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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Nov 18. 2024

귀는 네 개인데, 입이 없는 것은?-1

상체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 몸은 사자의 것을 한 기이한 형체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고독한 그의 눈빛은 감히 아무도 지나갈 수 없게 하겠다는 듯 살벌하기까지 하다. 혹 자만한 영혼이 그 앞을 지나가려 할 때면 어김없이 질문을 던졌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가를 것 같은 목소리다.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에는 두 개, 저녁엔 세 개인 것이 무엇이냐? 만약 맞추지 못한다면 너를 잡아먹겠다.”

“정답은, 사람입니다!”

질문을 한 것은 스핑크스였다. 이미 오이디푸스가 남긴 질문의 답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답하기가 어렵지 않다. 답을 했으니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귀는 네 개인데 입이 없는 것은 무엇이냐?”

대답하지 못한 이는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반긴 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고기 냄새다. 학원 다녀오느라 지친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진희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기를 좋아한다. 소고기는 당연하고 돼지고기, 오리고기, 양고기, 닭고기, 심지어 계란까지. 첫째는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티라노사우루스였는데, 정말 전생에 육식공룡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기만 보면 환장하고 덤빈다.

“밥 먹자!”     

사실 부를 필요도 없었다. 냄새를 맡고 달려온 아이들은 이미 6인용 식탁을 꽉 채운 상태였으니까. 중학생 첫째, 사춘기의 미친 정신과 정상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둘째, 딸 역할을 하는 애교 덩어리 셋째, 그리고 시어머니 아들까지 여덟 개의 눈동자가 진희의 손에 놓인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자다. 셋째마저 아들이라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아이를 가져보려 했지만, 친정엄마가 뜯어말렸다. 아들 쌍둥이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걱정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은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여 포기하기로 했다. 비록 목욕탕에 함께 갈 수 있는 딸은 없지만, 엄마 가방도 들어주고 바퀴벌레도 대신 잡아주는 제법 든든한 아들들이다.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찾듯, 초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킨 엄마들은 똘똘한 딸을 둔 엄마를 찾는다. 실내화는 기본이고 가끔은 책가방을, 심지어 한겨울에도 태권도장에 겉옷을 벗어 둔 채로 집에 오는 정신 나간 아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좀처럼 이야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꼼꼼한 수다쟁이 딸들은 소소한 것까지 엄마에게 전달한다. 담임선생님의 기분은 어때 보였는지, 급식실에서 애들이 다툰 이유는 무엇인지, 누가 숙제를 안 했는지 같은 것들을 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희는 굳이 딸 엄마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셋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귈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말 많은 세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 아!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하며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작은 시골 마을 이장님처럼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모든 것들을 입으로 뱉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확성기였다. 가끔은 진희가 딸 엄마에게 소식을 전달 해 줄 때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시아버지가 말이 많은 편인데 어쩌면 유전일 지도 모르겠다. 매끼 밥상에 고기를 올려야 하는 것도 시아버지를 닮았다. 지독한 유전자의 힘 같으니.

그들의 입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쉬지 않는다. ‘밥을 먹느라’가 아닌 ‘말을 하느라’ 쉬지 않는 것이다. 상추를 펼쳐 쌈장을 찍은 고기를 얹고 밥 한 숟가락 얹은 위에 야무지게 김치까지 더한 것을 입에 쑤셔 넣은 상태로도 말한다. 경쟁이라도 하듯 상대방의 목소리 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는다. 입이 열릴 때마다 튀어나오는 밥풀은 자유분방한 댄서의 춤사위 같기도 했다.     



‘귀에서 피 날 것 같음.’     

토도독,  화면 위로 빠르게 엄지손가락을 놀린 진희는 등록 버튼을 눌렀다. 신나게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난무한 현실에 비해 익명 게시판은 그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내용이 궁금한 제목들이 몇 눈에 띄었지만, 소란한 식구들은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엄마는 안 먹어?”

“엄마도 얼른 앉아서 내 얘기 좀 들어 봐.”

“그래, 자기도 먹어야지.”

“엄마, 식구들 먹을 때 같이 먹는 거라며.”     


같은 말을 하는 네 개의 다른 목소리에 어.쩔.수.없.이 엉덩이를 의자에 밀어 넣는 순간, 허공을 향해 떠들던 입들이 모두 진희를 향했다. 궁지에 몰린 토끼를 향해 달려드는 육식동물 무리와 같았다. 하, 이래서 같이 밥 먹기가 싫다. 체할 것 같아.     


“엄마, 오늘 점심시간에 형이 실내화 신고 축구했어요! 그리고 엄마랑 욕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다른 형들이랑 계속 욕하고, 그리고 또.”

“엄마, 민준이 알지? 여자 친구랑 헤어졌대. 얼마 전에 백일이었는데 차였나 봐. 나보고 모쏠이라고 놀리더니, 쌤통이다!”

“엄마, 내가 먼저 말하고 있었는데 형이 내 말 자르고 자기 얘기 해. 엄마가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끊지 말랬잖아. 혼내줘!!”

“엄마! 고기 진짜 맛있다. 이거 어디서 샀어? 이 집 고기 잘하네.”

“아, 형! 내가 말하고 있었잖아.”

“자기야, 주말에 결혼식 있는데 시간 있으면 같이 갈래? 갈비탕 나온대. 자기 갈비탕 좋아하잖아.”

“엄마, 오늘 선생님이 체육 시간에 달리기하다 넘어졌다. 웃기지?”

“엄마! 형 혼내줘!”

“자기야, 감자볶음 더 없어?”

“엄마, 엄마.”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차올랐다. 바다 깊은 곳에 빠진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록밴드 공연장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 틈에 눌려 있어도, 떠밀려간 자리가 대형 스피커 바로 앞이라 해도 지금보다 나을 것 같았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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