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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l 04. 2024

택배 기사님의 놀라운 배려

감동은 이어지는 것

앗 벌써 3시다.

평소 2시 10분이 정식 하교시간이지만 오늘은 학교행사로 3시에 끝난다고 했다. 하필 오늘 가는 학원 3시 30분에 시작이라 집에 왔다 다시 나가면 지각이라 내가 학교 근처에 차를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3시 10분에는 나가야 하는데 아차차, 청소기 미는데 혼을 빼놓고 있다 시계를 보니 3시 15분을 향해가고 있네. 청소고 뭐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정신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오, 운 좋게도 두 층만 멈추고  바로 우리 집에 서는구나. 아이 픽업에 늦는 건 피했다, 세이프.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리고 안에는 택배 기사님과 택배를 가득 실은 수레가 보인다. 혹시?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지하 2층 버튼을 누르면서 보니 이미 우리 집 위로 여러 층의 버튼에 노란 불이 들어와 있다. 헉,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탄 맞네. 내리지도 못하게 이미 문은 닫혔다. 어김없이 버튼이 눌린 층마다 서야 하는 운명. 아이 픽업에 늦는 건 못 피하게 됐다, 아웃.


조금 일찍 나올걸 후회감이 밀려와 짜증이 올라오려는데, 갑자기 택배 기사님이 이미 눌린 층의 버튼들을 바쁘게 다시 누르신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려는 것을 잠시 멈추더니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기사님이 지하주차장에서 택배를 덜 가지고 올라오셨나? 아니면 호수를 잘못 보시고 다른

 택배를 싣고 오신 바람에 급하게 버튼을 취소하신 건가? 복잡해진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고 있는데 지하에 도착했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린다. 나는 혹시 기사님도 내리실까 싶어 열림 버튼을 눌렀더니 먼저 내리라는 손짓을 하신다. 나는 내렸고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문이 닫히며 다시 올라갔다. 아이를 급히 데리러 가야 해 엘리베이터가 어디로 올라가는지 정확히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차를 운전하면서 기사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사님은 어떤 아줌마가 모양 빠진 차림새를 해가지고는 초조해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짠하셨 건지, 원래 그냥 심성 고운 분이셔서 그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택배를 배달하기 위해 층층이 서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나의 불편함을 고려해 본인의 귀한 시간을 희생하셨다는 것이다. 기사님의 배려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기에 자꾸만 그날의 모습이 떠올랐 정말 감사했다.


생각해 보면,   많은 배려들을 사람들에게 받으며 살아왔을 거다. 그러나 당시에는 고마웠던 기억들이어도 나중엔 점점 휘발되며 잊혔 테지.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돕고 양보한 일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았겠지. 베스트셀러 [여행의 이유] 쓰신 김영하 작가님께서는 종종 독자들에게, 읽은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데 이래도 괜찮은지에 관한 질문을 받으신다고 한다. 그때 작가님은 책의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읽었을 때의 느낌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니 그럼 된 거다,라는 대답을 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은 배려를 하고 배려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머릿속 배려의 장면들세월닳고 침식되어 사라졌을지언정, 가슴속에 그때의 따스한 감정 자연스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또 다른 누구에게 그 마음을 베풀며 상대를 지지하고 감싸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너와 나의 마음에 좋은 '느낌'이 오래도록 남는다그걸로도  괜찮은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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