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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May 20. 2024

하루 중 아이와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자면...

저녁 9시가 되면 우리 집은 거실과 주방의 조명을 어둡게 한다. 이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잠자리를 준비하자는 묵시적인 신호 같다. 목욕을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약 1~2시간 정도 남은 공부를 한다. 그 후, 11시쯤 책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베개에 기대어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 역시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목욕 후, 읽던 책을 들고 안방 침대에 편안하게 눕는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책 속으로 조용하고 깊게 빠져든다.


부스럭부스럭, 뒹굴뒹굴 거리며 독서에 몰입하는 그 시간은 마치 꿀처럼 달디달다. 깊이 책에 빠져들 때는 한 시간이 지나도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을 때가 있지만,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하면 서로에게 들려주며 이야기한다. 이때, 아이보다 내 반응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과장되기도 하지만, 나의 관심과 공감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그럼 아이는 신이 나서 다시 책에 집중하며, 또 다른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해 공유한다.


나는 주로 아이에게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이나 안타깝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러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아이가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 메시지를 공감하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나의 이야기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굳건해졌기를 희망한다.


시간이 흘러 밤 12시가 넘었는데 아이는 "이 챕터만 읽고 자겠다"고 조른다. 피곤함에 눈꺼풀 셔터가 자꾸 내려가지만 아이의 간절함을 알기에 나도 다시 책을 펴든다. 다음날 아이의 등교가 걱정되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서도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참 간절하다. 그래서 우리는 평일에는 금요일, 주말에는 토요일을 침대 위의 꿀독서타임으로 정했다. 항상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한 주에 한 번은 마음껏 풀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토요일에는 독서에 한해서 새벽까지 읽는 것을 허락한다. 이런 시간들 덕분에, 나도 아이 곁에 누워 책을 읽으며 그 순간의 소중함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차분한 공기의 흐름, 책장이 삭삭 넘어가는 소리, 자세를 바꿀 때의 부스럭 거림까지 모든 것이 중하게 느껴진다. 이런 달콤한 독서 시간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한 추억과 함께,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서로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된다.


[아이가 공부에 빠져드는 순간]의 저자 유정임 작가는 두 자녀를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나란히 합격시키, 본인도 라디오작가로 시작하셔서 현재는 방송국장으로 활약하고 계신 멋진 워킹맘이다. 작가님의 책에서 참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폐인데이'의 설정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른 뒤 며칠간은 아예 공부랑은 담을 쌓고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사는 기간이라고 한다. 심지어 다니던 학원도 그 기간에는 빠져도 된단다.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공부해도 모자를 수험생 시기에 펑펑 놀라고 대놓고 부모가 허락을 하는 날이라니. 얼핏 듣기엔 그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니 저런 시간도 줄 수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고삐를 단단히 조였다면 반대로 고삐를 풀고 멍 때릴 시간도 줘야 한다는 거다. 아이가 놀기도 해야 그 시간 속에서 다소 엉뚱하지만 창의적인 생각들이 샘솟는다는 신념이 아이 어렸을 때부터 좀 확고했기 때문이랄까. 아무튼 저자는 이런 시간을 갖고 나면 아이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본인들의 일을 더 값지게 잘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평소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툴툴대는 아이에게 평일 가끔, 주말 하루 정도는 푹 퍼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도 아이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육아를 하는 데는 강단도 필요하지만 그에 더해 과감히 추진하 자신감과 용기 추가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철학이 맞을까 고민하고 방황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내 아이의 전문가는 나'라는 확신의 자신감 말이다. 더불어 아이를 단단히 쥐고 있는 것만큼 놓아주는 자유도 확보시켜 줄 수 있는 용기까지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그렇게 아이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나아간다면 그 무엇이 두려울까.


유정임 작가님 댁에는 폐인의 날이 있었다면 우리 집에는 독서의 날이 있다는 것이 아직까진 참 고맙고 값지다. 꾸준한 독서의 힘을 믿고 계속 이어 가, 훗날 읽는 어른으로 멋지게 성장할 딸의 미래를 흐뭇하게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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