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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Jan 06. 2025

처음은 어렵고, 두 번째도 만만치 않다-2

그럼에도 뉴스에 나왔던 그녀들처럼 될 수 없어 둘째를 낳기로 했다. 어쩌면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 아이가 4살 되던 해였다.

둘째 임신을 알고 난 후 남편은 꽤 온순해졌고, 주말이면 아이를 위해 동물원을 가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도 연출했다. 하지만 진통을 겪는 중에도 옳은 선택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분만실에서 아기를 품에 안는 동안에도 불안했다. 불안에 확신이 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둘째는 발로 키운다고 하던데 아영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둘째의 육아는 첫째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돌봐야 할 존재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것부터가 이미 역량 밖이었다.

4년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사랑만 받았던 첫째가 둘째라는 복병을 만나 삐뚤어지면서 부리는 온갖 짜증을 품어줘야 하는 건 오롯이 아영의 몫이었다. TV에 나온 육아 전문가는 둘째를 만난 첫째의 상황은 첩을 데려오는 남편을 보는 본처의 입장과 같다고 표현했다. 자신만 바라보던 엄마와 아빠가 이제는 아기만 바라본다. 심지어 자신을 지구의 중심처럼 대해주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마저 마찬가지였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였음에도 마치 초등학생 언니라도 된 것처럼 의젓하게 행동하고 양보하라고 강요했다. 본인의 장난감도, 카시트도, 이불도 무엇보다 엄마 아빠까지 빼앗겨 버렸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아이의 분노는 동생을 향하기도 했고 엄마를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영은 아이의 화까지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다. 첫째 때도 ‘힘들다’를 입에 달고 키웠는데 둘째는 더 심했다. 무조건 안아줘야만 잠을 잤고, 신생아였음에도 버티는 힘이 제법 세 아기를 안은 채 종종 휘청거렸다. 입이 짧아 제대로 먹지 않으니 오래 자지도 않았다. 밤새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듯 짧게 끊어 자기만 반복했다.

덩달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아영의 신경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작은 소리에도 뾰족하게 반응했고 조그만 충격에도 크게 놀랐다. 지나가는 사람과 옷깃이 스치기라도 하면 같이 죽자고 덤벼들 기세로 요란하게 화를 내는 모습은 전쟁터에서 깃발을 흔드는 여전사와도 같았다. 목적도 의미도 없는 외침과 분노는 고작 4살짜리 아이를 향했다.     



아영의 화와 아이의 화는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서로를 갉아먹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에는 그나마 견딜만했다. 둘째가 짧은 낮잠을 자는 동안 들어가 보는 커뮤니티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이가 너무 많이 울어요. 울음소리에 노이로제 생길 것 같아요. 이러다 미쳐버릴지도 모르겠어요.’라는 글에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되었다. ‘둘째 육아는 더 힘드네요’라고 짧은 댓글을 적었다. 누군가 둘째를 낳는다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려야겠다는 대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생각해 보니 첫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견딜만해야 하는데,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정신 분열이 일어날 것처럼 초조해져 그나마 남아있던 손톱을 쉬지 않고 물어뜯었다. 아이를 웃으며 반길 수가 없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어린이집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아기침대 위에서 자는 둘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자기 자리를 빼앗긴 분노였을까. 겨우 재웠는데, 화가 나는 건 아영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만화에 집중하다가도 모유 수유하는 건 귀신같이 알고 달려와 엄마의 가슴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둘째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영의 가슴에는 떨어지지 않으려던 아기가 꽉 깨문 상처가 빨갛게 남았고, 아이의 손에는 동생의 머리카락이 남았다. 정말 이러다 아기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있는 힘껏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의 폭력성에 놀랐다. 차라리 밤잠 못 자고 2시간에 1번씩 깨는 편이 나았다. 아이가 하원한 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1분 아니 1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사실은 미안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게 첫사랑인 4살짜리 아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건 생살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겪는 것과 같았다. 원하지도 않은 동생을 낳아놓고 양보와 사랑을 강요해야 하는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뺏겼다고 여길 아이를 제대로 달래주지 못한 채 혼을 내는 아영의 모습은 아동학대와 다를 바 없었다.

작은 어깨를 힘껏 밀어버리고, 큰 목소리로 화를 냈다. 꾹꾹 참다 터진 화는 어느 순간부터 참지 않고 바로 내질렀다. 성난 사자처럼 소리를 지르는 아영의 앞에 작은 생쥐같이 움츠러든 아이의 모습 뒤로 우는 아기가 보였다.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아이가 잠든 후에야 밀려오는 미안한 마음으로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라버린 눈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씨, 이건 또 뭐야.”

