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큰아들과 여행을 가게 된 것이 자랑스럽고 기뻐서 마음이 들떴다. 어느새 이렇게 커서 ‘같이 여행하는 날도 오는구나’ 하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에 감사했다. 아들과 단 둘이 여행을 간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어색하면 어쩌지’ , ‘할말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생각해 보지 못한 고민이 생겼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가끔은 있었던 것처럼 착각이 든다. 괜한 미안함에 억지로 기억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큰아들 역시 아빠와의 여행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아빠는 열심히 살았다. 가족을 위한 충실함과 책임감이 넘쳤다. 그래서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이 마음 속 가득 맴돌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도 아들과 아빠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생활의 내용도 다르다. 아빠는 큰아들을 보면서 자신을 닮아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세상살이의 느낌이라는 것이 다 그럴 것이다. 최선을 다 했다는 것만으로 용서받을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순간 순간이 소중해지는 이유는 그 조차도 느끼기 어려운 현실의 각박한 삶 때문이다.
“아빠는 아들을 사랑한다. 그 마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찾아 갈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절제되지 않는 분노를 띄운 채 악마 같은 모습일 수 있고 어떤 때는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헌신적인 모습일 수 있다.”
때때로 애처로워 가슴이 아플 때도 있을 것이고 때때로 이렇게 잘 커 준 것에 자랑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아빠가 어떤 모습을 보이던 분명한 것은 아빠는 늘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일지도 모를 그 사랑 때문에 아빠는 미안함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 설사 그것이 아빠 가슴속에만 일렁이는 작은 감정으로 끝날 지라도 여전히 아빠는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
아들도 살짝 마음의 문을 연다. 민감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그런지 표현되는 것 보다는 속으로 숨기는 감정이 더 많다. 겉 표현만으로는 좋다는 것인지 싫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가깝지만 먼 사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많았지만 아들에 대해 말할 것이 거의 없다.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빠는 관념적인 삶을 살아 가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정작 현실 속에서 잘 살아 가고 있는 아들만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아들과 소통되지 않은 이유는 아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빠에게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고도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의 미련한 사랑이 문제였다.
누구는 자식 때문에 등허리가 휜다 하고
누구는 자식 때문에 힘을 얻는다 한다.
자식의 생활이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세상을 열어 주고 싶은 것이다.
자식으로 인한 수많은 노고와
앞으로도 치루어야 할 대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으로 인해
이미 넘칠 만큼 보상받고 있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