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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n 13. 2024

아파트 관리실의 참 다정한 말 한마디

10호 라인까지 있는 우리 아파트, 특히 내가 살고 있는 1,2호 라인의 엘리베이터는 전 라인 중에서도 희한하게 고장이 난다. 정기 점검을 제외하고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추가 점검을 한다. 노후화가 많이 되어그런지 걸핏하면 점검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이가 하원할 시간이나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줘야 할 시간에 점검이 걸릴 때면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이 다. 왜 다른 라인도 아니고 우리 라인만 유독 이럴, 운명 탓도 해보지만 그래도 짜증 한 번 없이 그러려니 유하게 넘어가는 결정인 이유가 하나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엘리베이터 점검 방송을 처음 들은 날이었다. 경비아저씨께서는 1,2호 라인 엘리베이터의 비정상 가동으로 잠시 점검이 있을 예정이니 일정에 참고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느 아파트와 다름없는 점검에 관한 양해를 구하는 공지였다. 그런데 나의 귀를 쫑긋 하게 만든 아저씨의 마지막 말씀이 이어졌다.

"혹시 집 안에 노약자나 무거운 물건을 나르셔야 하는 주민분이 계시다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한마디였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할 때 주요 공지사항만 전하고, 덧붙인다면 '참고하시라, 양해를 구한다' 정도의 말을 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이사 온 지금 아파트는 엘리베이터의 공사로 인하여 불편을 겪을 주민의 실제적인 입장을 고려해 배려하멘트를 하다니. 이는 앞으로 내가 살게 될 곳에 대한 큰 신뢰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주민의  입장까지 디테일하게 챙겨주는 이렇게 다정한 아파트라면, 경비실이라면, 관리사무실이라면 엘리베이터의 잦은 수리 정도야 눈감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것 아닌 한 마디가 나에게는  이상의 큰 감동으로 다가왔으니까 말이다. 단순한 관리 차원을 넘어,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작은 배려가 신뢰감을 강화시킨 것이다.


결국 재작년 대책 회의를 열고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작년 겨울, 전 라인의 대대적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진행되었다. 라인별로 1달여, 전체로는 3달간의 대공사 끝에 번쩍번쩍 새로운 엘리베이터로 교체가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1달간 이용할 수 없어 아이가 있는 우리 집은 아침, 저녁 등하교, 출퇴근, 학원 등하원 등의 이유로 꽤나 불편하게 지냈다. 하지만 깨끗하고 쌩쌩하게 움직이는 새 엘리베이터를 보니 그동안의 고됨은 모두 날아갔다. 이제 다시 또 불시에 발생하는 점검은 없을 거라 생각하니 든든한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며칠 전 평화로운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주린 배를 채울 요량으로 중국음식을 시켜 먹으려고 배달앱을 켜고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예~ 안녕하십니까 주민 여러분, 1-2호 라인 엘리베이터의 고장으로 인하여 잠시 점검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속히 처리하겠으며 주민 여러분들의 불편을 야기하게 되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점검 시간 동안 노약자나 무거운 물건을 나르셔야 하는 주민분들이 계시다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경비아저씨의 목소리다.


엘리베이터를 새로 교체했는데도 우리 라인의 엘리베이터는 또 고장이 난다. 귀신이 붙어 액땜이라도 해야 하는 일인지 당최 모르겠지만 이렇게 친절한 관리실 소장님이, 경비아저씨가 계셔서 오늘도 잠시 '허허, 또?' 하고 웃고 만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리.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방송에서도 배려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데 일상에서, 사람들끼리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챙기는 다정한 말 서로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바로 이런 게 소확행이지 별 게 소확행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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