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목수를 했다면 어땠을까?”
오래된 나무로 짠 새 베이킹 작업대 위에 붉은색과 짙은 고동색을 섞은 오일 스테인을 바르며 수욱에게 물었다. 옆에서 아내가 혼자 먼지가 잔뜩 뭍은 옷을 입고 붓질을 하든 말든 옆에 앉아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던 수욱은 이미 너를 잘 알고 있다는 어투로
“아마 그랬으면 이미 손가락이 두어 개쯤 잘렸을지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과자를 만드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전공했던 인테리어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했던 인테리어 회사를 1년쯤 되던 해에 이건 내 길이 아니라며 완전히 접어버린 사람의 뒤늦은 미련이다.
퇴사 후 어떤 길이 내 길인가 고민하던 나는 별생각 없이 손재주만을 믿고 과자점을 열었다. 그리고 9년이나 과자 만드는 일을 했지만 얼마 전 매장 영업을 종료한 참이다. 그렇다고 과자 만드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은 아니다. 대신 과자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과자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과자를 만들어 파는 일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과거의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지만 스물여섯의 나는 한 가지가 싫어지면 전부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고작 1년 동안 한 회사에 다녀봤을 뿐인데 아예 업 자체를 바꾸어버렸으니.
여하튼 과자 만드는 사람이 되었어도 인테리어에 대한 사랑만은 남아있어서 과자점을 운영하는 동안 세 번의 가게 이사를 할 때마다 인테리어 공사를 모두 반 셀프로 진행했다. 공사해 주시는 분께 모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기술만을 도움받는 방법이다. 공사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하는 게 즐거웠다. 갈수록 경험도 실력도 쌓여서 이번에는 설계부터 페인팅, 타일 붙이기, 그라인딩, 오일스테인 바르기까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모조리 직접 하는 중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에 몇 시간씩 노동에 가까운 일을 즐겁게 하고 있자니 문득 과거의 선택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고 해야 할까. 다니던 회사는 상업공간을 주로 설계하던 곳이었는데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은 여차하더라도 잘 가지도 않던 영화관과 호텔 로비를 설계하는 게 죽도록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싹싹하지 않은 성격으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하는 것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봤다면 인테리어를 아주 그만두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텐데, 이를테면 주택 설계를 주로 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면? 홈스타일링 블로그나 유튜브에 도전해 봤다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면?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마침내 목수가 되었다면? 하는 질문까지 다다라 수욱에게 툭 하고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상상 속에서 이미 목수가 되어있었던 나는 수욱의 무심한 듯 다소 잔인한 말을 듣고는 내 손가락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주 목수 분들이 나무를 자를 때 사용하던 무자비한 테이블 쏘에 대한 감상과 내 손과 팔에 가득한 화상 흉터와 다리 곳곳의 멍을 동시에 떠올렸다. 수욱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꽤나 덜렁이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자주 오븐에 데고, 칼에 베이고, 손 팔 할 것 없이 화상흉터 및 상처를 곳곳에 만들지 않았던가. 게다가 작업대에, 냉장고 문에, 심지어 설거지를 정리하다가도 부딪혀 멍을 만들기 일쑤였다. 과자를 만드는 일을 해서 다행이네.
나무를 만지는 일이 위험하다거나 과자 만드는 일이 덜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걱정과 후회가 많은 사람의 자기 합리화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막연하게 남았던 미련이 간사하게 녹아 사라졌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은 내 선택이 꽤나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불안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딱히 엄청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살기만 하는데도 중요한 것만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날들이 꽤 자주 온다. 그런 선택은 왠지 잘못하면 안 될 것 같아 버겁다. 왜 그런지 꼭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아마 욕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잘 해내고 싶어서, 그래서 이루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게 많아서 선택을 잘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선택이 어렵다. 상반된 두 가지를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욕심이라던데 모든 것을 가지는 선택 같은 것은 없어서.
과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들은 부드럽고 달고 말랑하다. 그래서 걔네들은 대체로 너그럽게 군다. 치명적이지 않아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맛을 내어준다. 그렇게 욕심이 많아 불안해하고 실수하는 내가 안심할 때까지 가만히 만져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부드럽고 달고 말랑한 직업이 나에게로 와주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