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와서 책을 보고 나가는 손님들도 있지만, 짝으로 오는 손님도 상당하다. 친구끼리 오는 경우가 대다수고 가끔은 엄마와 딸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엄마와 딸이 오면, 엄마가 계산하니 그것도 좋다. 딸도 없고 엄마도 없으니 내 신세가 가엾기도 하고….
아무튼 어떤 짝이든 커플은 알콩달콩하다. 특히나 연인의 경우는 더 달달하다. 커플이 오면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목요일 저녁, 한 커플이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여자가 책갈피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했더니 “위안이 되는 문구네요.”라고 했다. 칸트의 그 문장을 위안으로 받아들이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뒤돌아보며 짝에게 그랬다. “네 지성은 집에 두고 와, 회사가 그래!” 아, 그런 회사나 상사가 있지, 아직도 있나? 그렇다면 칸트 문구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짝은 짝의 말에 화끈하게 욕을 해주었다. 역시 짝은 좋은 것!
여자는 자신이 읽고 좋아하게 된 책을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고 남자에게 말했다. 그 책이 <타인의 고통>, <중력과 은총>이었다. 여자는 요즘도 시몬 베이유를 읽는다며 남자에게 권했다. 남자는 푸코와 데리다를 좋아했‘었’다고 했다. “유명한 사람들이네.” 여자가 말했다. 커플에게 이 작은 서점은 둘이 걷는 숲이 아닐까. 그들은 책의 숲을 걸었다. 이 숲에서 커플의 주선으로 수전 손택과 시몬 베이유,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가 만났다. 만나서 교유(交遊)할 수 있을까. 커플은 한참을 구경하다 나갔다. 교보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몇 백 권이라고 했다. 아, 이 작은 서점의 경쟁자가 교보라니?!
20대 초반의 두 친구였다. 서가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책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독서 여부와 책에 대한 평이었다. 그러다 문고판 책들이 꽂힌 서가에 이르러 한 친구가 “이 시리즈 다 갖고 싶어.”라고 했다. “다른 문고판도 괜찮지만 이 출판사 것이 좋아.” “문고판이 좋아요?”라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도움이 많이 되던데.” 그의 말에 다른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골라든 책 중에 두 권은 다시 서가에 꽂아두고, 다른 세 권과 친구의 두 권을 계산했다. “같이 계산하실래요?”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어, 고마워요. 형.”이라고 했다. 친구가 아닌 선배였구나. 용돈은 늘 부족할 테고, 책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리라. 책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 문고판을 읽었던 적이 내게도 있었지. 훑어보니 요즘은 훨씬 잘 만드는 것 같다. 구조적이고 압축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책값도 상대적으로 싼 문고판! 좋은 문고판 많이 많이 만들어주세요(출판사에게)! 구경하러 자주 오고 많이 읽어요(책손님에게)!
서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몇 가지 편견이 깨졌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속설, 20대 남자는 더 안 읽는다는 속설. 서점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므로 이곳에 있으면 책 사는/읽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이건 내게 행운 같다. 그냥,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가진 속설의 증거는 대략 다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20~30대 여성은 거의 모든 ‘고급’ 대중문화와 ‘교양’의 ‘지킴이’들이기도 하다. 인문학 강좌,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영역은 20~30대 여성이 주도한다. 예컨대 교보문고의 2015년 젠더별-연령대별 ‘구매 독자’ 분석에 의하면, 전체 독자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층은 20대 여성〉30대 여성이고, 이를 40대 여성〉40대 남성〉30대 남성〉20대 남성이 뒤따른다. 각 연령대 안에서 남녀의 비율은 각각 다른데, 10대 남성은 10대 여성에 비해 무려 4배 정도나 책을 안 사고, 20대 남자는 20대 여성보다 3배 정도로 안 산다. 이런 남녀 간 격차는 30대나 40대에 2~1.5배 정도로 완화되고 50대 이상(이는 물론 무척 낮은 비중이다)에 이르러서야 비슷하거나 역전된다. ‘구매 독자’ 중 남성은 32~34%에 불과하다. 즉 ‘책 사 읽는’ 남자는 여자의 반밖에 안 된다. 오늘날 책 읽기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보라. 교보문고 구매 독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지만 그 결과는 한국 젠더문화의 중요한 사실을 연상시킨다. 이는 ‘일베’와 ‘혐오’로 표상되는 남성문화, 그리고 20~30세대와 50~60세대의 문화적 격차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천정환, 촛불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 창비, 2020, 25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