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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Nov 29. 2024

우리 부부는 낮술을 즐깁니다

네모 커다란 입이 벌어지니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를 만지다 연인을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짓는 여자,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 올라가는 아이, 제 몸만큼 커다란 기타를 짊어진 남자.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 틈 속에 우리도 섞여 있었다.

날이 좋았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하늘은 무척이나 푸른빛이라 어떤 물감을 써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어미에게 떨어져 나온 은행잎은 누군가의 손길로 예쁜 모양으로 꾸며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엽까지 찍어대는 사람들의 손길마저 바쁜, 평범한 가을날이다.


노점의 무거운 천막이 하나둘씩 열리고 있었다. 밤새 안녕했을 자신의 것들을 살피는 이들의 바쁜 손놀림은 뽀얀 연기를 뿜는 바삭한 붕어빵이 되고, 달콤한 달고나가 되어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말캉한 떡볶이를 한입 베어 문 입에 어묵 국물이 들어가니 살짝 쌀쌀했던 코끝에 온기가 맴돈다. 혓바닥부터 훑고 지나간 따스함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면 씨익 웃음이 퍼졌다. 속이 꽉 채워진 든든함에서 나오는 여유는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웃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되었다.

사람들 속을 걸었다. 별다른 목적지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섞였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팬시점에 들러 새해부터는 다이어리를 사볼까 고민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젊음의 열정에 감탄했다. 내게도 저런 시간이 있었을까, 너희는 어떤 어른이 될까. 품 안에 담긴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상상을 해봤다. 뭐라도 되겠지, 여유로움이 내게도 스며든다.



시간의 흐름은 허기짐에서 느껴진다. 그래, 분식은 밥이 될 수 없지. 각자의 취향 안에서 적당히 타협된 곳에 궁둥이를 밀어 넣었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에 종일 걸은 다리는 그제야 피로감을 느꼈다. 갈증이 느껴졌다.

음료는 식사보다 먼저 나온다. 사이다, 소주, 맥주. 각자 입맛에 맞는 걸로 잔을 채우고 부딪혔다. 사이다를 마시고 나서 '크~' 하는 어린이들, 어머님이 누구시니. 누구긴, 나지.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서로를 닮은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웃는다.

누군가는 아이들 앞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좀 그렇지 않냐고 했었다. 좀 그렇다는 게 뭐지? 아무래도 흐트러지기 때문일까? 나중에 어른 돼서 면허 따서 엄마 취하면 데리러 간다는 꼬맹이의 말을 들으니 좀 뜨끔하기도 하지만 든든하기도 하고, 술 마시고 울고불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좀 봐주면 안 될까. 그냥 이렇게 즐거워지면 안 될까.




옆집 엄마는 우리 부부가 부럽다고 했다. 자기 남편은 술을 마시지 않아 이런 재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더 큰 것을 가진 그녀가 샐쭉거린다. 글쎄, 함께 술을 마셔도 다음날 혼자만 늦게까지 뻗어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늘 잠들면 다음 날 저녁에나 눈을 뜰 수도 있단 말이다. 소주잔을 다시 채우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뱉어내는 대신 한 모금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욕창 안 생기니?"

툭 던진 한마디에 그가 웃었다. 아, 이거 농담 아니었는데.


그래도, 못 마시는 남자보다는 낫긴 하다. 운전을 업으로 삼는 그와 취미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렇게 각자의 잔을 채우고 비우길 반복했다.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아도 괜찮다. 상대방 앞에 놓인 병이 휑한 바닥을 드러낼 때쯤, 마지막 잔이 비워갈 때쯤, 손을 들고 한 병 더 주문해 주는 것. 비록 비싼 명품 시계를 사주거나 시들기 전까지만 아름다운 꽃다발을 안겨주는 건 아니지만,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 우정이다.


특별한 것 없는 것들이 하나하나 모인 순간에 이름을 붙인다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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