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갔다. 고물고물하던 여리고 약한 것이 어느새 저리 장성하여 군인이 되는가 싶다. 존재만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이쁜 것이 그 하나다. 편파적이라고 하겠지만, 편애 아닌 사랑이 어디 있으랴.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리다.
그즈음 여름휴가를 대신하여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을 읽었다. 알다시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의 ‘기능을 멈추러’ 가던 일주일의 시간과 그 이후의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 가난과 간결함과 견결함에 한동안 먹먹했다. 조카가 그런 길을 떠난 것도 아닌데, 포개지는 마음이 우습기만 하다. 역사를 설렁설렁, 그마저도 오래전 배워 안중근 선생은 이토 히로부미로만 연관검색이 된다. 그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고, 지역의 유지였으며, 집안이 신실한 천주교도였으며 선생도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잊는다. 지난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이었는데, 선생의 거사는 그 전의 일이었다. 선생의 형제와 어머니가 걸었던 독립운동의 길과 선생의 처자식이 걸었던 진창의 길을 생각한다. 선생과 함께 하얼빈으로 향했던 담배팔이 우덕순의 길을 그려본다. 먹먹하다.
노무현시민센터가 문을 연다. 정식 개관 전에 그곳에서 작은 영화제를 했다. 영화도 볼 겸 방문했다. 소담하게 동네와 어울렸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다큐 영화인데,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영화는 안중근 선생의 거사 이후 우리의 역사를 관통한다. 시민센터 3층 카페에선 궁이 보인다. 전망 좋은 카페가 막막함을 조금은 잊게 했다. 사진에 보이듯 1층에서 카페가 있는 3층까지 서가를 통해서도 이동할 수 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서가에 책을 배치하는 봉사를 하고 싶었지만, 서점 오는 날과 겹쳐 신청을 못해 아쉽게 남았다.
김훈 선생은 소설이 감당하지 못한 일을 후기와 주석, 작가의 말에 담았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였던 이들을 역사는 감당했을까, 우리는 감당했을까. 군대 가기 전날 좋아하는 고기를 먹던 조카에게 마음의 준비는 되었냐고 물었다. “고모, 군대 가도 준비가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곳이 군대인가. 군대 간다고 해서 넷플릭스에서 <D.P.>를 봤다고 했더니, 뭘 그렇게 극단적이냐며 웃었다. 책은 거의 한 권도 안 읽는데, 참 이상한 곳에서 해박한 그 녀석의 지식의 많은 부분은 유튜브에서 왔을 것이다. 책을 안 읽어도 이쁜 녀석이 꽃길만 걸길 바란다. 안중근이 걸었던 청년의 길 말고. 나란 인간은 참 모순적이다.
“작은 서점을 하면 어떨까?” “왜 책을 팔려고 해? 잘 팔려?” “그럭저럭.” “임대료와 인건비는 나와?” “글세…”. “책을 팔고 싶은 거야, 돈을 벌고 싶은 거야?” “어?” “그걸 정해야지. 노후 대비로 돈을 벌고 싶으면, 스터디 카페를 해. 그게 훨씬 좋을 걸.” “스터디 카페?” “고모는 보통 어른이랑 다르니까, 나 나올 때까진 하지 말고!” “….” 조카와의 마지막 대화다. (우리 조카 건드리면 다 죽는닷!)
서점에서 책을 살피다가, 책 등만 보고도 단박에 알았다. 바우만! 평전이 나왔다. 그의 평전이나 해설서를 써보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배움이 짧아 빠르게 포기했었다. 같은 생각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 책의 세계는 대개 이렇다. 하얼빈의 먹먹함과 조카 입대의 아리움을 바우만을 야곰야곰 읽으며 덜어내 보리라. 편애가 참 좋은 것일 때도 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이유도 없이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아리고 먹먹한 마음까지도 설렘으로 바꾸어주니 말이다. 오래오래 편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