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18화

코로나 4년, 두 개의 아르바이트

by 수경


서점에도 개강‘빨’이 있다. 3월 초에는 전공 서적을 사러 청년들이 찾는다. 제법 두꺼운 번역서들도 나간다. 이를테면 헤겔의 정신현상학Ⅰ·Ⅱ 같은. 그 손님들의 특징이라면 필요한 책을 고른 후에도 서점을 찬찬히 오래 둘러본다는 것. 계산하면서 속으로 축원한다. “잘 읽어요, 끝까지!”


나도 개강했다. 서점 알바 이틀, 대학에서도 하루 알바를 한다. 알바 인생! 이번 학기는 2학년 과목인데, 4학년도 몇몇 있다. 마스크 없이 강의실에 들어간 것이 4년 만이다(감격!). 코로나 4년이 지난 것이다. 그사이 나는 빈혈이 생겼고, 열심히 치료했다. 마스크 착용이 나의 질병을 알려주었다. 숨이 찼다. 자주 두통에 시달렸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마스크 쓰고 강의할 때 힘들었다. 숨이 차면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딱 죽을 것 같았는데, 늙음을 탓했다. 늙어서가 아니라 피가 모자란 탓이었다. 피, 아주 중요하다. 공부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랄라~” 잘 먹으면서 공부하자!


칸트 씨의 말이다. “그릇되게도 우리는 건강 상태를 연속적인 안녕으로 본다. 그렇지만 건강 상태는 오직 간헐적으로 (언제나 그 사이에 들어서는 고통과 함께) 서로 잇따르는 쾌적한 감정들로부터 성립하는 것이다. 고통은 활동의 자극제이고, 이러한 활동 중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생을 느낀다. 이러한 고통이 없다면 생기 없는 상태가 들어설 터이다.”(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아카넷, 280쪽)

코로나 4년은 1학년이 4학년이 되는 시간이었다. 4학년생을 보니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표 내지 않았다. 서점에서 나는 친절하다, 못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강의실에서 나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어본다, 아니 짜낸다. 상당히 어색하다. 괴상해 보일까. 서점에서 나는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물론 물어보면 말씀을 드리기는 한다. 하지만 고객이 충분히 ‘물건’을 둘러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 마치 없는 것처럼. 강의실에서 나는 읽을 책을 선정하고, 좋은 책이니 꼭 읽으라 권한다. 줍기와 베끼기는 용서치 않겠다고 협박도 한다. “제발, 좀 읽어. 잘!”


서점에서는 작은 눈동자를 만난다. 강의실에서는 한꺼번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그 눈동자들은 2003년생이라고 했다. 약간의 충격이 밀려왔다. 이제 강의실은 온전히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코로나 4년의 결과다. “미안하다, 나는 20세기 사람.” 건강 문제든 세대 문제든 읽기 문제든 문제가 없다면, 고통이 없다면 쾌도 생도 없다고 칸트 씨가 말씀하셨다. 그의 말을 믿어보자!


같은 20대라고 해도 강의실에서 만나는 20대는 학생이고, 서점에서 만나는 20대는 고객이다. 학생과 고객 사이는 실로 엄청나다. 전자는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지만, 후자는 응대해야 할 손님이다. 서점에 앉아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잘 안/못 듣는다고 짜증 내지 말고/가르치려 하지 말고 손님처럼 친절하게 대했으면 더 좋았을까. 모르겠다. 가르침에는 친절함뿐만 아니라 절제와 용기, 규율도 필수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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