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은 작은 병아리 같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귀여운 입술을 쉬지 않고 삐약 거린다.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린 엄마 품에 안겨 배시시 웃기도 하고, 도토리처럼 비슷한 모양새의 아이들이 둘셋씩 짝지어 학원을 향하기도 한다.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라고 했다. 분명 급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방향을 튼다. 종종거리던 발걸음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달콤하고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적당히 불어 말랑거리는 떡에 기다란 꼬치를 푹 꽂아 집어 든다. 뚝뚝 떨어지는 국물이 뽈록 솟은 배 위에 떨어지면, 그 모습 또한 재밌어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누구나 기억 속에 하나쯤 있는 그 맛. 학교 앞 떡볶이. 그렇게 너희들도 우리처럼 추억을 쌓아간다.
그 시절 우리에겐 휴대폰이 없었다. 약속 시간을 정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기 일쑤였다. 혹시 내가 도착하기 전에 가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약속을 잊은 건 아닐까? 제 역할에 충실해 쉼 없이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기만 했다.
운동화 앞 코로 실컷 문지른 탓에 애꿎은 땅바닥은 움푹 패어 있었다. 내 발이 움직일 때마다 폴폴 흩뿌려지던 모래가 나의 소식을 품에 안고 날아가 그에게 닿길, 나의 기다림을 전해주길, 그렇게 바라곤 했다.
딩동 딩동. 기다림에 지친 내 손은 기어이 벨을 누르고야 말았다. 동그랗게 말아 쥔 작은 주먹은 쿵쿵거리며 나의 존재를 상대에게 알렸다.
“ㅇㅇ이, 집에 있어요?”
빼꼼 열린 문틈 사이로 부스스한 머리를 내민 친구의 어머니 모습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아직도 한밤중이었음을.
책가방을 등에 메고 말끔히 차려입은 딸의 친구를 집 안으로 들이며 허둥지둥 대던 친구의 어머니는 빠른 속도로 친구의 등교를 준비하셨다. 부스스한 머리를 단정히 빗질하고, 냉장고를 뒤져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 와중에 사과라도 한쪽 먹여 보내겠다는 빠른 손놀림에 내 입도 피할 순 없었다. 오물오물 입 밖으로 흘러내리던 달콤한 과즙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어느새 우리는 문 앞에 내던져지듯 서있었다.
다행이다. 네가 나를 두고 간 게 아니라서. 행복하다. 우리는 오늘도 함께일 수 있어서.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학교에 갔다. 어차피 교실에서 다시 만날 걸 알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매일 아침 등굣길도, 하굣길도 함께였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꺼내 마주 앉아 서로의 반찬을 탐했다. 건강에 좋다던 나물 반찬은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에게 몰아주기도 했다. 그 반찬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따위는 관심 없었다. 싫어하는 반찬을 입에 물고 찌그러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숨넘어갈 듯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수업 시간 동안 칠판만 보느라 참아야 했던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으며 서로의 웃음소리를 나누는 소소함. 그 시절 우리의 우정이었다. 지루한 하루를 이겨낼 수 있는 비타민이었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웃게 했을까?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같은 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침샘이 마를 정도로 떠들어도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기껏해야 어제 했던 놀이를 오늘 한 번 더 하는 건데도 그저 행복했다.
성당에서 처음 본 멋진 오빠 이야기에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낮은 비명을 삼키곤 했다. 고작 한두 문제 건너뛴 학습지 때문에 엄마한테 혼나서 코끝이 시큰거렸다. 내 등을 토닥이던 그 손이 몹시도 따스했다. 선생님 등 뒤에 숨어 바스락거리며 까먹던 불량식품에 우리의 혓바닥 색이 같은 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며 소리 죽여 웃어야 했다.
친구들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전달된 쪽지처럼,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이 영원하길, 우리의 우정도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헤어지고, 어른이 될 거라는 것 따위, 그때의 우리는 몰랐다.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교 전이었다면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을까, 목을 빼고 기다렸을 텐데. 이미 교문을 지나친 우리가 집에 가는 시간이, 엄마가 마중 나오는 시간보다 더 빠를 터였다.
호랑이가 장가가는 건지, 여우가 시집가는 건지, 알게 뭐람. 등껍질처럼 매달려있던 가방을 들어 머리를 가리는 성의 따위 없었다. 첨벙첨벙, 그새 고여버린 물웅덩이를 힘껏 밟으며 웃고 또 웃었다. 그때의 우리의 웃음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았나 보다. 한껏 경직되어 있는 얼굴이 기본값인 지금과는 확실히 달랐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흠뻑 젖은 양말은 발을 디딜 때마다 운동화 안에서 질퍽거렸다. 젖은 옷은 축축하기보다 오히려 시원했다. 마주 잡은 두 손은 따스했다.
그 와중에도 참새 방앗간을 피해 가지 않았다. 물에 젖어 무거워진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하나씩 모았다. “아이고, 비를 다 맞았네.”라는 아주머니에게 “떡볶이 주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새빨간 국물에 제 몸을 맡긴 흰떡처럼. 쏟아지던 소나기에 몸을 맡겼던 우리.
지금 너도 어디선가 비슷한 모습을 보고 있을까? 학교 앞 떡볶이의 맛. 한없이 말랑하던 우리의 젊은 날. 누렇게 바랜 앨범 한편에 접어둔, 떡볶이는 우리의 추억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