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아들에게 살아 있는 감정

by 라이프스타일러

"아빠!! 못난 아들 때문에 지난 한달 간 고생 많았어. 한달 동안 같이 아침 먹고 차에서 좋은 말 해줘서 정말 고마워. 아침마다 05시30분에 일어 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 날 위해서 귀찮아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가 정말 대단하고 아빠 같은 사람이 나의 아빠라서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해. 항상 사랑하고 그 동안 진짜 고마웠어!"


아빠의 갑작스러운 발령이 문제였다. 아이들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온 가족이 서둘러서 새로운 발령지로 옮겨 가야 했다. 살아 가야 할 집은 급한데로 어찌어찌 얻게 되었다. 서두른 덕분에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이사도 마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큰 아들의 전학은 중학교 때와는 전혀 달랐다. 큰아들은 그 동안 재미를 붙이고 정이 많이 들었던 같은 반 친구와 헤어지는 걸 너무나 힘들어 했다. 고등학생부터는 전학을 가야 하는 학생이 스스로 학교를 찾아 가서 전학을 해야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일일이 찾아 다녀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전학이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둘째인 중학생과 셋째인 초등학생은 전입신고와 동시에 전학이 이루어졌다. 큰아들은 학교를 알아봐야 하는 문제로 시간이 필요했다. 큰아들은 방만 얻어 준다면 혼자라도 떨어져서 살아 갈 듯 기세 등등하게 전학을 거부했다. 우리 부부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들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혼란한 일들이 모두 아빠의 책임인 것만 같았다. 무어라 표현 못할 미안함이 가득 밀려왔다.

서산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매일 새벽 5시30분에 큰아들을 깨워서 75km떨어진 천안의 고등학교까지 통학을 했다. 아이들은 이전에도 아침을 먹고 다녔기에 한 시간 더 일찍 떠나야 했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에는 늦을 것 같고 가서 아침을 먹으려면 별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 해장국 집, 뼈다귀 집, 감자탕 집, 설렁탕 집 등을 두루 찾아 다녔다. 아들과 매일 아침식사를 했다. 집에서는 매일 똑같은 아침을 먹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건만 사서 먹는 아침은 이틀을 이어서 먹기가 부담스러웠다.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늘 다른 집을 찾아 다니느라 아침마다 분주 했다. 아들을 데려 다 주며 둘이 함께 하는 동안 아빠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져 갔다. 아빠는 스스로 마음을 타일렀다. '혼자만 이야기하는 것은 대화가 아냐, 그건 강요야’ 가급적 절제하면서 최소한으로 말을 아꼈다.


아들이 옆에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졸면 그냥 그대로 졸게 놓아 두었다. 그 순간 역시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의 피곤함에 지쳐 한없는 졸음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아들을 보며 아빠는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되 뇌였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아빠의 인생을 그리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의 모습을 주입시키려 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 많이 다르지 않은가?


아빠는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아들은 대형마트 점장의 아들이다. 아빠는 모든 것이 결핍된 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얻어 가야 했다. 아들은 말만 하면 이루어지는 환경 속에 살아 가지 않는가? 아들러가 이야기했듯이 아빠에게 주어진 환경은 결핍이 일상적인 열등의식으로 가득 찬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들은 열등 의식을 느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적어도 아들의 입장으로는 볼 때는 그렇다.


아빠는 스스로의 삶을 부단히 바꾸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친 삶을 살아왔는데 어떻게 그런 아빠와 순탄한 삶의 아들이 공감될 수 있겠는가?”


오랜 시간 자동차로 달려서 목적지 근처에 도착을 해서 함께 음식점을 찾고 함께 식사하면서 함께 TV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아침을 먹었다. 어느 덧 아빠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살아오면서 아들과 단둘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가족을 위한답시고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렇게 아들과 소원하게 지내는 것이란 말인가 하는 회한이 들기도 했다. 아들이 1학년 8반이고 몇 번이라고 했지. 아빠는 아들 친구 이름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에도 몇 번이나 억지로 물어보고 외웠었는데도 도무지 이름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왜 기억이 연결이 되지 않고 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지 알 길이 없다.


아빠의 출근 시간은 길기만 했다. 불과 7분이면 도착하는 회사를 무려 150km를 돌아 3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아들을 등교시키려고 집을 나서면 이제 막 뜨고 있는 해를 정면으로 맞아야 했다. 서산이 서쪽이니 천안인 동쪽으로 가자면 정면으로 해를 보고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서에서 동으로 이동을 해야 하니 선택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썬 글라스를 써도 정면으로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은 도로를 삼켜 버릴 때가 많았다. 속도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험난한 길을 뚫고 갔다. 다시 돌아올 때는 쏟아지는 졸음을 억지로 까뒤집으며 이겨내야 했다. 아들과 함께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난 후 운전대를 잡으니 졸음을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험난한 날들이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쯤 드디어 아들이 말을 꺼냈다. "아빠, 나 아무데나 학교를 옮겨 줘. 맨날 일찍 일어나니까 학교에 가서 계속 졸아서 힘도 들고" 때마침 전학 갈 학교도 연결이 되었다. 아빠는 서산으로 오면서 따라오지 않겠다는 아들을 달래면서 약속한 것이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이사를 가서도 전학은 하지 않겠다. 네가 충분히 준비가 되고 마음이 정리된다면 그때 전학을 시켜 주마” 그때가 된 것이다. 전학을 했는데 역시 아들 다웠다. 인성이 좋아서 그런지 적응도 잘하고 학교도 재미있게 다녔다. 그런 모습에서 아빠는 참 다행스럽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 저놈은 공부만 빼면 참 나무랄 데가 없어!"


아빠가 바라보는 아들은 언제나 애처로워 보였다. 아들과 식사하면서 맛보았던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아빠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고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들과의 추억을 행복한 감정으로 가득 채우는 시간이었다.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던가? 흐르는 물과 같이 사랑은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내리 흐를 수밖에 없다. 천륜이기 때문이다.


부모들 중에는 아이를 향해 거슬러 오를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모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천륜을 거슬러 오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부모 스스로 자식이 자신과 같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부모는 자식의 살아 있는 감정을 겨우 엿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누구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


시작할 때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생계를 이유로 미루어 왔는데

성장해 가는 아들의 모습 속에서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보육이 중요했을 때의 엄마는

가히 신과 같은 존재로

한없는 안전함과 풍족함으로 아들을 품었다.


이제 그 아들이 정체성을 찾아 가고 있고

한층 성숙해지면서 아버지가 나설 차례가 됐다.


아들의 인생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생길의 정신적 친구인 아버지


자신이 지나 온 그 길을 보며

상처받는 날들을 줄여 주고 즐거울 수 있도록,

가만히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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