속옷에 새빨간 피가 묻어있었다. 바지도 엉망이다. ‘단유하면 바로 생리 하나요?’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겠지, 싶어 남긴 질문에 역시 빠르게 댓글이 달린다. 생리가 맞다 한다. 첫째의 엄청난 공격 때문에 급하게 단유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생리가 시작했다. 빨갛게 젖어있는 속옷을 보니 갑자기 아랫배도 살살 아픈 것 같고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인간의 몸은 신기하다.

1년 정도 묵혀 둔 생리대를 꺼냈다. 임신과 모유 수유에 좋은 점이 있다면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건데 아쉽다. 이상하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는데, 빨간 생리혈을 보는 순간부터 기분 나쁘게 밀려오는 생리통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콕콕 쑤시는 느낌이 들 때마다 얼굴이 찌푸려져 급하게 진통제부터 털어 넣었다.     

약기운이 돌아 정신이 노곤해질 때쯤 하원한 아이는 역시 동생에게 달려갔다. 다소 과격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선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아기의 다급한 울음소리를 달래는 동안 장난감 통을 뒤집어 집안은 전쟁의 신이 쓸고 간 것처럼 엉망이 됐고, 분유를 타서 먹이는 아영의 눈앞에서 기저귀를 내리고 거실 바닥에 변을 봤다. 기저귀가 아닌 곳에 응가를 했으니 칭찬해 달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자 고릿한 냄새로 뒤덮인 분노가 끓어올랐다. 보글보글. 아이의 간식과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이불을 동생의 얼굴 위로 덮어버리고 인형은 배를 향해 던졌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구해달라는 듯 절박하기까지 했다. 부글부글. 곧 터질 것 같다.

계속되는 만행과 쉬지 않는 울음소리에 위태롭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생리통에 육체를 지배당한 아영은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동생을 본 첫째 아이의 몰랐던 폭력성을 발견한 것처럼 아영도 마찬가지로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괴성을 터트렸다.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여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늘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으니까. 한번 터진 괴성은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빠져나와 분노와 서러움을 먹고 그 크기를 빠른 속도로 키웠다. 작은 몸을 밀치고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붓고 난 후에야 탈진하듯 주저앉아 멈출 수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놀란 아이들은 서로 자기를 먼저 안아 달라고 울기만 할 뿐이다. 엄마의 상태가 어떻든 아이들은 배려하지 않는다.

느낌이 이상했다. 소파에 닿아있는 궁둥이가 축축하다. 그러고 보니 몇 시간째 생리대를 갈지 못했다. ‘꿀렁’ 하는 느낌과 함께 커다란 덩어리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몇 시간 전 벗어 둔 속옷과 바지에서 핏물이 채 빠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물컹하고 비릿한 느낌이 불쾌하다.     

“아, 이제 나도 모르겠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늘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야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 앞에 선 경력직이었지만 초보였고 결국 무너져 버렸다. 가장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커졌다.

뜨거운 눈물이 차갑게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첫째 아이의 작은 손이 아영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눈물 콧물 범벅된 손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양팔에 아이들을 하나씩 끌어안고 함께 울어버렸다. 뚝뚝 흐르는 눈물은 호르몬의 문제라 탓하면서. 팔이 두 개라 다행이다.     



[익명게시판]

저희 아빠는 형제가 7명, 엄마는 6명이에요. 옛날 어른들은 참 애도 많이 낳았어요. 힘이 좋은 건지 되는대로 키운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여서는 정말 대단해요.

하지만 저는 외동이에요. 저를 낳을 때 엄마가 거의 죽을 뻔해서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기로 했대요. 형제가 있는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했고, 저는 반대로 친구들을 부러워했지요. 민지랑 민혁이는 쌍둥이고, 옆집 개는 이번에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고 하는데 나만 형제가 없었으니까요.

생일 선물로 동생을 낳아달라고 빌고 산타에게도 동생을 선물해달라고 빌었죠. 엄마는 공장 문 닫아서 안 된다고 했고요. ‘아기는 공장에서 만드는 건가?’하며 의아했어요. 내일 아침에 문이 열리면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될 텐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고 치사하다 여겼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때의 저를 매우 치고 싶네요.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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