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15화

말들이 둥둥 사람 사이를 떠다닐 때

by 수경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노라면 지나간 사람들이 생각난다. 책을 매개로 이러저러한 모임을 했던 탓이다. 한동안 모임의 인간 유형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욕망이 굴뚝같았던 적도 있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웬만하면 쓰지 않아야겠다고 접었다.


시간도 내 기준으로 흐르고 세대에 대한 관념도 나 중심이다. 연배가 한참 어린 친구들과 있으면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어떤 감’이 올 때가 있다. 비슷한 세대이지만 선배인 사람들을 만나면 견고한 시간 속에 놓인다. 변화와 견고함 사이를 오간다. 생경함과 편안함, 내게 세대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나이 들수록 아랫세대와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상당한 정도의 검열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동년배와 이야기하는 것도 마냥 편하지 않다. 삶의 지향이 다르니 딴 세상 이야기일 때가 많다. 윗세대와 이야기하면 간혹 귀가 쟁쟁거린다. 성격 탓에 맞춤한 대화상대는 그리 멀다. 그러나 말의 섞임(對話)은 분명 쾌락의 하나다, 그것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 사람 사이의 교감은 말로 이루어지니 책 모임이 좋았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나는 모임을 하면서 사람을 조금이나마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독서 모임은 주제가 있고 옆으로 새다가도 제 길로 돌아올 수 있어서 좋다.


소요서가에서 신간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1달 1권 읽기 프로젝트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나누는 시간은 코로나 이후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의 새로운 모임이기도 했다. 직업상 읽은 책에 대해 혼자 떠들기도 한다. 그 역시 때때로 즐겁다. 하지만 말의 어울림 차원에서 독서 모임은 강의나 강연과는 다른 밀도의 쾌락이 있다. 작은 숲을 거닐거나 큰 숲을 헤매는 느낌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속에서 자드락길을 걷는 것 같을 때도 있다.


5월의 책은 사회학자 신진욱의 『그런 세대는 없다』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세대 담론이 거세다. 저자는 글머리에서 ‘꿀 빨아먹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세대를 다른 세대가 ‘꿀 빨아먹은 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일 터이다. 꿀 빤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세대담론은 그렇게 진행되어 온 측면이 있다. 현재도 ‘86 용퇴론’이 존재한다. 세대와 세대 담론의 실증성을 규명하는 책이다. 앞서 나온 <***의 세대>, <세습 *****>보다 실증적이라 좋았다. 그 책들은 정치와 정치 담론을 주장하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읽히는데, 이 책은 부제에서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오히려 정치색은 덜하다.


모임의 참석자들은 나와 다른 세대였다. “대단히 다른 시대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회집단들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혹은 거꾸로 말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회집단들이 전혀 다른 시대 경험과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대론의 가장 근본적인 시대상황이다.”(『그런 세대는 없다』, 63~4쪽) 각기 다른 세대, 계급, 젠더가 모여 세대 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저자는 ‘꿀 빨았다’는 말에 감정이 격해졌던가 보다. 내게도 그런 단어가 있다. ‘선비질’이 그랬다. 그 앞에 ‘10’이 붙여진 단어를 듣고 한번 놀랐고, 의미를 알고 나서 나자빠졌다. 몸이 아닌 의식이. 훈장질, 진지충, 틀딱충 등등. (나는 어쩌나 벌레가 되었나?!) 충격의 좋은 점도 있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말이 짧아졌다. 수업도 짧아졌다. 나쁜 점? 잔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어색하다. 할 일은 하지 않은 것만 같다.


어쨌거나 말들이 둥둥 사람 사이를 떠다니는 건 좋다. 막말, 헛소리, 개소리, 욕설은 아무리 떠다녀도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튕긴다. 튕겼음에도 흔적은 남긴다. 꿀 빤 세대, 10선비질처럼. 둥둥 떠다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닿고 다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내리다가 손짓이 되고 몸짓이 된다. 열락의 체험이랄까? 그 때문에 어울려서 독서모임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을지로를 ‘힙’한 곳이라고들 한다. 3대쯤 살아야 서울 사람이라니 서울 사람이 아닌 나는 ‘힙’과 ‘핫’의 차이를 모르겠다. 서점에 들른 선배에게 삼겹살을 먹자고 했다. 3층 테크에서 1층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젊은 친구들이 줄 서서 먹어. 먼저 가서 주문해. 문 닫고 갈게.” “힙이고 나발이고 왜 돈 주고 길바닥에서 고기를 먹냐?” 아, 이 선배도 힙을 모르는군! 선배와는 멀쩡한(!) 고깃집에서 늦은 저녁을 했다. 언젠가는 ‘길삼’, ‘골삼’을 먹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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