥 겨울이건만 풀떼기에 환장하는 분이다. 

메뉴는 정해졌다. '꼬랑내와 풀떼기' 김치를 꺼내 송송 썰고 반찬으로 먹을 김치도 골라 이쁘게 담아본다.

'앗! 육수코인이 떨어졌다. 젠장~ 잔머리 쓰지 말고 무조건 냉털이다.' 육수팩 꺼내 보글보글 끓이고 김치 투하!

벌써 색깔부터 맛있을 예상이다. 녹여놓은 청국장 넣고, 아이들이 골라내지 못하게 불린 표고버섯을 아주 작게 썰어본다. 마늘 넣고 두부 넣으면 끝! 난 복잡한 거는 딱 질색이니 이쯤 하고 약하게 불을 줄여 쿨하게 내버려 둔다. 요리의 솜씨는 거들뿐, 재료가 좋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맛없으면 내 탓이 아니라며...

그럼 다음선수 입장! 봉다리를 하나하나 뜯어 종류대로 담아준다. 좀처럼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다. 넌 시래기, 넌 두릅, 넌 머위냐? 모르겠다 그냥 풀떼기, 뽕잎 같은 넌 두릅? 뭐냐??? 에잇! 뭐 쌉싸름하고 뭐 어찌 댔든 건강한 먹거리니까 그냥 무치기로 한다.

그릇에 마늘 크게 한 숟갈씩, 매실 한 숟갈씩, 들기름 두바쿠씩? 깨알이 이사이에 끼는 걸 싫어하시는 그분이기에 깨를 곱게 갈아 시래기만 빼고 모두 한 숟갈씩 시원스럽게 넣어준다. 그리고 넌 고추장 2, 넌 된장 1에 고추장 1, 그리고 얜 국간장 콸콸, 마지막으로 볶음소금 살살살 뿌리고 조물조물 쫙쫙 짜내듯이 주물러준다.

현명하다 자뻑을 하며, 소금, 고추장, 고추장+된장무침순으로 맛이 섞이지 않게 하나씩 클리어하고 마지막으로 요리의 완성 깨소금을 솔솔 뿌려준다. 깨소금을 싫어하는 그분이지만 요리의 완성은 깨소금이니까!(사진 찍어야 할 거 아녀~ 나도 살고 보자!) 그리고 시래기를 다시 빨래 쥐어짜듯 비비고 주무르고 문대서 프라이팬에 볶고 들깻가루까지 파파팍 뿌려준다.

그럼 '골라먹는 재미' 풀떼기 4가 완성된다. 근데 뒤돌아보니 싱크대는 폭발직전이다. 전쟁의 흔적을 남기지 말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자취를 감추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짜증 내고 투덜거릴 틈이 없다. 작전개시! 부랴부랴 설거지를 하고 따땃한 물을 끓이고, 그분이 좋아하시는 조밥으로 쌀을 씻어 안친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그분이 오신다. 하루종일 한 끼도 못 먹어 지칠 때로 지쳐 넋다운되기 직전, 청국장 향수와 나물을 무친 들기름 냄새에 심폐소생술이 되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씻고 나온다. 그때를 노려 굴비를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면 미션 성공!

이쁜척하고 그릇 하나하나 담아주면 완전 미션클리어이다. 봉봉님도 배고픔에 못 참다 청국장에 두부를 건져먹으며 그분을 기다리다 지쳐간다. 이왕 한 거 오늘은 풀서비스다. 굴비 하나하나 발라 살덩어리만 먹기 좋게 놓아주면, 피곤에 몰려와 툴툴거릴만한 그분이 먹는 맛에 빠져 개눈 감추듯 밥 두 그릇을 밀어 넣는다.

디저트 먹을 배도 안 남기고 그릇을 싹싹 비운다. 일주일 고생했으니 나름 만찬을 갖다 바친 거다. 2시간 동안 준비하며 정리한 수고가 값진 보람이 되어 맛있게 먹으니 아주 뿌듯하다. 뒷정리를 하며 한번 먹을 청국장 뚝배기와 소분을 하여 냉동실에 처박는다. 언제 먹을지 모르지만 긴급함의 대처수단으로...

"근데... 이번주 계속 집밥 먹었으니 내일은 제발 사 먹자! 응? 나도 내일은 파업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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