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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l 18. 2024

아이 실내화를 빠는 남편

매주 혹은 아이가 깜빡한 날은 2주에 한 번 꼴로 금요일에 실내화를 가져온다. 돌아오는 월요일 등교 전까지 깨끗이 빨아야 하는 건  6년째 해오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도 없다. 아니, 점점 어려워졌다.


아이가 1학년 땐 천 실내화를 신겼다. 크록스 모양보다는 조금 더 단정하고 깔끔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빨아보니 때가 지워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아무래도 흰색이다 보니 진하게 밴 얼룩은 아무리 솔로 문지르고 문질러봐도 흔적이 남아 얼룩덜룩 지저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답은 크록스 스타일인가.


아이 2학년때에는 등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오프라인 수업이 EBS 수업으로 대체되었으니 실내화를 신을 일이 없었다. 새로  실내화는 깜깜한 주머니 속에서 빛을 볼 날을  매일 세며 기다리고 있었고. 2학기가 되어 등교를 한다 하길래 오랜만에 꺼내본 실내화. 살 땐 넉넉했는데 갑자기 아이 발에 꼭 맞는 실내화. 새로 사서 몇 번 신겨보지도 못했는데 등교를 못 하게 된 날들이 길어지며 그새 아이의 발도 길어져 버렸네. 신발을 바꿔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깝고 아쉬웠만 새로 사도 좋으니 학교를 매일 다닐 수만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실내화는 또 몇 번 신지도 못하고 다시 주머니 속에서 쿨쿨 잠들었고 겨울방학을 하며 꺼내어 빨았다. 1학년 때 매주 빠느라 귀찮아했던 시절이 오히려 행복이었음을, 그 평범한 투덜거림을 오히려 그리워하다니 참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 초등학교 3학년 까지는 다양한 잇템을 구입해 실내화를 빨았다. 다이소에서 스펀지처럼 생긴 것에 물을 묻혀 벅벅 문지르면 세제 없이도 때가 빠진다는 제품을 사봤는데 힘을 주니 물 묻은 스펀지가 금세 찢어져서 탈락. 물파스처럼 생겼는데 바르는 부분에 솔이 있고 통 안에는 세제가 들어있어 손잡이 부분을 꾹 누르고 실내화에 솔 부분을 대어 문지르면, 세제가 나오면서 때가 싹싹 빠지는 제품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통과. 3년째 그 제품을 사용하는데 대만족이다. 하지만 암만 크록스 재질이어도 바닥에 미끄럼방지 홈 부분에 낀 때와 먼지들은 솔로 벅벅 문질러 닦아야 한다. 그 부분이 난제였고 어느 날부터 솔질할 때 힘이 너무 달리니 짜증이 밀려왔다. 사람 마음 화장실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코로나가 심각했던 시절에는 실내화를 빨던 일상이 그립다고 하더니 막상 매주 빨다 보니 욱하고 있는 나란 사람.


아무튼 이런저런 입원 생활로 몸이 약해졌는지 손과 손목에 힘을 주는 일이 힘겨워지고나서부터 병뚜껑을 힘주어 따는 일, 묵은 때를 벅벅 밀어 벗겨 내는 일 등 순간 강한 힘을 주어야 하는 것들이 어렵다. 어느 날 남편에게 실내화는 당신이 빨았으면 좋겠다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당신이 쉬는 주말에 빨면 어떻겠냐고. 남편은 딸아이의 실내화라 그런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내 신발을 빨아 달라고 했어도 저렇게 반갑게 허락했을까? 또또 쓸데없는 테스트 심리 발동이다. 남편은 테스트하지 말 것. 왜냐고? 원하는 대답 못 들으면 속상한 건 누구 몫? 내 몫이니까.


아무튼 4학년 무렵부터 2년 넘게 남편은 아이의 실내화를 빤다. 어깨도 넓고 팔뚝도 굵고 힘도 좋은 남편의 솔질 몇 번이면 시커먼 땟국물을 벗고 새하얗게 웃고 있는 실내화를 볼 수 있다. 나는 수십 번을 문질러야 할 것을 신랑의 커다란 에너지와 힘으로 때들이 힘없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걸 지켜보면 희열이 절로 느껴진다. 그래도 덩치 큰 남자 어른이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조그만 실내화를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매번 말하지만 다정한 대화는 나눌 수 없는 T인 그이지만 맡은 일은 군소리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참 칭찬해 주고도 남을 일이다. 2년 전에 딱 한 번 했던 부탁의 말을 지금까지 잘 지켜가고 있는 모습에서 그래, 부부란 이런 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장에서 선서하면서 뭐라고 했던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며 사랑하며 잘 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골골한 아내의 체력을 안타까워하며 건강한 본인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주는 남편,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남편의 썰렁함을 가엽게 여겨 집안의 유머와 웃음을 담당하는 아내. 이렇게 서로의 조금씩 구멍 난 부분들을 메꾸어가며 하나로 지낼 때,  그걸 지켜보는 아이도 따스한 마음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야속하고 얄미울 때도 있다. 왜 내가 하는 말을 속깊이 공감하고 이해해 주지를 못하는 걸까. 왜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들만 하고 그걸 잘 생각해 보라고 AI가 대답하듯 말하는 걸까, 참 서운하다. 하지만 내게 잔소리하지 않고 내가 하는 부탁은 큰돈이 나가는 것만 아니라면 거의 다 들어주고 반찬투정 한 번 없는데, 그런 것들은 당연하고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만 크게 확대해석했다. 잘해오던 이제 기본이 되고 그 이상의 것들을 내게 맞춰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건 다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나에 대해 모두 다 만족하고 좋아서 지금껏 같이 살아왔다기보단 날 이해하며 배려하려 노력한 부분이 컸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남편의 좋은 점을 크게 생각하고 고마워하며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깨달음 이후로는 신랑에게 기분 나쁠 일도, 짜증 날 일도 거의 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 사람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가 달라지니 내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편해지행복해지다니. 오히려 그가 훨씬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생을 살아야 부부가 오래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 주면 여름방학 시작이다. 아이는 또 실내화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겠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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