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이 서점을 방문했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서울에서 다른 삶을 모색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서점에 왔으니 책을 몇 권 사주고 싶었다. 필요한 책을 골라보라고 했더니 고르지를 못한다.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다고 했다. 아빠 친구가 책을 사줄 것 같아서 더 그랬을 터이다.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면서 최근에 공부했거나 읽은 책을 말했다.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읽었는데, 다른 책들도 있네요.”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읽고 있어요. 에세이 써야 해요.”
그래서 프롬의 평전과 <녹색계급>,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안겨줬다. 평전은 너무 두꺼워서 읽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옆에 있으면 펼치게 될거야. 그리고 두 권은 에세이 쓸 때 한 줄이라도 인용해봐요.” 책이 필요할 때, 바람 쐬고 싶을 때 오라고 했는데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를 보내고 서점에 들어왔다, 그냥 가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언가 사야 할 때만 상점에 들어가는 나 같은 사람은 이해가 쉽지 않다.
몇 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몇 안 되는 직원들의 점심시간도 생각났다. 3층 사무실에서 내려와 꼭 1층 문 앞에 서서 메뉴를 결정했다. “뭐 먹을까?” 말해놓고, 다들 침묵. 돌아가면서 정하자고 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까운 점심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점심 먹으러 다니는 식당이 고작 10여 곳인데, 결정이 이렇게 어렵다니! 입사한 지 몇 달쯤 지나고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 1층에 발이 닿기 전 “오늘은 ** 먹어요.”라고 말했다. 몇 분은 줄어들었다. 밥 먹으러 갔을 때 메뉴 결정을 ‘절대’ 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두 개의 선택지를 줘도 결정을 미룬다. 나를 배려한 것임을 아는데도 가끔은 짜증스럽다. 나도 매번 결정하기 힘들다고!
작은 서점의 주인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소요서가에 와서 깨졌다. 작은 김밥집이 꿈이었던 적이 있다. 그건 김밥*국이 등장하면서 허물어졌다. 세계평화나 남북통일의 꿈은 깨지진 않았지만 요원하다. 꿈은 깨지라고 있는 것인지 판판이 깨진다. 판판이 깨지지만, 다시 꾼다.
서점에서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의 책만 판다면?” 편집자든 디자이너든 작가든 내가 아는 사람의 책만 팔면 어떨까? 고개를 젓는다. 소요서가를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판다면?” 다시 고개를 젓는다. 너무 편향적일 뿐 아니라 책을 선별하느라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위험하다.
오후에 출근할 때 약간 설렌다. 오늘은 책이 어떻게 전시, 배치되어 있을까 싶어서…. 책의 전시와 배치에 각별한 공을 들이는 알바생이 있다. 꽂고 옮기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천장의 거미줄까지 말끔히 치운다. 사장이면 탐나는 알바생이다. 감독으로 불리는 그 알바생은 ‘어떤 책’을 팔고 싶어서 배치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 나는 게으르기도 하고 약간은 두렵기도 해서 새로운 배치는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결정은 짜장과 짬뽕도 어렵다. 그나마 쉬운 결정이 내게는 책을 사는 것! 직관이든 이성이든 눈에 들어오는 것을 사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가방이나 옷은 색깔을 문제 삼을 수도, 음식은 맛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책은 많이 사냐만 문제 삼을 뿐 어떤 책이냐는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내가 산 책은 온전히 나만의 세계에 속한다. 물론 그 책들을 모두 애중하지는 않는다. 방치되어 깔리는 책들도 숱하긴 하다.
유독 책에 대한 결정이 힘들다면, 작은 서점에 가시라. 각 서점만의 독특한 목록이 준비되어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도 나름의 자기만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대형서점에 비해 말 걸기도 수월할 뿐 아니라, 응대 역시 친절할 것이다. 그들은 책을 팔고 싶다, 너무도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