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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Dec 30. 2024

처음은 어렵고, 두 번째도 만만치 않다-1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아영의 허벅지를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발끝을 세워 다리를 떨고, 엄지손톱을 입에 넣어 끝을 잘근잘근 씹는 동안에도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입안 가득 거친 촉감이 느껴졌다.

엄지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스마트폰 속 타인의 이야기를 눈으로 훑었다. 확인하는 데까지 몇 초면 충분했지만, 그 시간마저 견디기 어려웠다. 손바닥으로 쥐고 있는 딱딱한 촉감, 그것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아이씨, 어떡하지.”

머릿속에 있는 동안엔 불안한 상상일 뿐이었지만, 입 밖으로 뱉는 순간 눈에 보였고 현실이 되었다. 단단한 막대기에 그어진 선명한 두 줄, 임신이다. 보통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해 소식을 알리는 등 각자의 방법대로 기뻐하지만, 아영은 그럴 수 없었다.

아이가 생긴 날이 언제인지는 눈앞에 뚜렷한 두 줄처럼 정확하게 기억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늘 품 안에 사직서를 안고 버티는 것처럼 이혼 서류 한 장 소중하게 품고 살던 그녀였다. 신혼 초부터 다툼이 잦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꾸준히 사이는 멀어졌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남편에게 내민 날이 문제의 그날이었다.

하필 술을 마셨고, 하필 너무 많이 마셔 화해했다. 이혼을 결심한 날 둘째가 생긴 셈이다. 인생은 한방이라더니 터져야 할 곳에서는 안 터지고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단 한 번 만에 이럴 줄이야. 사이가 좋았다면 태명을 ‘로또’라고 지으며 기뻐했을까. 하지만 아영은 변기에 앉아 바지도 추켜올리지 못한 채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을 뿐이었다.

‘곤란한데.’

초조해진 마음에 계속 다리를 떨고 손톱을 입에 넣었다. 불안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하는 행동이다. 결혼 생활 동안 아영의 손톱은 반 이상 남아있던 적 없을 정도로 매일 잘근잘근 씹어대 아이가 가구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뗄 때마다 애를 먹었다. 그런 아영의 모습을 보면서 단 한 번도 대신 뜯어주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손톱이 더 짧아졌다.     




“화장실 전세 냈냐? 빨리 나와. 배 아파.”

남편이 화장실 문밖에서 소리쳤다. 정작 본인은 아이 좀 보라고 하면 화캉스(※화장실과 바캉스의 합쳐진 말로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휴식을 즐긴다는 뜻)를 떠나 나올 줄 모르면서 아영이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득달같이 달려와 빚쟁이처럼 문을 두들긴다. 이러니 변비가 생길 수밖에.

“멀었어?”

남의 속도 모르고 재촉하는 똥쟁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잠긴 문을 벌컥 열고 그의 눈앞에 임신테스트기를 들이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직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아.”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얌마의 중간쯤 되는 발음으로 아영을 찾는 작은 목소리가 문틈 사이에서 들렸다. 아직 입 밖으로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어눌한 발음이다. 손잡이를 살짝 돌렸더니 아영의 눈이 아이의 얼굴로 채워졌다. 엄마를 보고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 뒤로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뭘 봐, 짜증 나게.”

지금 당장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변기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건 더 싫었다. 아이만 받아들고 문을 닫아 버렸다.



‘이대로 지워버리면 아무도 모르잖아.’     


아이는 암벽등반이라도 하는 듯 온몸에 힘을 주고 아영의 다리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해서는 안 될 상상까지 하자 죄책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세포분열 중이라도 엄마의 감정은 느낀다던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괜히 부풀어 오르지도 않은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터졌다면 좋았을 텐데.

잊힐 때쯤 되면 한 번씩 출산 후 아이를 버린 엄마들의 기사가 나온다. 비가 오는 날 베이비 박스에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간 이도 있었고, 심하면 공중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는 무책임한 이도 있다. 분명 누군가는 간절히 원해 시험관 시술을 받기도 하고 난임 치료를 받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줄이 떨어진 열쇠고리 버리는 것처럼 쉽게 끊어 버렸다. 불공평했다.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얼굴조차 모르는 그녀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비난할 뿐이다.

혼자 열 달을 버티고 고독한 진통을 겪어야 했을 그녀들의 외로움과 축복받지 못한 아이의 탄생은 어땠을까? 물론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다고 한들 그들의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아영은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하라 한다.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으면 결혼하고 그 후에 아이를 갖는 게 순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아영의 인생 계획에 ‘아이’라는 존재는 필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딩크족을 선호한 것도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 성수기라는 5월, 아영은 행복한 얼굴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6월, 한 달 만에 임신을 확인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였기에 양가 부모님은 오히려 잘됐다고 기뻐하셨고,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언젠가 겪을 일이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생긴 아이라 태명도 ‘알로하’라고 지었다. 하와이의 파란 하늘을 닮은 맑은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아이는 변기에 앉아 있는 엄마 다리 위에 앉아 온몸을 흔들고 있다. 아이의 손가락 끝은 아영의 얼굴을 쥐어뜯고 있었다. 손가락 놀림이 몹시 야무지다.     


“똥도 제대로 못 싸는데, 이 짓을 또 하라고?”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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