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줄 알았던 남자는 보름달만 뜨면 늑대로 모습이 변했다. 한없이 선한 지킬박사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한 하이드가 되기도 하고,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던 이웃이 알고 보니 범죄자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의 몸 안에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했고, 그건 세진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했던 낮과 달리 아이가 잠들고 나면 새로운 자아가 눈을 뜬다. 허물을 벗은 뱀처럼 스르륵 이불을 빠져나와 야반도주하려는 매 맞는 아내처럼 발꿈치를 들고 분위기를 살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고 싶은 것처럼 은밀하다. 운이 좋아 버스 지나가는 소리나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리면 그 순간을 노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단숨에 문을 벌컥 열어젖혔던 밝은 시간과 달리 숨소리마저 참아야 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 속에 숨어야 했다.
세진의 움직임은 냉장고 앞에서 멈췄다. 책장을 덮어 이야기의 흐름을 끝내는 것처럼 모든 신경을 끊어버린 채 냉장고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적막하고 어두운 주방. 그 안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그것의 묵직한 입을 힘껏 당겼다.
“널 기다리고 있었어.”
텅 빈 어둠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병맥주가 냉장고 구석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결혼 전 세진은 굉장한 애주가였다. 첫차가 다닐 때 까지 마시는 날도 있었으니, 일주일 중 8일은 술을 마신다고 말할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마셨다. 날이 좋으면 기분마저 좋아 상큼한 샐러드에 맥주를 마시며 텐션을 끌어올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부침개에 막걸리를 빼먹지 않았고. 우울한 날엔 매콤한 낙지볶음에 소주를,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가면 아침부터 편의점 캔맥주를 쓸어 모았다. 괜히 분위기 내고 싶은 날엔 와인이나 칵테일을 마셨다. 별다른 약속이 없을 때는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대충 잡히는 대로 사 온 안주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사실 날씨나 기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핑계였을 뿐이니까. 끼리끼리 논다더니 주변에도 애주가가 많았기에 술독에 빠진 삶은 자연스럽게 유지됐다. 어쩌면 세진의 몸 안에 흐르는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끈적한 알코올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세진이 갑자기 술을 마시지 않았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본 날부터였다. 임신 10개월과 모유 수유를 하는 12개월까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금주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게 모성애일까,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정신력은 굉장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정돈이 안 되어있어 엉망인 냉장고 안에서 유독 눈에 띄던 갈색 병. 오프너도 없는 집에 어째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치 세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2년 동안 잠들어있던 세진의 본래 모습을 흔들어 깨웠다.
미친 듯이 갈증이 났다. 며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것처럼 초조했다. 당장 병을 따 주둥이에 입을 대고 꼴꼴꼴 쏟아지는 노랫소리를 듣고 싶었다.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반찬 레시피를 적어 넣었던 검색창에 ‘병맥주 숟가락으로 여는 방법’을 빠르게 입력했고, 영상을 보며 모습을 흉내 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봤을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니 쉽지 않다. 손바닥이 새빨개지도록 빈틈을 내어주지 않는 유리병에 화가 났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도도한 주둥이를 열었다.
차가웠던 맥주병은 숟가락과 씨름하는 동안 식어버렸지만, 축배를 들기 충분했다. 톡톡 쏘는 알코올의 맛은 단숨에 한 병을 비워내기에 적당했다. 만족감이 들어온 자리에 허탈함이 딸려 들어왔다. 병을 뒤집어 마지막 한방울까지 핥아내는 제 모습에,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어 자조적인 웃음이 터졌다.
‘출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누군가 올린 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트를 꾹 눌렀다. 동의의 표현이다. 등은 바닥에 대고, 혀 돌기 사이사이에 남아있는 쌉싸름한 맛을 느끼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세진이었다.
'그러게 나는 어떻게 살았더라.'
듣는 이도 없지만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부터였을까, 이제는 혼잣말이 익숙하다.
누워서 똥만 싸던 아이가 어느새 앉고 기어다녔다. 시간이 흐른 후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는 동안 세진은 그대로였다. 엄마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세진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여전히 임부복을 입고 있었고 임신 기간 중 늘어난 뱃살도 그대로였다.
‘그러다 우울증 와요.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취미를 만들어봐요.’
글쓴이의 마음에 어느정도 공감은 했지만,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적는 댓글은 본인과 크게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게 옳다고 여겼다. ‘맘카페’ 모든 엄마가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한 번씩 어둠이 세진을 집어삼킬 때면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런 세진 앞에 나타난 한 모금의 맥주는 서러웠던 지난 2년을 구원해 주는 것 같았다. 아무도 관심 없던 엄마로서의 삶을 돌아보며 그동안 애썼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만난 알코올은 요란한 트림 소리를 내며 세진의 가슴 속을 비워냈다. 그동안 짓누르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텅 빈 병을 거꾸로 세워 한참을 탈탈 흔들었지만, 더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이미 세진의 혈관을 훑고 트림으로 빠져나간 후였다.
‘조금 아쉬운데.’
입맛을 쩝쩝 다시며 들숨과 날숨에 채워져 있는 알싸한 맛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찌릿한 가슴을 쥐어짜 맥주가 섞인 모유를 짜 싱크대에 흘려버리는 중에 희뿌연 그것을 따라 그동안의 절제력도 따라 흘러내렸다. 빠르게 사라졌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