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식탁 위를 닦고 테이블 매트를 깔고 수저받침 위에 수저를 올린다. 내 건 어른 수저, 아이는 어린이용 수저,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온 신랑은 오늘 식사에서 패스. 프라이팬에 쇠고기를 올려 칙칙 굽는다. 간이 골고루 잘 배게 히말라야 핑크 소금과 후추통을 왼쪽 오른쪽 돌려가며 잘 갈아 고기 위에 골고루 뿌린다. 고기가 반쯤 익어갈 때자기 방에서 숙제하고있는 아이를 불러낸다.
"시아야, 밥 먹자~"
배가 고픈지 평소에는 뭉그적거리며 천천히 방을 나서더니 오늘은 부리나케 달려와 식탁 의자에 앉는다.고기가 다 구워질 동안 아이는 평소처럼 독서대에 책을 올리고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고기가 다 구워졌다. 자글자글 잘 익은 고기를 집게로 집어아이 먹기 좋은 크기로 쑹덩쑹덩 가위로자른 뒤 접시 위에 가지런히 올린다.
"이제 먹자, 시아야."
고기를 먹기 위해 젓가락을 집으려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이제 수저 바꿔주면 안 돼?"
"어?"
"이제 숟가락이 나한테 좀 작아. 젓가락도 짧고."
"어머, 그래???,..알았어, 엄마가 바로 바꿔줄게!!!"
두 눈을 깜빡깜빡. 어리둥절하다. 일단수저통에서 어른용 수저를 냉큼 빼 아이에게 건네준다.
"잘 먹겠습니다."
미처 몰랐다. 아이에게 숟가락과 젓가락이 작아졌는지. 평생 이 수저를 사용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니 이 정도면 적당하다 생각하고 수저를 놓을 때나 설거지를 하는 매일매일별생각이없었다. 그러나 똑같은 일상 속에서 아이는혼자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90세 노모도 손자, 손녀 다 본 지긋한 연세의 70대 자식에게 찻길 조심해라, 소매치기 조심해라는 말씀을 하시며 여전히 어린아이 대하듯 한다 하지 않는가. 자식은 그렇게 평생 부모에게 어리고 안쓰럽고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은 애틋한 존재인가 보다.그러니 이제 갓 12세가 된 초등생 딸을 둔 나는오죽할까. 내년에 중등 입학을 앞둔 예비 중학생, 사춘기 청소년으로 아이가보이는 게아니고 대여섯 살 유치원생마냥 어리디 어린 귀염둥이로만 보았던 거다.등하교 때나와 손잡고 같이 다니자고딸에게말하지 않은 게 어딘지.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보통아이가 읽을 책을 고를 때 인터넷서점 어린이 베스트셀러 섹션에서 순위별로 하나씩 클릭해별점이 9점 이상이고 리뷰가 어느 정도 있는 도서를 구입한다. 또는 서점에 방문해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하거나내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2년전쯤 아동코너에서 책들을 둘러보는데 아이 표정이 영 시큰둥해 보이는 거다. 읽고 싶은 책이 딱히 없냐고 물었더니그렇단다. 어쩐지얼마 전부터인터넷 서점에서 인기가 많은 책을 주문해 주어도 그다지 호기심이 없어 보이더라니.평소에는 택배상자 뜯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바로 책을 꺼내 읽는데 요 근래 그런 간절함이 사라져보여혹시 독서에 흥미를 잃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책은 또 여전히 잘읽어서새책을탐탁지 않아 하는 이유를크게 생각해 보지는않았다. 그런데서점에서도지난번과유사한 아이의 반응을 보게되니 문득 어떤 생각이스쳐딸의 손을 잡고 청소년 코너로자리를 옮겨보았다.처음에는 아이가 '청소년?'하며 의아해하더니 곧이어 테이블에 놓여있는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몇 권을 펼쳐 이리저리 살펴보는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래, 딱 저 눈빛. 책에 무섭게 몰입할 때의 그모습이 되살아났다. 그랬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니 청소년 소설은 중학교나 가서 읽는 줄 알고 아예 권유해 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딸의 독서 수준은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아이를 민감하게 잘 관찰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 역시 딸의 성장 속도를 내 생각이 따라가지 못했던 경우였다.
자녀들은 어느새 커버리고, 우리는 뒤늦게 그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호머-
내가 지닌 시계의 속도보다 빠르게 앞질러가는 아이의 시계를 멈추거나 느리게 가도록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인생길을 동행하는 동안 서로의 보폭은 다르더라도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면 부모는 아이에 대한 꾸준하고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아이의 정말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기민하게 파악해 간지러운 곳을 긁어준다면 서로의 속도차이로 인한 간극을 그래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노력만큼 아이가 야무지고 단단하게 자랄 수 있다면 쫓아갈 수 없는 속도쯤이야 너그럽게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해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