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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21. 2023

불시개화

  가을 하늘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다. 서너 알 대롱거리는 산수유 열매는 파란 물속에 잠긴 새빨간 보석이다. 스마트폰이라는 마법의 기계가 하늘 속에 땅을 담는다.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눈이 시리도록 곱다. 


  저토록 파란 하늘에 담기기 위해 빨간 열매들은 이 늦은 가을까지 나뭇가지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탱탱해 보이던 열매들이 줌인 한 화면에서 쪼글쪼글해진다. 나도 모르게 줌아웃했지만, 보이지 않던 흉터 같은 주름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위태롭게 매달린 저 빨간 열매는 언제까지 저 모습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처럼 흔들리는 시간은 언제까지일까. 바람이 좀 더 차가워지면 파란 물감을 단단히 쥐고 있던 손이 조금씩 느슨해질 것이다. 잿빛으로 변해가는 하늘 아래서, 떨며 빛바래고 이지러질 열매들을 생각하니 빛깔 고운 사진까지 안쓰럽다.


  몇 장의 사진을 넘기는데 사진 가장자리에 잡힌 붉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휘휘 둘러보니 산수유나무가 서 있는 언덕 아래 떨기나무들이 붉게 물들어있다. 가까이 가 보았다. 단풍 든 잎을 모두 떨어뜨린 헐벗은 떨기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 마른 가지에 산호처럼 빛나는 낙상홍이 도드라졌다. 서리를 맞으면 더욱 붉어진다는 낙상홍落霜紅. 그 곁에는 가을을 붉게 태우던 화살나무가 조금은 지친 듯 자잘한 붉은 구슬을 휘감고 있었다. 그토록 붉게 가을을 태우고도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은 낙상홍에 지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런데 그 가운데 철쭉 한 그루가 붉은 열매를 시샘이라도 한 듯 무더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 떨구지 못한 마른 잎 사이로 드문드문 푸른 이파리도 보였다. 낙상홍과 화살나무 열매 옆에 핀 철쭉이라니. 12월이 코앞이다. 계절이 거꾸로 가는 것인지 철을 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반가운 마음보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언제부턴지 가을 끝자락에 피는 봄꽃을 더러 보았다. 마른 잔디밭에 오도카니 핀 민들레도 있었고, 마른 가지에서 새치름하게 떨고 있던 노란 개나리도 있었다. 동지 무렵 맺힌 목련 봉오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흐드러지게 핀 꽃 무더기를 보기는 처음이다. 정말 지구가 앓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니 가을바람이 유난히 추웠다.


  지구의 자연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고 한다. 날씨도 종잡을 수 없고, 기온도 종잡을 수 없고, 물은 부족해지고…. 이변이라고 하는데 계속되는 이변은 이변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새로운 질서다. 그 질서가 막다른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쩌자는 것일까? 그렇지만 걱정한다고 내게 무슨 수가 있을 리 없다. 대책도 없는데 때아닌 꽃은 아름답기만 했다.


  가을 속 봄을 카메라에 담았다. 활짝 핀 철쭉을 가운데 두고 화살나무와 낙상홍의 빨간 열매, 대롱거리는 산수유 열매까지 함께 담고 보니 사진 속에서 불협화음이 요란했다. 홑잎 나물이나 낙상홍 분홍 별꽃이 함께해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마른 잔디에 앉아서 철 모르는 꽃을 보며 세상 근심 다 짊어진 얼굴로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알람브라 궁전의 청금석을 펼쳐놓은 듯 파랗기만 했다. 이 고운 꽃을 앞에 두고 이 작은 공원에서 혼자 지구의 근심을 다 짊어진 듯한 내가 좀 우스웠다.


  서로 어우러지는 붉은빛이 곱다. 산수유와 화살나무의 붉은빛이 철쭉의 분홍을 밀어내지 않는다. 불협화음은 내 머릿속에 각인된 고정관념일 뿐, 이 가을에 철없이 꽃을 피운 나무 한 그루가 무슨 죄일까. 오히려 변해버린 환경 때문에 겨울잠에 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것이나 아닐는지. 잠결에도 단장한 고운 얼굴을 내민 것이 오히려 기특하다고 해야겠다.


  꼭 초록 어린순이나 연분홍 꽃이라야 할 것은 아니다. 탱탱해 보이는 산수유 열매도 가까이 보면 이미 쪼글쪼글하다. 찬바람에 부대끼고 서 있는 산수유나, 까치밥으로 나뭇가지에 남아 서리 맞는 붉은 감이나 철을 잊은 것은 마찬가지다. 왼 통 지지고 볶으며 떠들썩한 가운데 자지 않고 일어났다고 나무라는 내가 잘못이다.


   문득 마른 잎과 섞인 푸른 잎이 내 머리 같았다. 부지런히 염색해도 그보다 더 부지런히도 자라나는 흰머리. 그 흰머리가 어느 날 검은 머리로 자란다면 나는 얼마나 환호할까. 철 모르는 나무 한 그루가 피워낸 가을꽃은 어쩌면 철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철을 이겨내는 용기는 아니었을까. 그래, 용기!


  꽃이 필 때가 아닌 때 피는 것을 불시개화라고 한다. 이상 발육 현상이다. 그런데 이 가을,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도 내 나이를 잊는 철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철없는 말을 하고 싶다. 백 세 시대에는 아직 가을이 아니라는 억지스러운 핑계도 대고 싶다.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쪼글쪼글해져 매달린 열매가 아닌, 저 떨기나무처럼 철없이 흐드러진 꽃을 한번 피우고 싶다. 그 또한 장수 시대에 벌어지는 이상 발육이라고 슬그머니 눙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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