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21화

날씨와 책

by 수경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일하는, 야근이 없어서 왔다는, 너무 오고 싶었다는 손님. 낮게 흐르는 음악도 좋다며, ‘이 장소’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그녀는 신간과 예술 분야의 책 일곱 권을 사서 나갔다.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되니 자주 오라고 했다. 야근이 없다면, 책을 다 읽으면 또 오겠다고 했다. 야근이 잦은 직장인, 야근이 없더라도 책 읽을 시간은 많지 않으리란 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습득했다. 그녀가 나간 뒤에도 서점에는 온기가 있었고, 그 온기를 타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2번이 흐르고 있었다. 찬바람이 시작된 날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알바를 하면 할수록 서점의 매출은 미궁이다. 언제가 가장 적기인지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은 장사가 좀 되나 싶었는데 이번 금요일은 손님이 아예 없기도 하고, 서점으로 들어오는 손님이 다른 날에 비해 현저히 많은 날에도 매출이 꽝인 날도 허다하다. 우리 서점의 알바생들은, 아마도 모두가 사장님 걱정을 하며 아르바이트비를 받기도 할 것이다.


암튼, 날씨가 화창한 날에 유동 인구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태풍이나 폭우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올여름 태풍에는 개점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물기와 습기는 책에 해롭다. 우산에 책가방까지 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눈 오시는 날은? 그건 날마다 다르다. 서점 알바를 처음 했을 때, 불(화재) 걱정을 했더랬다. 참, 별걱정이다. 이제 나는 모든 날씨가 걱정인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어머니 같기도 하다. (걱정 할미가 웬 말인가?) 비가 와도 걱정, 눈이 와도 걱정, 미세먼지도 걱정, 한파도 걱정, 폭염도 걱정….

그러나, 서점 알바가 아닌 애서인일 때는 그 모든 날들이 좋았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와도 오는 대로, 미세먼지는 더더욱, 한파는 이불속에서, 폭염에는 수박 먹으며, 그렇게 집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애서인은 가끔 이런 상상을 했더랬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함박눈이 시작되었다. 살금살금 걸어야 하고 인적도 드물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내린다. 향이 곱게 내려앉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처럼 온통 눈으로 덮인 작은 마을에 갇혀 쌓아 둔 책과 얼마간의 먹거리를 소진하며 지내는 꿈. 별걱정보다는 상상이 낫군.


사람들은 어떤 날씨에 책을 더 많이 읽을까. 더 사고 싶을까. 쓸데없는 질문인가. 날씨가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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