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도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거듭할수록 과감해진다고 한다. 아이가 잠을 자는 동안 혼자 마시던 술이 그랬다. 숟가락 하나를 토막 낼 기세로 덤볐던 처음이 어려웠을 뿐 한번 개방된 알코올의 촉감은 며칠이 지나도록 머릿속에 들러붙어 있었다. 분명 오래된 맥주 한 병에서 시작한 것이 한 캔이 되었고, 한 캔은 금세 두 캔이 되었다. 그것들이 여섯 개들이 한 팩이 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을 볼 때마다 거침없이 맥주를 카트에 담았고, 그 양은 점점 늘어났다.
시어머니가 섭섭한 말씀을 하셔서, 아이가 다쳐서 속상하니까, 남편이 출장을 가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까. 핑계도 다양했다. 맥주를 담는 손은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한 캔씩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전남침과 바람폈던 자신만만한 그년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던 것처럼 손가락 끝에 잔뜩 힘을 줘 쥐어뜯었다. 그 와중에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 봐 다용도실에 가서 여는 치밀함까지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반복되던 작은 일탈은 기분 좋게 알딸딸한 상태가 아니라, 온몸이 휘청대고 눈앞에 찌그러진 캔이 여러 개 놓아야 끝났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초콜릿을 상자째로 사다 놓고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는데, 종류만 바뀌었을 뿐이지 좋아하는 걸 먹으면서 기분 전환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세상을 향해 한걸음 발을 내디뎠다. 평소보다 단단한 표정으로 똑바로 걸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진의 뒷모습은 분명 비틀대고 있었다. 골목 끝 편의점까지 고작 3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30분쯤 걸리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오가는 사람이 뻔했을 그곳에 아이와 우유를 사러 왔던 엄마가 몇 시간 후 비틀대며 나타나는 모양새를 어떻게 볼까?' 따위는 세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거기까지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늘 취해있는 상태였으니까.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은 늘 세진을 환영하며 함께 춤을 추었다.
현관문을 열면 집안 가득 채워져 있는 건 따뜻한 공기가 아니라 알코올의 냄새였다. 쿰쿰한 냄새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해 주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마치 2년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는지 제대로 된 안주조차 없이 조용히 맥주병을 비틀어 털어 넣었다. 혹 소리에 잠든 아이가 깨기라도 할까 봐 드라마나 유튜브 따위는 함께 하지 않았다. 시커먼 주방 구석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쭈그리고 앉아 스마트폰 빛을 벗 삼아 한 모금 삼켰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게시물의 흔들리는 활자를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남편의 스마트폰을 훔쳐봤다는 누군가의 글에 안타까움을 표했고, 엄마로서의 삶에 후회하는 누군가의 글에는 공감을 표현했다. 그러는 동안 한 모금이 주던 위로는 어느새 세진을 향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갈증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축축한 느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촉촉 보다는 축축에 가까웠다.
'이게 뭐지?'
부드럽기도 했고 따뜻하기도 했다. 지끈거리는 머리 탓에 눈이 쉽게 떠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몸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하늘이 어디고 땅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던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맙소사. 아이가 잠들기 기다렸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반대 손으로는 아이를 토닥거렸다. 거기까지다. 잠들었나. 아니, 정신을 잃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고, 필름이 끊겼다는 게 가장 정확했다. 가위로 잘라버린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졌다.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터질 것 같은 묵직한 기저귀가 아이 엉덩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모래를 한가득 품고 빠져나간 파도가 다시 해변으로 돌아올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것들을 가지고 돌아온다. 튜브를 타고 있던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 아무 데나 버린 쓰레기를 인간에게 되돌려주기도 한다. 그렇듯 파도는 세진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주량에 자신 있었고, 술을 마신 후에도 아이를 돌봄에 문제가 없다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기저귀를 갈아주지 못한 아이의 연약한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세진의 얼굴도 함께 빨개졌다.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왔다. 무거운 머리를 일으켜 아이를 돌아보니 누구 때문에 엉덩이가 빨개졌는지도 모르는 채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분명 쓰라렸을 연약한 피부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세진이 아이를 안아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런 엄마라도 괜찮다는 듯 그 작은 품 가득 채워 오히려 세진을 토닥여줬다. 그것은 비난도 원망도 아니었다.
