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하늘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한 듯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꽤 있다. 반대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이는 뉴스를 보지 않겠다며,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을 바꾸고 저녁 뉴스도 건너뛴다. 나도 같이 못 본다. 과하다! 하늘은 잘 무너지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 모두 사라지겠지.
스피노자의 정서론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슬픔과 분노, 허탈함 같은 수동적 정서는 우리에게 해롭다. 어떻게 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이행할 수 있을까? 10년 전이었던 2012년의 일이다. 2012년 12월 20일 새벽까지 지인 몇몇과 술을 마셨다. ‘당선 확정’을 화면으로 확인하고 하늘이 무너진 이들이 그때도 있었다. 통음(痛飮)했고 어떻게 헤어져 집에 왔는지 기억에 없었다. 그날 정오의 해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일어났을 것이다. 문 앞에 놓인 신문을 들여와 커피 해장을 하면서 훑었다.
5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던 탓이 컸을 것이다. 신문 한구석에서 “다산 저작 집대성한 ‘정본 여유당전서’ 발간”을 발견했다. “10여 년간 300여 필사본 대조 정본 확정”이라고 부연 설명이 있었다. 37권을 읽다 보면 5년은 흘러가겠구나 싶었다. 1년에 7~8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듯했다. 그 부분을 잘라서 메모판에 붙이고 다시 잤다. 다음날 인터넷 서점을 검색했는데, 검색되지 않았다. 출판사에 전화했다. 인터넷 서점 입고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던 것 같고, 출판사를 통한 판매는 가능했다. 계좌번호를 받고 주소를 알려주려던 차, 상대가 전공자냐고 물었다. “전공자요? 전공자만 ‘살’ 수 있나요?” 직원의 질문과 약간 어긋난 내 답변이 곧 문제가 될 것임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
책이 배달되는 사이 같이 읽을 동학을 카페에서 구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나 모임 회원들이 함께하리라 기대했었는데 잠잠했다. 며칠이 지나고 모르는 분이 신청했다. 2013년 2월에 오프모임을 하기로 했다. 네 상자의 여유당전서가 도착했다. 상자를 풀어 책을 꺼내 한편에 두어 다시 2~3주를 보냈고, 자리를 마련해 책꽂이에 배치했다. 같은 권이 두 권 있었고 누락된 권도 있었다. 이제야 발견하다니! 출판사에 연락해 보내고 다시 받고 했다. 다시 온 책을 ‘스스르’ 넘겨보다 발견한 사실! 한자 천국. OTL. 다른 권을 넘겨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앞의 몇 장만 한글로 쓰인 해제일 뿐 온통 한자, 한자였다. 해석본이 아니었던 것! 메모판에 붙어있던 기사를 다시 보니, ‘정본’ 완간이었다. 무식이 부른 대참사!!! 살 수는 있었지만 읽을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새로운 동학과의 만남이 코 앞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여전히 여유당전서를 읽고 있다. 5년이 아니라 10년 넘도록! 1년에 한 권쯤 읽었다. 현재 열두 번째 책을 읽고 있으니 평생을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던 5년은 물 같이 흘러갔고, 다산 선생을 만났다. 선생을 사숙(私淑)하면서 보낸 10년은 좋았다. 물론 실력이 그만큼 늘지 않음은 때로 한탄스럽고, 번역본이 없는 책들만 남아있는 현실도 암울하다. 하지만 선생이 내게 선사한 시간은 온전히 다른 세계였다.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의 시간이나마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세상’에서 나를 구제해서 수묵화의 정갈한 세계로 초대한다.
아직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당신에게 권한다. 하늘은 잘 무너지지 않지만, 그럴 것 같다면 솟아날 구멍은 있다. 누군가의 전집을 선택하고 구입하라. 당신을 좌절케 했거나 아예 몰랐던 작가가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니체, 아렌트, 플라톤, 칸트 등등. 스무 권은 넘어야 하지 않겠나. 같이 읽을 사람도 구하라. 내게는 좋은 동학도 생겼다. 생면부지로 만났지만, 거스름 없이 좋은 분이다. 우리 만남은 운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전공자도 아니면서 같은 저자의 책을 수십 권 읽어낼 수 있는 성품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분도 우울하다니, 올 1년은 초심으로 돌아가 열공모드로 보조를 맞춰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