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가방의 연식이 궁금해졌을까? 그냥 별 뜻 없는호기심에툭 꺼낸 질문일까?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구체적인 시기가 궁금했을까? 근데 아이의질문을 듣는 순간 왜 난 갑자기 7년 전 시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를까.떠오르면 아파서 차마 다시 꺼내보지 못한 그때. 문득문득 눈물이 흐를까 봐 아픔의상자 깊은 곳에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들키지 않도록가슴깊이 꾹꾹 묻어두었던 그때의 기억. 생각해 보니 다음 달이면 어머님이돌아가신 지도 벌써 6년이 된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린 걸까. 속도를 가늠할 새도 없이, 휙휙.
아이가 여섯 살이던 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한 해 전인 8월의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날은 신랑의 생일을 기념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우리가 자주 가는 돼지갈비 집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맛있게 마친 후, 생일 케이크를 자르기 위해 시댁으로 향하는 길. 무릎 수술 후 회복 중이셔서 다리를 쭉 뻗고 앉으셔야 했던 어머님은 나 대신 조수석에 계셨다. 그때, 어머님은 갑자기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아야, 시아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할머니한테 뭐가 제일 받고 싶어요?"
"응...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러면 할머니가 우리 시아 책가방 사줄까?할머니는 그게 시아한테 제일 사주고 싶은데. 할머니가 시아 입학할 때 이쁜 책가방 사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요?"
"네!"
당시 6살이었던 꼬마는 그해 6월에 새로 옮긴 유치원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아이에게 있어서 당장 내년이 아닌 그다음 해에 입학할 초등학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까 싶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일을 마치 내일 일처럼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이 그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고 생뚱맞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나고 어머님은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렇게 어머님이 기다리시던손녀의 입학을 불과 8개월 앞두고 말이다. 입학은 아직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겼는데, 눈 깜짝할 새 아이는 7살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곧 8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지난해에 비해 올해 초등학교 입학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역시 인생의 선배이자 육아의 대선배였던 어머님은 손녀가 6살일 때부터 이미 8살이 되어 입학하는 모습을 준비하고 계셨나 보다. 어머님은 긴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계셨을 테니까. 어머님이 보셨던 것은 단순히 현재의 모습만이 아니라, 손녀가 성장해 나가는 미래의 모습까지도 내다보셨을 테니 말이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모르고 초보 엄마로서 그저 아이의 현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깊은 뜻을 가늠조차 못 했던 난 그냥 초짜였다.
딸아이의 입학 몇 주전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아이에게 잘 어울릴만한 책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마침 실내화주머니도 같은 종류와 색상으로 판매를 해 세트로 구입하기 안성맞춤이었다. 결제를 한 뒤 예쁘게 포장된 반짝반짝 어여쁜 입학가방을 들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매장을 나섰다. 가방을 만져보고 메보고 구입하는 내내 비록 어머님이 내 곁에 계시지는 않았지만 어머님이 사주신다는 마음을 결코 놓지 않았다. 지인들께서 아이 입학선물로 책가방을 사준다고 하셨지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선물로 받기로 했다. 내가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지켜드릴 수 있는 마지막 약속은 그것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아의 초등 입학을 상상하며 설레어하시던 그날의 어머님의표정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니, 이것만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학원 가방에서 시작된 시어머님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후회들로 가득하다. 아이가 성취를 이루거나 칭찬을 받을 때,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놀랄 때마다시부모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입학을 멀리 앞두고도 시아의 미래를 기대하시던 부모님이셨는데 정말 잘 크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고 대견해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가슴이 먹먹해져눈물을 쏟는다. 이곳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시부모님이지만 지난날의 기대에 보답하고자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게 아이를 키워내고 싶은 내마음의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괜찮다. 시부모님이 자애로운 미소로 응원해 주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오니까. 아이의 빛나는 책가방을 다정하게 매만지며, 또 새로운 아침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오늘도 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