이럴 때 찾는 게 고작 익명게시판이라니. ‘아무래도 알코올 중독인 것 같아요’라고 글을 썼다. 차라리 따끔하게 혼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누군가 세진에게 '왜 그렇게 술을 마시나요?'라고 물어보면 뭐라 답했을까.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사실 조금 불안한 상태였음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날은 물에 담가진 이불 빨래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소멸해 가는 모습에 무기력함과 불안함을 느꼈다.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 느꼈든 감동 따위 잊힌 지 오래다. 아니, 애초에 존재하긴 했었을까?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은 행복함도 사라졌다. 또 어떤 날은 눈동자 가득 사랑을 담아 세진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에 마치 굉장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해져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감정 변화는 어떤 박자에 맞춰야 할지 난감해 빠르게 흔들리는 변화를 종종걸음으로 좇을 뿐이었다.
누군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 했고, 누군가는 악하다 했다. 인간에게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하는 것처럼 세진에게도 행복한 자아와 그렇지 않은 자아가 공존하고 있었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날이 있었고, 나만 겪는 일 아닌데 왜 유난 떠냐며 무신경한 화살을 자신의 가슴에 꽂았다. 그렇게 견뎠다.
‘아이 엄마가 담배 피우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진은 왼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오른손으로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뤘다. 게시물이 등록되었다는 알림창이 보인다. 자신을 대신해 비난받을 상대가 필요한 세진의 움직임이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러 나간 날이다. 술 냄새가 아닌 햇빛의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들이 부러워 뒤를 쫓다 보니 공원을 걷고 있었다. '아이가 추워 보인다, 더워 보인다, 양말을 신겨라, 벗겨라.' 따위의 걱정을 빙자한 간섭이라도 누군가 말을 걸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저벅저벅 걷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유모차 바퀴에 밟힌 나뭇가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평화로움에 기분이 썩 괜찮았다. 유모차를 미는 손에 힘을 주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바람을 타고 모처럼 아이와 함께 걷는 기분에 정신이 차차 맑아지는 듯했다. 뒤따라 부는 바람에는 익숙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퇴근 후 남편이 몰고 들어오는 것과 비슷했다. 세진의 아빠에게서도 맡았던 그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혹시 사람이 죽으면 저런 얼굴이지 않을까 싶었다. 여자의 창백한 입술에는 담배가 물려있었다. 반쯤 타들어 간 그것에는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와 세진의 코를 찔렀다. 까만 모자로 가려진 눈은 울고 있는지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유모차가 밟고 지나간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어두운색만 보인다. 그녀의 곁에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유모차의 주인은 잠이 들었는지 작은 발만 삐쭉 빠져나와 있었다. 그 발을 담배 연기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아이 엄마가 유모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지적하지 않았다. 한껏 내려앉은 입꼬리는 가녀리지만 단단해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지침과 괴로움이었다.
'무슨 아기 엄마가' 보다는 '오죽했으면 아기 엄마가'라는 게 어울렸다. 감히 위로할 용기조차 나지 않아 못 본 척 지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아기 곁을 떠날 수 없던 엄마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 세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 배려가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 말을 건네주길 기다렸을까? 다 들리는 수군대는 목소리 대신 혼꾸멍을 내 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어쩌면 다독거리는 사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지금의 세진처럼.
그래서 또 마셨다. 알고 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걸. 숙취가 심해져 모든 것을 게워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몸 안에 모든 것들을 뱉어 버려야 엉망인 마음이 진정될 것도 같았다. 왜 아이는 엄마가 웃으면 함께 웃고 울면 따라 우는 걸까. 술이 덜 깨 엉망진창이 된 마음마저 아이에게 번질까 봐 미안해 더 크게 울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세진이 더 크게 우는 모습을 보다 함께 따라 울었고 둘은 끌어안은 채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개판이다.
지금껏 쏟아낸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두 사람 곁에는 찌그러진 캔 몇 개가 굴러다녔다.
[익명게시판]
저는 아침부터 얼굴도 본 적 없는 남편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제사상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정작 그들의 후손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네요. 제사라는 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들의 몫이라니, 법으로 제사 따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웃긴 건, 정종은 자기들끼리만 돌려 마셔요. 왜? 왜 나는 안 주는데? 좋은 건 자기들이 다 해먹네요. 아, 열받아.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