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자가 캐나다로 영어공부를 하러 오기까지
시험 낙제 후 막학기로의 도피, 그리고 또다시 취준 정면승부에서 벗어나 조교로의 도피. 나의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함께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미련 갖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 또한 대단하다고들 했지만 아마도 그저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시작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별생각 없이 쉽게 시작했기에 끝맺음 또한 별생각 없이 했을지도 모른다.
조교 생활을 하면서는 취준을 병행했다. 이것저것 찌르기만 몇 번을 하다가 그래도 공부한 것이 아까워 회계 관련 자격증들을 취득했다. 그러나 상경계열 전공이 아니다 보니 쉽지 않은 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수포자가 될 때 영포자로 살아가며 한국에 살면 영어가 필요 없을 거라 자만했던 어린 날의 나는 초중고와 대학을 거쳐 취준시장까지 결국 많은 기회에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그땐 한국에 살면 더욱더 영어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건지 외면했던 건지 모르겠다.
이후 대학교 예산기획 부서에서 두 번째 일을 시작했다. 조교 시작 후 약 5개월 후 진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무기계약직이었다. 계약직도 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저 비전공자로 회계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 순간의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처음엔 모든 게 너무 좋았다. 캠퍼스의 분위기도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도 마치 두 번째 대학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학식과 교식을 먹고 점심시간이면 캠퍼스를 돌며 고양이들을 보러 다니고 퇴근 후에 왁자지껄하게 술자리를 즐기는 모든 것들이 즐거웠다. 많이들 369에 고비가 온다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나의 고비는 1년이었다. 열심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무언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무기계약직이 계약직처럼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처럼 급여와 직급이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쯤 자각했던 것 같다. 보통은 직장을 들어가기 전에 고려해야 할 항목인데 일단 시작하고 다니면서 생각하는 걸 보면 유별나게도 성격이 급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정규직 채용공고에 약 4번 정도 지원했다. 필기시험과 2차 면접에 이르는 채용과정에서도 영어면접이 있었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외워 읊는 것으로 한 번은 최종면접까지 가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1차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준비했지만 역시나 인생은 뜻대로 되진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도전 끝에 나는 또다시 다음을 준비하지 않은 채 퇴사했다. 약 2년 3개월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직장이 끝이 났다.
이후에는 원 없이 놀다가 미친 토익으로 영어점수를 만들고 퇴직금을 모두 써버릴 때쯤 세 번째 직장을 들어가게 되었다. 운이 좋게 관련 경력이 없었으나 진짜 회계를 하는 재무팀에 입사할 수 있었다. 백지상태인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주신 팀장님과 참으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대단한 동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부가 아닌 내부의 한계에 부딪혔다. 외국계 투자자와 영어에 능숙한 동료들과 마주하며 서른이 되어서도 난 결국 영어란 장애물 앞에 멈춰서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이번에도 또다시 얼떨결에 선정된 캐나다 워홀을 핑계 겸 기회로 삼아 다시 또 2년 3개월 만에 나는 세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 캐나다에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