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17화

커플 혹은 짝으로 오신 손님

by 수경

혼자 와서 책을 보고 나가는 손님들도 있지만, 짝으로 오는 손님도 상당하다. 친구끼리 오는 경우가 대다수고 가끔은 엄마와 딸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엄마와 딸이 오면, 엄마가 계산하니 그것도 좋다. 딸도 없고 엄마도 없으니 내 신세가 가엾기도 하고….

아무튼 어떤 짝이든 커플은 알콩달콩하다. 특히나 연인의 경우는 더 달달하다. 커플이 오면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목요일 저녁, 한 커플이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여자가 책갈피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했더니 “위안이 되는 문구네요.”라고 했다. 칸트의 그 문장을 위안으로 받아들이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뒤돌아보며 짝에게 그랬다. “네 지성은 집에 두고 와, 회사가 그래!” 아, 그런 회사나 상사가 있지, 아직도 있나? 그렇다면 칸트 문구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짝은 짝의 말에 화끈하게 욕을 해주었다. 역시 짝은 좋은 것!


여자는 자신이 읽고 좋아하게 된 책을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고 남자에게 말했다. 그 책이 <타인의 고통>, <중력과 은총>이었다. 여자는 요즘도 시몬 베이유를 읽는다며 남자에게 권했다. 남자는 푸코와 데리다를 좋아했‘었’다고 했다. “유명한 사람들이네.” 여자가 말했다. 커플에게 이 작은 서점은 둘이 걷는 숲이 아닐까. 그들은 책의 숲을 걸었다. 이 숲에서 커플의 주선으로 수전 손택과 시몬 베이유,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가 만났다. 만나서 교유(交遊)할 수 있을까. 커플은 한참을 구경하다 나갔다. 교보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몇 백 권이라고 했다. 아, 이 작은 서점의 경쟁자가 교보라니?!


20대 초반의 두 친구였다. 서가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책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독서 여부와 책에 대한 평이었다. 그러다 문고판 책들이 꽂힌 서가에 이르러 한 친구가 “이 시리즈 다 갖고 싶어.”라고 했다. “다른 문고판도 괜찮지만 이 출판사 것이 좋아.” “문고판이 좋아요?”라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도움이 많이 되던데.” 그의 말에 다른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골라든 책 중에 두 권은 다시 서가에 꽂아두고, 다른 세 권과 친구의 두 권을 계산했다. “같이 계산하실래요?”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어, 고마워요. 형.”이라고 했다. 친구가 아닌 선배였구나. 용돈은 늘 부족할 테고, 책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리라. 책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 문고판을 읽었던 적이 내게도 있었지. 훑어보니 요즘은 훨씬 잘 만드는 것 같다. 구조적이고 압축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책값도 상대적으로 싼 문고판! 좋은 문고판 많이 많이 만들어주세요(출판사에게)! 구경하러 자주 오고 많이 읽어요(책손님에게)!


서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몇 가지 편견이 깨졌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속설, 20대 남자는 더 안 읽는다는 속설. 서점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므로 이곳에 있으면 책 사는/읽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이건 내게 행운 같다. 그냥,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가진 속설의 증거는 대략 다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20~30대 여성은 거의 모든 ‘고급’ 대중문화와 ‘교양’의 ‘지킴이’들이기도 하다. 인문학 강좌,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영역은 20~30대 여성이 주도한다. 예컨대 교보문고의 2015년 젠더별-연령대별 ‘구매 독자’ 분석에 의하면, 전체 독자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층은 20대 여성〉30대 여성이고, 이를 40대 여성〉40대 남성〉30대 남성〉20대 남성이 뒤따른다. 각 연령대 안에서 남녀의 비율은 각각 다른데, 10대 남성은 10대 여성에 비해 무려 4배 정도나 책을 안 사고, 20대 남자는 20대 여성보다 3배 정도로 안 산다. 이런 남녀 간 격차는 30대나 40대에 2~1.5배 정도로 완화되고 50대 이상(이는 물론 무척 낮은 비중이다)에 이르러서야 비슷하거나 역전된다. ‘구매 독자’ 중 남성은 32~34%에 불과하다. 즉 ‘책 사 읽는’ 남자는 여자의 반밖에 안 된다. 오늘날 책 읽기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보라. 교보문고 구매 독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지만 그 결과는 한국 젠더문화의 중요한 사실을 연상시킨다. 이는 ‘일베’와 ‘혐오’로 표상되는 남성문화, 그리고 20~30세대와 50~60세대의 문화적 격차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천정환, 촛불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 창비, 2020, 25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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