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19화

사장님과 친구

by 수경

서점에서 사장님과 사장님의 친구, 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사장님 친구들은 다들 책을 잘 사신다. 사장님의 지인이 ‘오시는’ 날은 매상이 좋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친구님!) 매상이 좋아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약간 씁쓸하기도 하다. 사장님을 보면서 씁쓸하게 깨달은 바가 있다면, 서점은 하지 않겠다는 것! 서점에서의 알바는 좋지만, 서점 주인은 괴롭다. 장사가 공짜로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장님에게 지인과 친구가 많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비슷한 연배인데 아는 사람이 나와 다르게 많다. 대체로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은 서점을 하는데도 학연이 작동하는 것일까. 나는 그럴만한 관계도 없고, 무엇보다 연줄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문제적으로 보는 편이다. 그러니 서점 주인도 될 수는 없겠다. 부를 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고, 서점에 놀러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이 아주 슬프다!) 서점 영업으로 서점은 운영되지 않는다. 자세히 알면 머리가 아프니까 일단 넘어가자.


어느 목요일 사장님이 친구와 등장하셔서 담소를 나누셨다. 그러더니 문득 나에게 ‘소요서가’가 영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다. “왜 제게 그런 걸?”이라고 하자, “가방끈이 기니까.”라고 하셨다. 가방끈이 길긴 하지만 영어 전공자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닌데…. 그리고 소요서가는 SOYOSEOGA 아닌가. 그래도 사장님 친구분이라 생각하는 척하다가 하던 일을 했다. (아뿔싸!) 잠시 후 서점을 나가시던 친구분이 다시 확인하신다. 민망해하며 “네?”라고 하는데, “다음에 올 때까지 알아두세요.”하고 가셨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와 관련이 되겠지. 산책길? walk, promenade? go for a stroll? walk on a bookshelf? walk through a soyo? walktopia? 소요소요소요? …………… 머릿속 소요사태! (아오, 사장님, 아니 사장님 친구분, 나빠욧!)


사장님 친구분의 질문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헤테로토피아Les Hétérotopies>를 꺼내 들었다. 유토피아Utopia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한다. 이에 반해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미완의 개념이다. 이 장소는 현실화된 이상 공간이자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이며, 다른 장소들에 이의제기도 하고 장소를 전도시키는 장소다. 다락방, 목요일 오후 엄마 아빠의 침대, 묘지, 사창가, 휴양촌….

“어떤 인간 집단이든 그것이 점유하고 실제로 살고 일하는 공간 안에서 유토피아적인 장소들liex utopiques을 구획하고, 그것이 바삐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유크로니아*적인 순간들moments uchroniques을 구획한다.”(푸코,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12쪽)

코로나 시절, 반도 안에 격리되어버린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휴양지 그리고 각자가 발견한 도심의 자드락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의 가장 오래된 장소를 정원”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도서관의 서가나 서점도 그런 장소다. 그래서 서점도 산책길이 되고, 망중한을 즐기게 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최첨단 자본주의사회에서, 유튜브 등 디지털문화가 대세인 세상에서 서점이 헤테로토피아가 아니라면 어떤 곳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겠는가.


peripatetic + heterotopia = 소요서가peripatetopia. 사장님 친구님, 요것이 저의 최선의 답입니다. 질문은 사절, 책은 많이 사주세요!

[* 유토피아가 ‘현실에 없는 장소’라면, 유크로니아는 ‘현실에 없는 시간’을 의미한다. 유토피아/유크로니아가 헤테로토피아/헤테로크로니아와 대립관계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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