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던 강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난 몇 년간 자신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후... 내가 너무나 무지하고 어리석었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진실을 알게 됐지..."
"믿을 수가 없군... 내가 비록 수의사지만... 나 또한 너무 무관심했어..."
형식은 강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너무나 사소한 일 들인데, 국가가 작정하고 거짓을 알리면 모두가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강현은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강현은 보기 드문 논리적 사고를 하는 친구였기에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강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의사들을 이해할 수 없군... 모두가 하나가 되어 부역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돈에 양심을 팔았어"
백신 접종 한 번이면 약 2만 원을 벌었고 자가격리된 사람에게 약 30초 내외의 전화문진으로 약 10만 원을 벌었다. 하루 약 100명에게 접종하고 30명에게 전화로 문진 하면, 의사는 하루 500만 원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병원은 접종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형식은 궁금했다.
강현은 몸을 최대한 빨리 회복해야 했다. 마음이 급했다. 슬비가 떠난 후 강현은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는 짙은 안개가 피어올라 있었고, 강현은 안갯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희중과 만난 후 강현은 목표가 생겼다. 그 목표를 하루라도 빨리 실행해야 했다. 강현은 잠시 눈을 감고 회상했다.
"형님, 우리 손으로 이 지긋지긋한 어둠을 끝냅시다"
"괜찮겠어?"
"괜찮고 말고 가 있겠어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그건 그래"
"제가 원하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슬비를 따라가는 겁니다. 이대로 가기엔 원한이 너무 크고 깊어요"
"많이 힘든 시간이 될 거야"
"삶의 목적을 잃고 어두운 안갯속을 헤매는 것보다, 우릴 이렇게 만든 놈들을 처단하는 게 낫습니다"
"그래... 그러다 죽으면 할 수 없는 거고 말이지..."
"네"
강현은 슬비를 떠나보내고 삶의 의지를 잃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슬비가 태어나고서 알게 되었고, 강현의 모든 시간은 슬비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슬비는 찡그린 아미, 눈썹, 배꼽 옆의 점까지 강현을 쏙 빼닮았고, 손가락 발가락 모양까지 비슷했다.
강현은 그런 슬비를 직접 집중치료실에서 영안실로 옮겼고, 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분신을 관속에 직접 안치했다. 화장장에서 슬비가 누워있는 관을 강현의 손으로 옮겼고,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슬비가 불태워지는 것을 보며 정신이 아득했지만 끝까지 지켜봤다. 16살짜리 귀하디 귀한 딸을 그리 보낸 아비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일 것이다.
"슬비야... 아빠가 미안해... 곧 따라갈게..."
강현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평소 눈물을 보인적이 없던 강현이었다. 평소 눈물이 많던 그의 아내는 강현이 매일 같이 우는 모습을 보고는 멀리 떨어져 숨죽여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강현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슬비 방에서 울기만 했다.
"내 잘못이야... 끝까지 말렸어야 했어..."
"아니야. 아빠 탓이 아니야. 이건 모든 것을 은폐한 교육부, 질병청, 식약처,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국무총리, 대통령 그놈들 탓이야"
"여보... 우리 이제 어떻게 살지?"
강현과 그의 아내는 하나뿐인 딸 슬비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족하게 키우지도 않았다. 학원 한 번 보내지 않았지만, 강현의 아내는 슬비를 직접 가르쳤다. 서점에 데리고 가서 교재를 직접 고르게 했고, 그 교재로 직접 슬비를 지도했다. 슬비의 엄마는 헌신적으로 슬비를 키웠다.
강현 내외에게 슬비는 너무나 소중했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강현은 어딜 가나 슬비를 데리고 다녔다. 슬비가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단 하루도 남의 손에 맡긴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데려다 놓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마냥 행복한 날들이 이어져야 했다. 그런 강현의 행복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 걸린 시간은 15일... 강현은 반드시 원흉들을 직접 처단하리라 마음먹었다.
"헉헉헉..."
"더 빨리!"
"으....."
"뭐야 이게 다야? 이래 가지고 뭘 한다 그래!"
강현은 결국 희중에게 찾아가 그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희중은 강현과 같은 아픔을 겪은 유족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인 국군정보사 특임대 출신이다. 희중은 요인 암살, 납치, 정보수집이 주특기로 생존기술의 달인이었다. 그런 희중이 강현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거리를 뛰어선 안돼. 계속해서 거리를 늘려야 해. 체력이 가장 중요해"
"네... 도망치려면 체력은 필수겠죠"
"그래, 우선은 살아남는 것을 목표료 목숨 걸고 훈련을 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강현과 희중은 백두대간의 깊은 산중에서 움막을 짓고 훈련에 매진했다. 생필품과 약간의 식량을 제외하곤 자급자족했다. 그것 또한 생존에 필요한 훈련이었다. 산속에서 그렇게 1년을 지냈다.
"아으...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 성적 1등으로 포상휴가도 받았는데... 군대 훈련은 장난이었네요"
"이제 시작이야. 지금은 체력훈련 수준이고 전술훈련과 생존훈련을 마치면 사격훈련을 해야 해, 미국으로 가야겠지"
"미국요?"
"그래, 이 나라에서 사격훈련을 할 순 없으니까"
"그렇죠..."
강현과 희중은 산속에서 또다시 6개월 동안 전술훈련을 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은폐엄폐, 깜깜한 산속에서 뱡향 찾는 법, 참호 만드는 법, 추격을 따돌리는 법 등 희중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가르쳤다. 체력훈련에 1년, 전술훈련 6개월, 생존훈련 6개월... 2년이라는 시간을 산속 움막에 살면서 훈련을 빙자한 삶과 죽음의 사투를 벌였다.
"이제 좀 쓸만한 눈빛이군"
"흐흐 그런가요?"
"그래, 이제 좀 야수의 눈빛을 흉내 내고 있어"
"이제 놈들 멱따는 훈련만 남은 건가요?"
"그래, 응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강현과 희중은 이제 동물적 감각을 소유하게 되었고, 하루종일 산속을 뛰어다닐 체력을 만들었다. 눈빛만 마주쳐도 서로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었고, 전투에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여유가 생겼다. 이제 단 한 발로 목적을 달성할 사격훈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