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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n 27. 2024

치과에 안 갈 수 있는 약을 개발한다면...

왜 나만 이가 잘 썩냐고요

슬슬 치과에 가야 한다고 욱신거리는 이가 내게 신호를 보내온다. 조여 오는 압박감에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마음은 싫다 하는데 이성은 내게 치과를 빨리 가야 한다고 자꾸 설득한. 협상하고 싶지 않다. 난 내 의지대로 행동하고 하기 싫은 일은 싫다고 당당히 말할 자유가 있는 어림없지, 흥.


이렇게 굳건히 다짐을 해도 참 웃긴 건, 다음날엔 이가 전날보다 조금 아프다는 거다. 아니, 이젠 시큰거리는 증상을 데리고 와 이래도 계속 버틸 거냐며 아주 대단한 패라도 쥐고 있는 듯 나를 자꾸 놀려댄다. 약해지지 마, 치과에 가는 순간 넌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 입 안쪽에 길고 긴 바늘이 달린 주사기를 집어넣어 마취제를 투약할 거야. 지잉지잉 소름 끼치는 드릴은 썩은 이에 닿으면 온몸에 소름이라는 전율을 일으킬 거고. 깊이 썩어 신경치료라도 해 봐라, 이미 놓은 마취제 덕분에 죽을 만큼 아프진 않더라도 묵직하게 울리는 쓰린 느낌은 진짜 괴로울걸. 치익치익, 쉭쉭거리는 석션 소리도 스산하게 들리던 거 기억하지?


다른 사람들보다 통증에 대한 역치가 낮아 더 금세 아파하고 예민하게 느끼는 나는 유독 다른 치료들보다도 치과 치료가 힘들고 괴롭다. 거의 트라우마처럼 치과라는 두 글자만 생각해도 식은땀이 난다. 무슨 5살짜리 꼬마도 아니고 마흔 줄의 아줌마가 치과가 무섭다고 호들갑이냐 할지 몰라도 어른도 뭐 무섭고 아플 수 있는 거 아닌가? 어른이라고 뭐 '다 덤벼, 우 씨'는 아니잖나.


사실 내가 치과를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너무 자주 이가 썩어서 자주 가야 하다 보니 그만큼 치과에 대한 면역력생기기는커녕, 깊이 썩어 치료가 더 길어져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아서다. 입안이 많이 작은데 치료 받는 동안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하니 턱이 빠질 듯이 아픈 것도 한몫하고 말이다. 나는 최대한 쫙 크게 다 벌린 건데 의사는 더 좀 크게 벌리라니, 턱이 빠져야만 인정해 주실런지 매번 억울하다. 치료가 끝나면 근육까지도 무리하게 늘여놔 턱이 얼얼하고 쑤시다. 혹여나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식사라도 하면 혀를 신나게 깨물며 먹었다가 마취가 풀리고선 상처 난 혀까지 욱신거려 짜증이 두 배가 된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Top 5를 고르라면 그중 하나가 이가 안 썩는 사람인데 마침 우리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닦는 것도 아니고 이가 뚫어지도록 박박 닦는 것도 아닌데 안 썩는다. 달고 짜고 맵고 탄산, 커피 등등 얼마나 많이 먹고 마시는데 치과 가는 걸 본 게 그를 알고 난 뒤 한 번 있을까 말 까다. 근데 그런 신기한 사람이 우리 집에 또 있다. 바로 딸아이. 여태껏 유치였던 앞니 사이가 치실을 안 해 살짝 썩어있다가 어른 니로 바뀔 때 그냥 빠져버린 것 빼고는 12년간 충치 치료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왜 셋이 같이 먹으며 생활했는데 나만 이가 썩는 걸까. 왜 나만.


의사 선생님께서 당부하시길 손님은 이가 너무 잘 썩으니 두 달에 한 번은 꼭 정기검진을 하고, 충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검진하는 것도 무서워 치과에 안 간지 1년이나 됐다. 6번의 정기검진을 퇴짜 놓았으니 이가 욱신거리는 게 당연한 일. 남편과 딸은 조용한데 나만 또 충치치료받아야 하는 게 속상하다. 다디단 밤양갱이나 매일 먹고 이런 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렇게 이는 약하게 태어났어도 오복 중 하나라는 앞으로는 스케일링, 정기검진을 미루지 말아야지. 공포스러운 치과랑도 이제는 친해지려고 노력해 봐야지. 누가 치과치료 안 해도 되게, 먹기만 하면 이가 안 썩는 알약을 개발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이 잘 썩는 어린양을 부디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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