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예보가 안 좋았던 어느 토요일. 서점에 발길이 끊어질 시간 한 가족이 들어섰다. 두 딸과 엄마와 아빠. 누군가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이라고 하겠지만 내게 4인 가족은 꽉 들어찬 느낌, 화목함으로 다가온다. 작은 서점에 네 명이나 들어섰는데 그 가족은 꽤 조용했다. 엄마와 아빠는 각자 자신의 관심 영역에 서서 책을 보고 있었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큰 딸은 여기저기로 돌면서 책들을 만졌다. 예닐곱쯤으로 보이는 작은 딸이 문제였다. 조용한 가족이니 나 역시 조용히 있는 편을 택하고 계산대에 앉아서 책을 봤다. 꼬맹이가 나를 응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아이의 이목을 끌만한 책도 없었고, 언니나 엄마를 방해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아이에게 관심이 가는 건 나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없지?” 개미만 한 목소리였고, 마스크도 쓰고 있었는데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질지도 몰라.” 분명 안 들렸을 텐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지? 계산대 옆에 있던 ‘알바용 간식’이 생각났다. 한입 크기의 비스킷 중에 가장 큰 비스킷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들렸다. 바로 까거나 하지 않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한참 각자의 코너를 지키던 가족은 책 한 권을 골라서 계산대로 모였다. 아빠가 책과 카드를 건넸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였다. 조용한 가족이었기에 누구의 선택 도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꽤나 다정한 아빠로 보였다. 토요일 오후, 조용한 가족은 종묘 나들이를 했을 수도 있다. 가까이 있는 ‘힙’한 곳도 돌아보고 저녁도 먹고 서점‘까지’ 들리는 아빠 혹은 엄마. 어느 서점에서든 그 가족은 그렇게나 조용했을 것이다. 꼬맹이는 서점 밖에서 내게 손을 흔들고 나서야 과자를 깠다. (감동!)
아이는 보여주는 만큼, 보여주는 대로 자란다. 값비싼 경험이나 저렴한 경험이나 아이에겐 다 같은 경험으로 인지적, 정서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문화자본과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나는 ‘아비투스’가 인간이 드러내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각자의 시간이 녹아있는 실천감각이자 심리적 성향이면서 사물들에 대한 판단이고 선호체계의 형태다. 물론 돈뿐만이 아니라 문화자본이나 아비투스도 상속되고 유전된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진단이었다. 하지만 아비투스는 숙명이 아니라 성향들의 열린 체계, 잠재성의 체계다. 이를테면 재미없는 서점에서도 조용함을 유지하며 다른 가족을 기다려줄 수 있는 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서 우리의 행동은 아비투스가 어떤 상황과의 만남 속에서 현재화된 결과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주말이다. 학령기의 아이가 있다면 동네에 있는 작은 서점에도 들러보시라. 사랑, 다정함, 배려, 협력적 소통 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마음에 있을까. 서점 오가는 길과 그 길에서의 작은 몸짓과 대화 속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한 가족은 다정한 가족이 될 것이다. 세상이 다정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