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경 Oct 20. 2023

발코니가 없는 집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되었을 때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발코니다. 이층집에도 살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멀리 보이는 산을 내 방 창가에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설렘이었다. 자그마한 탁자를 놓고 그 탁자에 어울리는 작은 의자도 놓고 차를 마시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유리 탁자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햇볕 잘 드는 날에는 햇볕을 쬐고, 비 내리는 날에는 빗소리를 듣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의 이야기도 들으리라. 그러나 정작 이삿짐이 모두 정리되었을 때, 내 작은 아파트 발코니에는 유리 탁자를 놓을 자리는 없었다.


  발코니는 카페가 아니라 마당이고 장독대였다. 종일 햇볕이 들던 마당에 바지랑대를 세우던 빨랫줄을 대신한 건조대가 볕이 잘 드는 넓은 자리를 차지했다. 간장, 된장, 소금항아리가 남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어렵사리 데려온 화분 몇 개도 바람 들고 볕 잘 드는 곳을 넘보았다.


  아파트에 이사 와서 돌아보니 한옥은 참 오지랖 넓은 아낙네였다. 마당이나 장독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엌 귀퉁이부터 뒤란의 처마 밑, 심지어 마루 밑에까지 구석구석 오만가지 살림살이를 끼우고 품어주었건만, 아파트는 쌀쌀맞기가 찬바람 쌩하게 부는 미니스커트 도시 아가씨였다. 


  반듯반듯한 방과 거실, 주방, 어느 구석에도 묵은 살림 끼워둘 자리가 없었다. 1년에 몇 번을 쓰더라도 꼭 있어야 하는 살림들이 좀 많은가. 많은 손님 치를 때나 필요한 교자상, 김장철에나 쓰는 커다란 고무통과 대야, 가을이면 묵나물을 말리는 채반, 몇 달에 한 번 얼굴을 보는 시루, 그뿐인가. 한여름 애지중지하다가도 어느 순간 애물단지가 되는 선풍기…. 그것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느라 창고를 만들고 나니 내가 꿈꾸던 발코니 카페는 말처럼 꿈이 되고 말았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달래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발코니가 마당과 장독대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툇마루가 되어주기도 하고 거실과 주방 문을 다 열어젖힌 여름날에는 대청마루 흉내도 내주었다. 말간 유리 한 장이 바람 센 날에는 그 바람을 당차게 막아주었고, 천둥 번개 우르땅땅거릴 때는 귀를 막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아파트살이는 두어 번 이사해도 비슷했다. 조금씩 한옥 흉내를 내면서 구석구석 수납공간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소갈딱지 좁은 여편네 같았다. 살림살이 여기저기 쌓아두면서 버릴 줄 모르는 나는 아파트의 좁아터진 소갈머리가 얼마나 답답했던지. 그나마 숨 쉴 구멍이 발코니였다, 늘어놓고 흩어놓아도 그리 타박하지 않는.


  언제부터였을까 아파트에 ‘확장’ 바람이 불었다. 좀 더 너른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다를까만, 그때는 두 아들이 모두 결혼한 다음이었다. 불법 개조라 해서 단속에 걸리면 벌금이 나온다고도 했고, 공사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그냥 살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투어 가며 알게 모르게 확장공사를 하느라 망치 소리가 한참씩 이어지곤 했다. 확장한 곳에서 결로가 생기고 곰팡이가 핀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방 배관이 놓이지 않아서 춥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확장공사는 꾸준히 이어졌다. 넓다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 일이었나 보다. 그렇게 확장 열풍이 일었을 때도 난 벽을 트는 대신 발코니와 마음을 트고 살았다.


  차탁을 놓을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청바지도 삶은 수건도 고슬고슬하게 말리고, 가끔은 이부자리도 어찌어찌 볕을 쪼였다. 옹색하게라도 된장도 담그고 간장독을 열어 햇볕을 모으기도 했다. 가을이면 호박, 가지, 토란대 등 묵나물 채반을 네댓 개씩 늘어놓으며 볕 바라기하고, 가끔은 고추도 말리면서 어느새 15년. 젊어서 세를 살면서 워낙 잦은 이사를 한 터라 더는 이사하고 싶지 않았지만, 두 아들이 같은 곳에 살게 되고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새 아파트인 것도 솔깃했다. 어렵게 결정은 했지만 결정한 다음의 시간은 쏜살같았다.


  대형 아파트는 어떤지 모르지만 요즘 중소형 아파트는 대부분 지을 때부터 확장한다. 그래서 세탁실이나 비상 통로로 사용되는 곳 외에는 발코니가 거의 없다. 대신 방과 거실이 평수보다 널찍하다. 가격을 맞추느라 평수를 좀 좁혔는데도 거실이 그다지 좁지 않았다. 두 식구 살기에는 오히려 넓기나 하지. 그런데 이삿짐 정리가 얼추 끝났는데도 마땅히 놓을 곳을 찾지 못한 것이 빨래 건조대와 소금항아리였다. 간장과 된장은 오래된 아파트살이에서 냉장고 안으로 주소를 옮긴 지 오래지만 소금항아리는 발코니 한구석을 차지한 채로 지내왔다. 그래도 그것까지는 간신히 비상 통로를 겸한 좁은 발코니에 끼워 넣었는데 건조대는 끝내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이 굳이 건조기를 사들여 놓은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발코니 없는 아파트에 익숙해 있었다. 15년을 고집스럽게 확장공사 않고 살아온 내가 촌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난 햇볕에 바짝 말린 고슬고슬한 수건이 좋다. 건조기에서 꺼내서도 햇볕에 널고 싶다. 바람 한 줄이라도 쏘이고 햇살 한 줌은 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일단은 거실 창에 바짝 붙여 건조대를 놓았다. 거실인지 마당인지 원…. 영 못마땅했다. 올가을 묵나물 말릴 채반은 어디다 널어야 할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어 자나 넓어진 거실과 방. 그러나 그 넓이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한 번도 꾸며 본 적은 없지만 꿈으로나마 남아있던 발코니 카페는 그 꿈마저 사라졌다. 뜬금없이 땅 몇 평 넓히자고 다져버린 서해안 갯벌이 떠올라 픽 웃었다. 


  내가 산 땅보다 더 넓은 집. 그런데 왜일까. 가슴이 허전하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고, 한겨울에 외투조차 걸치지 않고 바람받이에 선 것 같기도 하다.     

이전 10화 저녁 풍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