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산은 유서 없이 우리에게 남겨졌다.”(르네 샤르)
내가 전면적으로 카드를 쓰게 된 시점은 대략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니 10년이 되지 않았다. 별일이 없다면, 점심 먹고 각자 계산했다. 여럿이 앉아서 밥을 먹고 계산은 각자…. 어색한 풍경이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대부분 카드로 계산했는데, 나는 만 원을 냈다. 그 시절엔 만 원이면 점심 한 끼를 해결하고 남던 시절이었다. (물가는 계속 오른다!) 카드가 일반적이란 걸 알게 되면서 나도 카드로 대체했다. 돈을 싫어하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좋았다.
서점에서도 현금으로 책을 사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백 명에 두세 명 정도이지 싶다. 젊은 사람일수록 마그네틱 카드보다 스마트폰을 내미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 나는 돈을 싫어한다. 확실하게 깨닫게 된 건 알바 때문이다. 서점 문을 여닫을 때 개시시재와 마감시재를 알바일지와 포스기에 입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서랍에 있는 돈을 세어야 한다. 나는 목장갑을 끼고 세거나 볼펜으로 들춘다. 돈을 만지기 싫어서 그렇게 한다! 돈을 만진 후에는 씻거나 닦거나 한다. 과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내 가난의 이유를 생각하곤 한다. 이리 돈이 싫으니 돈이 오겠나. (돈이 싫은 거 맞나?)
이사를 했다. ‘책과 이사’를 소재로도 원고지 100장은 쓸 수 있겠다면, 이 역시 가난이 초래한 일이므로 생략하고….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금고를 깨야 하는 일이 생겼다. 경제개발기였던 그 시절엔 금고가 유행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우표 수집도 취미(?!)셨다. 우표책이 10권이 넘었다. 아버지의 취향이었다가 보다 시대의 산물로서 금고도 보유하고 우표수집도 하셨던 것 같다. 금고 번호를 남기지 않았던 탓에(사실, 누구도 금고에 관심이 없었다) 수리업자를 부르고 어쩌고 하다가 결국은 깨는 단계까지 갔다. 시멘트와 철로 이루어진 금고라니! 금고 속에는 별것이 없었다. 집문서와 아버지가 남긴 잡다한 물건이 있었다. 인감도장, 반지, 작은 금붙이, 그리고 돈뭉치와 만년필 몇 개…. 돈이 뭉치이긴 했지만 오 백원 권이었다. 옛날옛적에 내가 받았던 용돈이었다. 한 장만 남기고 우표첩과 돈뭉치는 거래할 수 있다던 조카에게 주었다.
유일한 새 물건은 만년필이었다. 영수증도 있어서 가격도 알 수 있었는데 고가였다. 내 것이 분명했다. 졸업식에 오고 싶어 하셨다. 애도 아니고, 무슨 졸업식이냐고 오만 짜증을 냈었다. 예상보다 학위 받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시간은 흘렀고, 나도 졸업식에 가지 않았고, 아버지는 금고 속 만년필을 잊었다. 만년필은 탐내는 이에게 갔다.
아버지의 헌 지갑과 낡은 만년필, 쓸 수 없는 인감도장과 지폐 한 장은 내 차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용돈을 새 돈으로 주셨다. 내게 돈을 주실 때는 늘 새 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러운 돈을 이해하지 못한다. 돈은 돌고 돌아도 새 돈이어야 하지 않나. 내가 돈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장애 여성이 과학자로 성장한 이야기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읽다가 내 자존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지를 잠시 생각했더랬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헤겔의 세계>를 쓴 위르겐 카우베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의 산책길에서 철학적 대화를 시작했고, 1980년 대학입학자격시험 합격선물로 <헤겔 전집>을 선물해 준 부모를 말한다. 이런 할아버지와 부모를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있나? 수년 전 곳곳에 남겨진 고택을 탐방한 적이 있었는데, 함께했던 지인들과 ‘고택관리인’인 자손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지 못한 고택을 아쉬워하던 막돼먹은 자식들이다. 하지만 막돼먹은 방식으로 가끔 아버지를, 부모를, 선조를 기억한다. 서점에는 몇 종류의 전집이 있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다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시라. 최근 도서출판B에서 나온 <세계철학사> 세트도 있다. 내가 갖는 건 쉬운데, 줄 사람을 궁리하려니 약간 고달프긴 하다. 돈을 좋아하고 돈의 축적을 궁리하는 삶도 피곤했을 것 같다. 자기합리화란 이런 것!
르네 샤르의 저 멋진 문장은 한나 아렌트의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서문 첫 문장이다. “산 자들에게 의미 있는 행위는 죽은 자들로부터만 그 가치를 찾는 법이며, 오직 그것을 계승하고 그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텍스트도 책도 서점도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떤 틈,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 같다. 서점 알바생은 유산관리인이자 양도인일지도 모르겠다. 이반 일리히의 <누가 나를 쓸모 없게 만드는가>를 사가던 어린 학생의 인사. “잘 읽겠습니다.” 그 인사에 빙그레해졌다. 처음 들어본 인사말, 마음이 환해지는 마지막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