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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May 05. 2024

오늘 저녁은 카레입니다.

엄마의 주방

계란 프라이가 서서히 뜨거워지면서 틈새에 고여있던 기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에 튀었다. 벌어진 틈새로 뒤집개를 쑤셔 넣어 조심스레 뒤집고 나면 적당히 그을린 바닥이 천정을 향해 눕는다. 

“애들 아직 자는데 웬 계란 프라이야?”

뒤통수에 박히는 남편의 질문은 본인은 그것을 먹지 않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먹으려고 하던 것이었으니까.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나한테도 주둥이가 아니라 입이 달렸거든.”

그냥 내가 먹을 거라고 답해도 됐을 텐데. 뾰족해진 마음은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뜨거운 기름처럼 달궈져 자음과 모음이 입 밖으로 아무렇게나 튀어나와 스스로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형태가 없던 서러움이 비로소 모양새를 갖추게 되니 입이 아닌 주둥이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가 한심해져 화장실 문을 닫고 그 안으로 도망쳤다. 휴지걸이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두루마리 휴지의 마지막 한 칸을 보자 참아왔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엄마도 이렇게 살았을까.’     



첫째 아이가 7살이 되었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고 시간이 지나 직원이 되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무척 기뻐하며 잘했다고 하셨다. 

“애들은 금방 커. 조금 더 크면 손도 덜 갈 거야. 너도 네 삶을 가져야지.”

내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엄마가 직장 생활을 했던 적은 없다. 대신 봉사활동이며 각종 모임이 많았고 이것저것 배우는 것도 많았다. 매끼 정성 가득한 식사에 삼 남매 도시락은 물론 간식까지 반드시 본인 손으로 준비해주셨고, 학교며 학원이며 놀이동산까지 늘 바쁘게 태워다 주던 엄마였다. 경단녀로 지내던 딸의 사회생활을 반기는 엄마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 나온 것 같은 건 기분 탓이었을까. 어쩌면 놓쳐버린 본인의 삶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통통통. 도톰한 나무 도마에 부딪히는 칼날의 경쾌한 소리는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뛰는 소리 같았다. 어쩌면 춤을 추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기분이 좋았던 건지 유난히 신바람 가득한 소리다.

엄마는 며칠 여행이라도 가는 날엔 카레를 하셨다. 다른 집 엄마들은 곰탕을 끓여놓고 가신다는데 우리 집은 유난히 카레였다. 다섯 식구들 중에 유난히 카레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었던 걸까? 나는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컹해진 무의 식감 때문에 뭇국도 좋아하지 않았기에 노란 국물에 빠져있는 야채들의 식감은 썩 불쾌했다. 엄마가 정성스레 싸주셨던 점심 도시락에 노란 국물이 배어있는 걸 보면 그냥 뚜껑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곰탕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워낙 편식이 심했던 지라 아마 어떤 음식을 해 놓아도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용돈이나 두둑이 주고 가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한 솥 가득해놓은 카레의 뚜껑을 열었을 때 안경 앞을 가리는 뽀얀 연기는 엄마의 잔소리 같아 못마땅했다.     



그런 나도 별 수 없는 K엄마가 되었다. 나 심은 곳에 나 나온 게 분명했다. 아이들도 물컹한 식감의 뭇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이 즈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코를 콱 쥐고 얼굴에 인상을 가득 담은 채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거나 고기만 쏙쏙 골라 먹기 일쑤였다. 

나이를 먹어가며 식성이 변한 건지 혹은 새로운 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 건지 이제는 향이 강한 음식도 제법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뭇국을 싫어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코를 막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국을 끓이고 카레를 만드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학원이 끝나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큰 아이의 전화에 ‘카레’라고 답하면 전화기 건너에서 한숨이 들려온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먹성 좋은 아빠의 유전자도 섞여있어 나의 어린 시절보다 비교적 골고루 잘 먹는 편이지만, 역시나 물컹한 식감과는 타협이 되지 않는가 보다.

“소시지 넣었어.”

비장의 무기로 회유를 한다. 다행히 늘 먹힌다. 따로 주면 먹지 않는 감자나 애호박 같은 야채도 통통통 썰어 넣는다. 야채를 먹으면 자기는 죽는다는 무서운 농담을 하는 둘째를 위해 최대한 작게 썰어본다. 카레가 싫다고 한숨을 쉬지만 막상 그릇 가득 퍼 주면 김치까지 올려 잘 먹을 걸 알기에 열심히 칼질을 한다. 




나무 도마에 부딪히는 통통통 소리에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어렸을 엄마의 30대와 40대. 엄마의 청춘이 고스란히 녹아있었을 엄마의 주방이 생각났다. 나무 도마, 밝은 녹색 빛이 돌던 주방 인테리어. 엄마 몰래 당근을 썰어보겠다고 난리 치다 당근 대신 손가락에 칼질을 한 내 손을 꾹 누르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엄마가 기억난다. 야간 자율학습하는 딸을 위해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 도시락까지 싸주던 엄마는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딸이 다음 날 가져갈 수 있게 도시락 통을 말끔히 씻은 후에나 잘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 중 가장 이른 아침을 시작하고 가장 늦은 밤을 맞이했을 엄마가 이제야 보인다.      

가냘펐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지게 하루종일 주방에 서있었을 엄마의 음식 앞에서 반찬투정을 했다. 김치찌개에서는 두부와 고기만 건져먹고 잡채는 당면만 쏙쏙 골라 먹었다. 카레를 다 먹고 난 접시 한쪽에는 노랗게 물든 야채 덩어리들이 모여 있었고, 비빔밥은 계란만 먹었던 것도 같다. 그나마도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침은 건너뛰고 저녁도 시간이 안 맞아 다섯이 함께하던 식탁에 엄마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고 나니 여행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엄마의 주방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깨작대는 아이들이 혹여 굶기라도 할까 봐 최대한 간편하게 준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통통통 움직이는 식칼의 춤사위는 엄마의 걱정이고 사랑이었다.



엄마의 것을 닮은 나무 도마 위에 잘게 썰린 야채들과 소시지까지 한 번에 털어 넣고 달달달 볶았다. 방패처럼 단단했던 야채들이 달궈진 기름 속에서 가시를 감출 때쯤 물을 붓고 마저 익혔다. 온천을 하듯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 안에서 긴장을 풀고 물컹해질 때쯤 엄마가 그랬듯 노란 가루들을 퍼뜨렸다.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노란 물을 뒤집어쓰며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급하게 도어록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동그란 아이의 얼굴이 쏙 따라 들어왔다. 

“와, 맛있는 냄새난다! 배고파요!”

“손 씻고 와.”

은근하게 퍼지는 노란 향이 우리 집 식탁을 노랗게 물들였다.


(이미지 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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