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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혼타스 Oct 22. 2023

나와 닮은 사람

대단할 것 없지만, 위로가 되는 맛《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 김보통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데, 쌍둥이가 아닌 것도 분명한데, 나와 똑 닮은 사람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속모습이 닮은 사람.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소개할 때 나는 인생의 멘토라고 말한다.   

첫 만남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원래부터 서로 닮았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며 그 사람을 닮기 위해 노력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엔 직장 동료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모처럼 만날 약속을 정해놓고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도 즐겁고, 스치듯 우연히 마주치는 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는 늘 비슷한 시간에 늘 같은 길을 지나게 되는데 그중 일부 구간을 특히 좋아한다. 쭉 늘어선 가로수에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 온 세상이 푸릇푸릇한 봄이 제일 좋지만, 쨍한 한여름에도, 바람에 낙엽 휘날리는 가을에도, 온종일 눈 내리는 겨울에도 다 좋다. 그 길 중간에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가끔 아침에 반가운 연락이 온다. 출근길에 카페에 잠깐 들를 수 있겠냐고 묻는.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나가면 도착 시간에 딱 맞춰 미리 주문해 놓은 커피가 바로 나온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이 커피보다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아침에 여유가 생겨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미리 연락해서 만날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냥 가서 기다리기도 한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퍽이나 설레는 일이다. 

도서관은 그냥 그 사람 자체이다. 공통 관심 분야여서 함께 쌓은 추억이 많고,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 바로 도서관이다. 둘 다 책은 좋아하지만 책 모임은 부담스러워하는 점도 닮았다. 꼭 여럿이 할 필요 없이 마음 맞는 둘 셋이서 함께하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서로 읽은 책 얘기도 많이 나누었더랬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그 사람 덕에 나의 책 읽기는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우연히 읽었는데 좋은 책이었다면 당신도 한번 읽어보라고 언제든 갑작스레 건넬 수 있는 사이. 서점에서 뜬금없이 전화해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뭐냐 물어보고 사다 주는 사이. 우리 둘은 서로 책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에게 추천하고 함께 읽은 책이 많지만 유독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책이 있다. 초코소라빵 모자를 쓴 남자가 그려진 따뜻한 노란색 표지의 책, 김보통 작가의 에세이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책 읽기를 뚝 끊어버린 딸아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었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도서관 데이트를 하며 책을 읽고, 하루도 빠짐없이 쓰는 일기와 잠자기 전 일정 시간 동안의 책 읽기가 아들의 국어학원 대신이라 말하는 그의 교육 방법은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아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며 딸아이에게 읽혀보기를 추천받은 책이 바로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직접 읽어줘야 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한글을 깨치고 스스로 책을 읽게 됐을 때도 웬만하면 내가 먼저 읽고 아이들이 읽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가끔이기는 해도 재밌어하는 반응이면 바로 비슷한 책을 찾아 이어 읽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도 내가 먼저 읽었다. ‘김보통’이라는 작가 이름을 보고 웃기다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읽으면서 점점 디저트에 진심인 젊은 남자 작가가 궁금해졌다. 목차를 디저트 그림으로 구성한 것도, 중간에 한 컷씩 나오는 그림이 책 내용과 찰떡인 점도 다 좋았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쭉 쉽게 읽히는 가벼운 책인 듯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작가의 녹록지 않았던 지난 삶이, 그 삶에 대한 태도가 찐하게 묻어있었다.     


초코소라빵을 먹노라면만드는 법을 배워 무진장 싸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그래서 어른이 되고서야 결핍을 충족하게 될 아이를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다창밖에 서서 초코소라빵을 바라보기만 했던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싶다.     


모두가 나의 편일 수는 없다그렇다고 내 곁에 둘 수 없는 것은 아니다디저트 역시 마찬가지모두가 디저트를 좋아할 수는 없다그래도 상관없다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살고, ‘디저트를 좋아하느냐 마느냐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물론 다른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로 딸아이에게 책을 건네주고 작가의 다른 책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다. 삽화를 직접 그렸다고 해서 보통이 아닐 거라 생각은 했는데 역시나 5권짜리 만화책 ≪아만자≫도 있었고,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등 몇 권의 에세이가 더 있었다. 만화도 에세이도 모두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면서 툭 무심하게 던지는 한마디가 마음 한구석 어딘가를 건드려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작가만의 분명한 스타일이 있었다.

멘토의 가르침대로 나도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주로 이 책을 선물했다. 엄마도 함께 읽으면 더 좋다는 말을 꼭 덧붙이면서.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무렵 탈영병 잡는 임무를 맡은 군인을 칭하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의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흥행몰이 중이었다. 잊고 지내던 반가운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이 정해인이 주인공인 화제의 드라마 <D.P.> 원작이었다.

뭔가 통했던 것일까? 김보통 작가를 기억하냐는 물음에 그도 마침 기사를 보고 나에게 연락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가지도 않았고, 화제의 신간도 아니었던 그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함께 읽고 마음으로 응원했는데, 하루아침에 유명해져 있었다. 그저 책을 읽고 공감한 게 다 인데도, 뭔가 우리가 무명의 작가를 키운 것마냥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랄까. 여기저기에 더 소문내고 싶어졌다. 책이 너무 좋다고! 유명 작가가 쓴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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