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살면서도 온난화에 무감각하듯 ‘소셜’을 이용하면서도 ‘온난화’에는 무감각하다. 그게 바로 소셜온난화란다. 소셜온난화는 스마트폰 이용 가능성, 소셜네트워크 접속 가능성의 증가, 플랫폼의 규제 없는 증폭 기능이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난다. 저자의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서술을 ‘무식하게’ 요약하자면! “혐오와 분노는 늘 있었다. 굳이 연결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연결됐다. 알고리즘에는 증폭만 있을 뿐 윤리가 없다. 윤리는커녕 ‘암묵적인 지식’조차 없다. 그러니 개인정보와 넷 공간도 자연환경처럼 보호해야 한다. 페이스북에 내부고발자가 많은 이유를 생각해 보라. 모든 독점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20세기의 역사를 기억하자. 왜 테크기업들만 예외가 되어야 하지?”
찰스 아서의 『소셜온난화』에는 많은 법칙이 등장한다. ‘지프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멱 법칙’은 인터넷 환경과 알고리즘 문제를 설명하는 주요 법칙이다. 일명 80대 20 법칙이다. 80퍼센트의 사람들이 20퍼센트의 부를 가지며 20퍼센트의 사람들이 80퍼센트의 부를 차지하는 식이다. 인터넷이나 SNS 여론은 20퍼센트도 안 되는 이들이 좌우한다. 화력은 막강하다. 알고리즘의 증폭 때문인데, 여러 나라의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얀마 뉴스, 그중 로힝야족 학살을 꽤 접했을 것이다. 우리 언론에서 누락한 한 가지가 있다면 SNS. 메일 계정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페이스북 계정이 주어졌다. 페이스북은 정보의 장이 되었다가 놀이터가 되었고 혐오와 배제의 공간이 되었다. 미얀마의 언어는 특수했고, 페이스북 관리자는 1명, 그마저도 영국에 거주했다! 악 소리가 나는 사례들이 꽤 많다.
내가 주목했던 건 ‘스터전의 법칙’이었다. SF 소설가 시어도어 스터전의 소설에서 왔단다.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쓰레기다.” 그렇다면 빛나는 10퍼센트가 있잖아! 많은 것에 적용될 수 있다. 내 인터넷과 소셜 상황에도 들어맞는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그곳을 나오는 종료 지점까지 10퍼센트쯤 평온하거나 흥미롭다. 거기서 만나는 10퍼센트의 글은 빛난다. 쓰레기가 많아서 더욱 빛난다. (작가나 출판사가 왜 필요해?!)
서점에도 적용된다. 방문자의 10퍼센트 정도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자영업의 어려움(;;). 업장마다 다르겠지. 백화점이나 옷, 액세서리, 팬시 가게 등에는 통할 것이고, 반대로 음식점이나 카페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사람이 10퍼센트쯤 되지 않을까. 욕은 어느 쪽이 더 먹을까? 책을 읽다가 서점을 욕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책이라는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자나 출판사를 욕하겠지. (이따위 책을?!) 하지만 음식점이나 카페는 즉각적인 반응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서비스, 서비스.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진심을 다한 사람도 10퍼센트쯤 되겠지. 물론 그 10퍼센트마저도 내가 하듯이 나를 대하지는 않았다. 선의를 악의로 돌려준 사람도 많았고 10퍼센트만 내게 잘했다. 반대로 내가 무심하게 대했던 많은 사람 중에 10퍼센트는 또 나에게 과분하게 친절했다. 세상은, 나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갔다. 물론 당신은 10퍼센트는 너무 박하다고, 세상은 더 아름답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됐든 억울해하지 않는 것이 관건 아닐까. 갑질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내가 누군 줄 알아?”라고 소리친다. (왜 알아야 되는데?!) 소셜 상의 많은 소란은 대부분 “나/우리한테만 왜 이래”, “나만 억울해” 식이다. (세상은 원래 그래. 네 눈에 그렇게 보이는 법!)
소요서가에도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신생 철학자까지 즐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1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숱하게 책을 읽었어도 독애하는 작가나 책 역시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짠가. 나이는 한해 한해 먹는데 읽어야 할 책들은 산더미다. 읽고 싶은 책을 10퍼센트나 읽고 있나. 왜 이렇게 게으른가. 납량특집극처럼 오싹한 책들이 있다. 『소셜온난화』도 그런 책이었다. 오싹함은 도란도란 속에서 나누어지고 흩어진다. 지금 당신이 오싹하다면 사람을 만나자. 책 읽는 모임이든 무엇이든. SNS는 오싹함을 해결하지 못한다.
오싹한 책에 대한 개인적인 대안은 온기 있는 한 문장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의 마지막 문장 같은.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지.”
우리는 어느 순간에도 빛나는 것을 향하는 저마다 어떻게든 무모한 존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