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책을 추천해 달라는 손님을 만나게 되는데, 대개 손님이 없을 때 혼자 온 손님의 요청인 경우가 많다. 손님은 한참 서가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내게 와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있나요?” “그 책은 없어요. 하지만 <칼 세이건의 말>은 있어요.” 말 시리즈에서 칼 세이건을 꺼내주었다. “재미있다고 해서 한번 읽어보려고요.” “그쵸, 재미있죠. 이건 인터뷰의 말들을 엮은 것이라 재미보다는 그를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책을 내려보다가 다시 물었다. “과학 분야의 책은 뭘 읽으면 좋아요?” “전공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뇌과학이나 인지과학 분야의 책들이 저는 흥미롭고, 요즘은 트랜스휴먼이나 포스트휴먼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인류의 미래에 관한 관심이겠죠.” 말이 안 되는 소리까지 덧붙여서 열심히 떠들었다. 찬찬히 살펴보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 분야의 책을 십 여권 꺼내서 테이블에 놓고, 다시 물었다. “제가 전자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은 왜 음악을 들을까요? 그런 책도 있나요?” 음악을 왜 듣냐고? “음악도 전공이 아니라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일단 예술이 무엇이고 예술가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꺼내고 주변 책들을 소개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책들을 한참 비교하더니 내가 골라준 세 권을 계산했다. “다 읽고 또 올게요.” 신입생이구나, 좋을 때다 싶었다. 그 친구(손님)를 다시 보지 못했다. 내가 없는 사이 왔다 갔을 수도 있고, 책을 다 읽지 못했을 수도 있고, 새 학기이니 대학에 적응하느라 바쁠 수도 있다.
나는 가끔 그 손님을 기다린다. 왜? 집에 데려간 책들이, 내가 건넨 책들이 괜찮았는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 손님이 나가고 매장을 정리하고 집에 오는 동안 반성을 했다. 내가 뭐라고 책을 추천한단 말인가. 책 팔려고 구라 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 반성은 뭘 추천해도 ‘전혀 안 먹히는’ 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나는 책을 추천한다. 아니, 추천이라기보다 읽어야 할 레퍼런스 목록이 주어진다. 애초에 결정의 나의 몫이고, 학생들에게는 약간의 선택권만 주어진다. 그러니 학생들에게는 좋은 책일 수 없다. 그저 과제용 목록일 뿐이다.
그러다 어제 케이블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셀럽들에게 ‘인생 맛집’을 묻고 찾아가는 먹방을 보게 되었다. 유명인들은 한 곳을 찍어주었는데, 유독 백종원 씨는 주저했다. “인생 맛집 한 곳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그 방송을 스치면서도 책을 추천해 달라던 손님들을 생각했다. 인생 맛집보다 책을 추천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미각의 기준보다 지각의 기준이 더 섬세하니까.
한때 ‘개통령’과 ‘백선생’은 언제나 옳다고 회자되었다. 그들은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 사업가이자 요리전문가이다. 선생이나 멘토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의 인기는 놀라운 측면이 있었다. 개인의 탁월성과 매력도 큰 역할을 했겠으나, 천만 반려견의 시대와 먹고사니즘의 간소화 같은 실용적인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송사의 전략도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요즘은 거기에 육아 멘토 오**이 추가된 듯하다. 바야흐로 ‘전문가테이너’의 시대다. 전문가테이너의 시대지만 오래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모두가 전문가인 시대. 미국에서는 이 시대를 풍자하는 말이 ‘노잇올(know-it-all)’이고 그 문화를 ‘노잇올리즘(know-it-all-ism)’이라고 한단다. 마이클 린치의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에 보면 디지털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시류에 대한 깊은 한탄이 배어 나온다. “나도 다 알아, 너만큼은!” 오만함은 대화와 소통을 어렵게 한다. 마이클 린치는 “비판적 사고와 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장기적인 게임”이지만, 가장 중요한 접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백선생으로부터 인생의 맛을 배우고 만들어가는 대중의 겸손함을 서가를 한참 올려다보던 눈길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 서점이다.
당신의 인생 맛집은 어디인가? 인생 책은 무엇인가? 당신의 멘토나 선생은 누구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