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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Dec 23. 2024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2

“학교, 못 가려나.”     


아이가 아픈 와중에도 등교 여부가 걱정됐다. 연차가 며칠 남았는지, 당장 오늘까지 처리해야 할 일은 없는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지혜를 괴롭게 했다. 아침에 상태를 보고 학원과 학교에 그리고 회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황을 그려보는 동안에도 분홍 고무장갑은 바쁘게 움직였다. 움직일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다시 자기는 글렀네.’ 바닥은 물론 싱크대와 벽까지 얼룩진 아이의 흔적을 닦아냈다. 준우의 아픔도 그렇게 지워지길 바랐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여전했다.     



“난 회사에 가는 게 힐링이야. 어른 사람이랑 말할 수 있거든.”

“맛을 느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복직하고 알았다니까.”

“회사는 일한 만큼 월급이라도 주잖아.”

“내 일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얼마나 좋아. 분업도 잘되어있고.”

“이제 애들이 좀 크니까 엄마가 일 나가는 걸 더 좋아하던데?”     


워킹맘들이 모이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전업으로 지낼 때보다 활기가 넘쳐 보인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을 그만둔 삶을 후회하며 그녀들의 모습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지는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을까?

전업주부로 지내면 무능하다고 ‘맘충이’라 손가락질하고, 꾸역꾸역 출근하는 워킹맘은 독하다고 손가락질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의 심정이었다.

8년 만에 돌아간 회사에 워크숍 불참을 말했던 날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전업으로 지내다 출근하게 됐는데, 남편은 그녀가 전업일 때처럼 집 컨디션이 유지되길 바랐다. 물론 본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잠자기 직전까지 멀쩡했던 아이가 아침부터 분수토를 한 날에는 여기저기 전화해 종종거리는 것도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고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를 밀어 넣는 괴력도 발휘해야 했다. 혈액형이 뭐냐고 묻던 ‘라떼’의 동기들이 있던 자리에는 MBTI를 물어보는 신입사원들이 대신해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임시공휴일에도 긴급 돌봄을 신청해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블라우스 소매를 꽉 쥔 채 미안한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출산하고 바로 복귀해 여자 화장실에 숨어 울면서 모유를 짜냈다.

이를 꽉 깨물고 하루하루 버텼지만 그럼에도 각종 경조사에 늦기라도 하면 시댁 식구들의 눈총까지 받아야 했던 수많은 날, 아이의 부족한 면은 모두 ‘일하는 엄마 탓’으로 돌아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준우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지혜는 아이를 데리고 친구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마 5살 어쩌면 6살이었을까. 친구의 아기는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어린 아기였다. 누워서 모빌을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준우도 나란히 누워 모빌을 바라봤다. 일하는 엄마라 여기저기 맡겨야 해서 한 곳에 누워 모빌을 보는 것조차 하기 힘들었을 아이의 그 시절이 떠올라 괜히 미안해졌다.

“지금이라도 모빌 하나 만들어 줘?”

농담이었지만 지혜의 눈은 웃을 수 없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만큼이나 멋진 여성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를 잃고 싶지 않았다. 욕심이면 좀 어때, 결국 엄마도 사람인데.

잠에서 깨지 않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한 시간 거리 시댁에 데려다 놓고 출근하는 이도 있고, 가장 이른 시간에 등원하고 가장 늦은 시간에 하원을 해야 하는 아이를 떠올리며 종종걸음으로 퇴근하는 이도 있다. 쉬는 날에도 일찍 일어나 꾸역꾸역 도시락까지 싸서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나들이하러 갔다. 평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바쁜 엄마 아빠 때문에 혼자 빈 집을 지키고 있던 것이 어린 시절 기억의 전부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주말이지만 육아 출근을 한다.

퇴근이 없는 출근만 반복되는 삶. 누가 떠밀지도 않았고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기에 겨우 버틸 뿐이다.

혼자 준비해 나가기에도 바쁜 아침 시간, 홀로 식탁에 앉아 있는 아이의 입에 주먹밥이라도 하나 더 넣어주며 화장했다. 혹 누적된 피로가 아이 탓이라 할까 봐 아이가 없던 시절보다 더 공들여 얼굴을 두들겼다.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이 남긴 주름은 아이가 등원한 후에도 흔적이 남아, 다시 만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지혜를 놓아주지 않았다. 보채는 아이를 카트에 태워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돌아온 집은 분명 퇴근이었지만 출근과 다를 바 없다. 창밖은 이미 까맣게 물들었지만, 지혜의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양손에 들린 장바구니의 묵직함에 움직일 때마다 휘청거렸다. 거대한 건물 밑에 깔린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그녀의 한쪽 다리를, 때로는 허리춤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모든 것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배려 좋은 회사라도 ‘이러니까 애 엄마는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더 노력해야만 했다. 모두에게 친절하기로 소문난 동네 엄마의 입에서 ‘엄마가 일을 다녀서 아이가 엉망이네’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더 부지런해야 했다. 분명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고 선택한 삶인데, 지혜의 형태는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새싹이었던 아이는 꾸준히 성장해 어느새 나무가 되고 있다. 집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것 보다 친구와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는 지혜를 향해 엄마 퇴근하고 올 때까지 혼자 있을 수 있다고 손을 흔들어줄 만큼 자랐다. 하지만 그녀의 시간은 준우가 태어나던 그날부터 멈췄다.


쿵.

무겁게 닫힌 현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 앞에서 늘 단단하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버텼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몸에 연결된 전원을 뽑아내는 것처럼 힘이 빠졌다. 크게 숨을 고르고 몸에 힘을 줘 일어섰다. 한숨이나 쉬고 있을 여유 따위 없었으니까. 

엘리베이터 구석에 몸을 기대고 보니 거울에 비친 머릿속에 흰머리 한 가닥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 흰머리를 봤을 때는 놀라 뽑아버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덤덤하기만 하다. 놀라는 것에도 체력이 필요하니까. 흰머리를 뽑아 주겠다더니 검은 머리카락을 뽑아버린 준우가 떠올랐다.

“아 맞다. 빨래.”     



우릴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네. 
드라마 <미생> 중에서     




[익명게시판]

회사도 다녀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일하는 엄마로 사는 거 쉽지 않죠? 저도 그랬어요. 제가 지금 직장생활 19년 차예요. 당연히 중간에 위기도 많았고요.

친정 부모님은 딱 잘라 아이 안 봐준다고 하셨고, 시부모님은 지방에 계셔서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남편이 자상하고 가정적이기라도 하면 덜 서러웠을 것 같은데, 어찌나 곱게 자랐는지 남만도 못한 인간이에요. 조금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님 아이가 지금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아이 6학년 때쯤 회사를 잠깐 쉰 적이 있었어요. 집에 오니 엄마가 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며칠 안가던데요? ㅋㅋ 엄마 다시 회사 안 가냐고, 언제부터 다시 가냐고, 제발 좀 가라고 그러더라니까요!

조금만 더 견디세요. 가까이 살면 술 한잔 사드리고 싶네요. 아, 회사 안 갈 거면 약속이라도 만들어 나가라고도 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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