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13화

거스러미에 대한 알바의 처세

by 수경

“우울증은 심각하게 의욕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려면 상당한 생존 욕구가 필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유머 감각이 회복의 가장 강력한 척도이며 그것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가장 강력한 척도이기도 하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민음사, 632쪽)

상태가 안 좋아지는 계절이 있다. 나는 만물이 소생한다는 이즈음이 그렇다. 밖에서야 적당한 명랑함을 유지하니 내 상태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공적인 인간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요즘 어디에서나 자신의 심리와 정서를 방패로 내세우는 일이 흔하다. 사적으로야 보듬어야 하고 보듬을 수 있지만, 매번 조직에 부담을 전가하는 건 결국 모두가 괴롭다. 살아오면서 겪은 연이은 불운을 잠재우고,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 상실과 짜증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은 명랑함의 유지다. 공적 명랑함, 적당한 명랑함.

서점 앞에서 두 사람이 ‘활력 있게’ 싸운다. 서로 억울한 모양인지 소리가 점차 커진다. 한참을 그러다 한 사람이 누그러지고 상대도 잦아든다. 화해로 마무리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라진다. 소리치며 싸우는 게 건강할지도 모르겠다.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사람들은 싸우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활력이 없는 걸까, 자기애일까. 며칠 전의 일이 떠오른다. 전화를 길게 하는 후배가 있다. 인생사의 어려움, 이를테면 연애, 육아, 가족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었는데, 자영업자가 된 후의 근심사는 ‘알바생’이다. 알바생이 모든 악의 근원 같다. 잦은 지각, 전화나 문자로 통보하는 그만두기, 태만한 태도 등등. 이런저런 조언을 했더랬다. 그날의 통화도 주제는 비슷했다. “시키는 일만 하나 몰라요. 요즘 애들은 주인의식이 없어요.” “시키는 일은 하네. 그걸 잔소리처럼 말하지 말고, 근무일지에 체크하는 식으로 하라니까. 주인의식은 주인인 너만 있으면 되지, 알바에게 무슨 그런 걸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배는 화를 냈고 통화는 종료되었다. 후배는 알바 얘기를 할 때마다 내가 알바 편을 든다고 생각해서 야속했을 터였고, 나는 주인의식이란 단어에 뜨악했다.

살면서 사용자(주인, 갑)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교수, 교장, 임원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마인드가 되었다. 사용자는 자연스럽겠지만 내게는 의문이었다. 사장이 되면 나도 그 입장으로 생각하게 될까. 번듯한 아파트 한 채만 가져도 경비원에게 갑질을 해대는 이도 흔한 세상이다. 갑은 갑으로서의 입장이 좋을까? 일단 되어야 알 수 있겠다. 후배는 다시 전화할 것이다. 내가 먼저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먼저 할까. 사실, 나는 긴 통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그걸 내색해 본 적도 없다.

알바와 사장에게는 각자의 세상이 있다. 알바라서 참을만한 일도 있고, 알바라서 참아야 하는 일이 있다. 사장이라서 참을 수 없는 일도 있고 사장이라서 견뎌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손톱 ‘까시레기’ 같은 일이 있다. 중요하지 않지만 계속 깔짝거리는 …. 요즘 내 안의 까시레기. 우선, 손님이 찾는 책을 찾을 수 없을 때 나풀거린다. 새로 들어온 책, 옮겨진 책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들 때 한심스럽다. 그 한심함이 서가의 책 배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 책이 저기에 있는 게 맞아.” 그러다 책 밑에 나부끼는 글씨들도 들어온다. “왜 어떤 책들에만 설명이 있지. 판매를 위한 것인가, 편애인가. 아, 글씨체가 다르네. 몇 사람의 것인가. 통일성도 없고 미적이지도 …” 두 번째 거스러미, 쓰레기통이다. “쓰레기통은 왜 늘 가득 찰까? 청소도 하고 책상자도 버리는데 쓰레기통만 왜? 청소는 오전 알바의 업무 아닌가?” 그러다 근무일지를 살펴보았다. 업무 항목에 쓰레기통 비우기는 없다! 쓰레기통이 가득 차는 이유다.


세 번째 거스러미는 서점에 들어서면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나무 상자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어서 건너뛸 수가 없다. 이건 내 심리 상태 때문이 아니라 꽤 오래 거슬거리는 물건이다. ‘도서구입목록’이라고 쓰인 종이 묶음이 나무 상자에 들어 있다. 초창기 서점 구성원의 아이디어였을 터이다. 일을 시작할 때 인수받지 못했고, 한참 지난 후에 처리를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 아마, 초기 멤버들은 아날로그적이라며 환호했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의 전산화가 이루어진 것이 1990년대 초중반이니 수기로 작성하는 카드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오류, 에러지 싶다. 목적은 단골 확보와 답례였을 것이고, 그건 모든 고객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어쨌건 알바를 시작할 때 전해 듣지 못했고, 나 역시 후임 알바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손님 중에는 카드를 꺼내 작성하기도 하고, 보상에 대한 문의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할인받았다는 손님의 말을 들었다(어?!). 나는 문의하는 손님에게 카드를 다 작성하시면, 후일 출판된 책을 드릴 예정이라고 말하곤 했다. 뭔가 다르다! 무엇보다 나는 단골손님에게도 카드 작성을 권해드린 적이 없으니, 죄송스러운 일 아닌가.

한동안은 포스에 고객정보를 입력해 볼 궁리를 하기도 했다. 입력할 고객정보도 없고 내 능력으론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자리를 차지하고서 나를 맞는다. 뗄 수 없는 거스러미는 두통을 유발한다. 전자교탁이나 책꽂이가 사용자 입장에서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제품의 기획자와 사용자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다. 반면에 냉장고나 세탁기의 기능은 날로 좋아져서 사용자도 만족스럽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서 개발과 보완이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노동과정에서 소외를 만든다.

내가 사장이 되면 어떨까? 생각만으로 별로다! 규격, 청결, 통일성에 집착할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테일러리즘이나 맥도날드화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그런 노동방식이 대세가 된 것은 나 같은 사람의 집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악덕하진 않더라도 깐깐한 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오, 사장보단 알바가 낫다! 사장은 접기가 힘들지만, 알바는 빠르게 접을 수라도 있으니 말이다. 알바의 이직이 잦은 이유는 처우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 거슬거슬함, 마음의 거스러미 때문은 아닐까. 그걸 제거하려는 마음은 주인의 마음 아닌가. 하지만 주인(사장)이 좋아할까. ‘까시레기’를 만날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합리화한다. “주인의식, 개나 줘버려. 넌 알바잖아. 대충 넘어가, 대충.” 요즘 나의 처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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