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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혼타스 Oct 22. 2023

아는 만큼 보인다! 서울 깊게 들여다보기

≪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유홍준

우리 가족 첫 해외여행은 대만 타이베이 3박 5일이었다. 딸아이는 8살, 아들은 5살이었다.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두 가지는 도착하는 날부터 4일 동안 내리 내리던 비와 내내 짜증 부리던 아들 녀석이다.

어릴 때부터 큰아이에 비해 여러모로 예민하던 아이였다. 특히 발이 민감해서 항상 뽀송뽀송한 양말을 신고 있어야 했다. 잠깐 외출할 때도 여벌 양말을 넉넉히 챙겨 다니곤 했다. 4월 대만 날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웠고 야속하게도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남편과 번갈아 가며 업고 다녔지만 양말을 뽀송하게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덥고 습한 날씨에 자꾸만 젖는 양말이라니.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힘든 여행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딸아이는 즐거워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비닐 비옷을 입어 더 더웠을 텐데 우산 쓰는 것보다 편하다며 물웅덩이를 피해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 빗속에서도 여행 사진을 포기 못하는 엄마를 위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잡아주기까지 했다. 유명하다는 길거리 음식을 우산을 받쳐 들고 한 손으로 불편하게 먹으면서도 신나 했다. 첫 해외여행을 온전히 즐기는 딸아이를 위해 아들 녀석을 달래 가며 힘내서 열심히 여행을 이어갔다.

무료 점괘를 봐주는 것으로 유명한 용산사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온통 한자뿐인 점괘 종이를 받고 한참 웃었던 일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향을 피운 탓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화려한 사원이 자욱한 연기와 진한 향냄새로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택시에서 내려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규모의 건물에 한번 놀라고 꼭 봐야 한다는 유명한 보물을 한참 줄 서서 기다려 눈앞에서 봤을 때 너무 작아서 또다시 놀랐던 국립 고궁박물원도 기억에 남는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지인 지우펀에서는 엄청난 인파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간 찻집이 너무 따뜻하고 아늑했다. 마지막 일정이었던 중정 기념당의 근위병 교대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끝까지 꼼짝없이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대만 여행을 다녀오고 몇 년쯤 지나서 서울로 주말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가까운 거리라 평일 당일치기도 가능하고 아이들 교육에 좋다는 생각에 주말을 이용해 자주 서울을 찾곤 했었다.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은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곳이기도 하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교보문고도 근처에 있어서 서울 갈 때마다 거의 매번 잠깐이라도 들르는 곳이다. 보통은 경복궁을 나와서 현대미술관을 들르거나 민속박물관에 있는 어린이박물관을 구경했는데 그날따라 서촌 방향으로 걷던 중에 국립고궁박물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경복궁 안에서도 보였을 텐데 그렇게 여러 번 왔음에도 이제야 눈에 띄다니 신기했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에도 고궁박물관이 있었구나.”라며 둘 다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을 떠올렸다.

나와 남편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국내든 해외든 여행 중에 그 지역의 박물관은 꼭 가보는 편이다. 친정이 경주여서 경주박물관을 가장 자주 갔고 지금 살고 있는 당진이 백제 문화권이다 보니 부여 박물관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군산, 목포, 인천의 근현대사박물관은 특히 더 좋아하는 곳이다. 중학생 딸아이가 학교에서 한국사 수업 중에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유물을 박물관에서 직접 봤다고 말할 때와 근현대사 부분을 어려워하면서도 여행에서 가봤던 곳이라고 기억해 낼 때는 몹시 뿌듯했다. 고궁박물관이 우연히 눈에 들어온 날, 그동안 정작 서울은 꼼꼼히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이베이에서 남편과 장제스에 대해서, 대만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하며 고궁박물원의 규모와 유물에 감탄했던 과거가 새삼 부끄러웠다.

당장 서울을 공부해야 했다. 바로 떠오르는 책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다. 방송을 통해 여러 번 접하기는 했어도 제대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했는데 이참에 한번 읽어보자 싶었다. 우선 서울 편을 읽으며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고민했다. 막내도 같이 읽고 싶은 마음에 그림책으로 고르던 중 ≪서울로 보는 조선≫을 발견했다. 딱 내가 원하던 책이었다. 서울 전경부터 시작해 경복궁, 광화문 광장, 북촌, 종로, 청계천의 현재 모습이 각각 페이지마다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책장을 양쪽 옆으로 한 번 더 넓게 펼치면 과거 조선시대 풍경 그림과 간단한 생활상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조선시대 역사와 현재 서울의 모습을 연결 지어 설명하기에 딱 적합한 책이었다.

≪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책 머리말에서 유홍준 교수가 ‘전문 용어도 많이 나오고 논문처럼 딱딱한 곳도 적지 않아 어린이와 청소년이 접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라고 말할 만큼 어려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자녀에게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히고 싶은 여러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책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재미없는 숙제 같은 공부가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로 친근하게 받아들이기를, 그래서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이 책을 읽고 부모와 자녀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우리나라 국토 박물관으로 답삿길을 떠난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했으니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될 일이다.

중학생 딸아이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 선물할 때보다 어렵다. 만약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 선물이라고 책을 건넨다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아이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그 책은 아마도 받자마자 아무 데나 툭 내려놓은 자리에 그대로 박제될 테지. 한 번 펼쳐지지도 못한 채.

이런저런 고민 끝에 방학 중에 서울로 길게 휴가를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서울은 당일치기나 길어야 주말 이틀을 이용해 갔었는데, 제주도나 강원도를 여행하는 것처럼 4~5일 여유롭게 서울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답사 여행을 가는 거다. 방학식 날 기분 좋은 딸아이에게 “우리 이번 방학에는 서울 여행 제대로 해볼까?”라며 슬쩍 책을 건네면 성공할 수 있을까? 네 권 중 두 권은 ‘조선(서울)’편이고, 나머지는 ‘신라(경주)’, ‘백제(부여, 공주 외)’편이니 서울이 성공한다면 경주와 부여, 공주도 진짜 답사 여행으로 더 깊게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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