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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Nov 25. 2024

귀는 네 개인데, 입이 없는 것은?-2

“자기는 좋겠어. 우리 애들은 얼마나 착해. 사춘기인데 이렇게 같이 밥도 먹고 수다 떠는 집은 거의 없을걸? 아예 겸상 안 하는 애들도 많다더라.

내 친구 혁이 알지? 걔네 집 애들은 집에 오면 말도 안 하고 밥도 방에서 먹는대. 방문은 화장실 갈 때랑 학교 갈 때만 열려있다지 아마. 집에서도 귓구멍에 이어폰 꽂고 있는데 그게 뭐겠어. 나는 엄마 아빠랑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반항의 표현이잖아. 어휴, 답답해.

우리 집은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좋아, 안 그래? 심지어 우리 집은 아들만 셋인데 말이야.”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법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셋 아니고 넷, 너는 왜 빼냐.’

남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특히 아이가 자랄수록 자식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은 진희를 부러워하며 비결을 물었다. 좋은 엄마라고, 아이를 잘 키웠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하지만 진희는 숨이 막힌다. 고막을 찢어버리면 그만 들을 수 있을까?

‘좋은 엄마 그만하고 싶어.’

차마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한 생각은 입안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렸다. 좋은 엄마라는 말은 솜사탕처럼 끈적거려 목구멍을 조이는 것 같았다.     



진희의 친정 식구는 말이 적은 편이다. 자기 말을 하는 것 보다 상대의 말을 듣는 걸 더 좋아한다. 결혼 전 세 식구가 둘러앉은 식탁은 젓가락이 반찬 그릇에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와 아버지가 틀어놓은 뉴스 소리만 들리는 정도였다. 그에 비해 연애하던 당시부터 남편은 말이 많았다. 그 모습이 좋았다. 벨 소리가 울리면 후다닥 진동으로 바꿔야 하는 미술관처럼 고요하던 진희의 삶에 통통 튀는 라디오 소리처럼 파고드는 그가 좋았다.

하지만, 그 라디오는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그의 소리는 더 커졌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언어 자극을 줘야 한다며 평소보다 더 자주 입을 놀렸다. 더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첫째는 또래보다 말이 빨리 트였다. 작은 입이 움직이며 뱉어내는 목소리가 귀여워 입에 집중하고 반응해 줬다. 작은 단어 하나에도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크게 웃고 안아줬다. 놀이터에서 놀던 꼬마들도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며 달라붙었다. 팔짱을 낀 채 지켜만 보는 다른 엄마들의 모습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듣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이 되자 더 이상 잡을 손이 없었다. 작은 입술을 바라봐야 하는 눈은 누구부터 향해야 할지 갈 길을 잃었고, 종일 소란스러운 소리에 귀는 지쳤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게 힘에 부쳤다.     


분명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들 셋은 목 메달이라고 하는 말을 비웃으며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고, 실제로 그랬다. 아들만 있는 엄마도 우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너무 사랑하는 아이들이 늘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엄마의 희생은 당연하다 여겼다. 마치 그녀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TV에서 나오는 육아 전문가들은 늘 아이의 말에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라고 입을 모았고, 열심히 따랐다. 설거지하는 중에도 아이가 말을 걸면 손을 털고 눈높이를 낮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 몸이 몹시 피곤해 까무룩 잠이 들어있는 동안에도 남편이 지나가는 말을 하나 툭 던지면 벌떡 일어나 잽싸게 받아 대꾸해 줬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집에 돌아가는 중에도 아이들에게 전화가 오면 바닥에 내려놓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밥을 입에 문 채로 떠드느라 한 시간 넘게 밥상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려 주기도 했다.

부처와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일은 그녀에게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부처 같은 진희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는 건 아무도 모른다.     



“한 명씩 말해!”     


진희의 목소리에 아들 셋이 동시에 손을 번쩍 들었다. 아니 넷이다. 간택을 받아 후궁이라도 되고 싶다는 듯 간절한 눈빛까지 보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입덧이라도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다. 몸에 기운이 전부 빠져 버려 손끝이 덜덜 떨리는 기분도 들었다. 입안은 단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쓴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진희는 미소를 띤 가면을 벗지 않았다.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모르는 세 아들, 아니 네 남자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목소리에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서울에 있는 모든 집의 전기를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힘이었다.

누군가 진희의 몸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심지어 땀구멍까지 죄다 막아버리고 오직 입만 벌려놓은 채 끊임없이 음식을 쑤셔 넣는 것 같았다. 씹을 틈도 주지 않고 무작정 넣는다. 밀어 넣고, 구겨 넣고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음에도 힘껏 눌러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먼저 들어간 음식들이 몸 안에서 썩어 가는지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밖으로 뱉어 버리거나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상대를 막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

“나 머리가 너무 아픈데, 조용히 좀 해 봐.”

야구장에서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륙하는 비행기 옆을 지나가고 있는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녀는 개미였고 고양이였다. 누구도 진희의 목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화가 난다. 견딜 수 없다.     

“조용히 좀 하라고!”     

콩 주머니에 실컷 두들겨 맞던 박이 빵 하고 터졌다. 속이 곪아 터져버려 진희의 마음은 결국 큰 소리를 냈다. 1초? 2초? 어쩌면 그보다 짧았을지도. 진희를 향한 네 개의 입이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모두가 멈춘 틈을 노려 먼저 말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결혼식 갈 거야? 갈비탕 나온다니까 갈 거지? 난 뷔페가 좋은데 그게 좀 아쉽네.”     

그 틈을 타고 시어머니 아들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갈비탕을 좋아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둘째라는 것조차 아직 모르는 눈치다.

네 명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귀는 네 개였지만 진희의 말을 들어주는 귀는 없었다. 귀는 네 개인데 입이 없는 것은 그녀, 바로 엄마였다.     



[익명게시판]

좀 취한 것 같아요. 평소에 술을 안 마시는데 오늘은 좀 마셨어요. 특히 동네 엄마들과의 술자리는 말실수라도 할까 봐 조심스러워 술자리를 피했는데, 오늘은 어쩌다 보니 잔뜩 취해 버렸어요. 솔직히 말하면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 분명히 기억나는 게 있어요. 큰 애 친구 엄마가 저더러 술에 취하니 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애들이 말이 많은 게 엄마를 닮아 그러냐고 하던데요.

이건, 결투 신청이죠?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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