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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Aug 01. 2024

피하기와 후련하기의 반복

널 사랑하고 있었어

글을 연재하는 목요일.

전날이 가장 고민이 많다. '아휴, 이번주는 도저히 못 쓰겠다. 쉰다고 해야지'라고 생각은 하면서 손으로는 휴대폰을 쥐고 몇 문장 끄적댄다. 혹시나 글이 완성이 면 발행할 수도 있지만 잘 안될 경우엔 그냥 낙서장으로 끝내자, 하고 말았는데 예상보다 수월하게 글이 완성되면 흐뭇한 마음으로 발행버튼을 누른다. 발행하고 나면 어라,  년 묵은 때를 벗겨낸 듯 그렇게 마음이 상쾌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글을 발행한 주말은 오랫동안 끙끙 앓던 이를 뽑은 듯, 한쪽에 미뤄뒀던 골치 아픈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다 새로운 주가 시작되 그 주 요일 저녁부터 또 슬슬 불안함이 밀려온다. 글을 발행하는 날이 곧 다가오는구나. 근데 완성된 글이 없는데 어쩌지, 이번주는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글감도 기억이 안 나는데 큰일이군.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압박감에 못 이겨 서랍 속에 저장해 두었던 흔적들을 뒤적이조금 퇴고해 발행 글로 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아니면 글감이 될만한 것들의 급조를 위해 두뇌를 풀가동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려보고, 입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그동안의 상황들을 되짚어본다. 운 좋게 생각이 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다다다 글이 술술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딱히 뭐가 없으면 열심히 쥐어짜야 한다. 주제도 없는데 제목만 그럴듯하게 써놓고는 깜빡이는 커서만 몇 분째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글을 매주 쓰라고 하지 않았고 안 쓰면 큰 벌을 준다 한 것도 아니며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결심과 의지로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뿐인데 한 주 안 쓰면 어때서 왜 이리도 글 발행 하는 것에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아님 말고 정신도 모르는가? 


과거에 남편에게 꼰대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20대 연애시절부터 나에게 꼰대, 고지식하다란 말을 많이 했던 남편 본인도 내가 보기엔 그다지  꼰대가 아닌데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궁금해서 고지식하다의 뜻을 찾아보니 '성질이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다'라고 한다. 어, 이거 20,30대의 난데. 꼰대라는 말은 어감상 그냥 듣기가 싫은데 고지식하다란 말은 날 꽤나 설명하던 단어 같아 그다지 듣기 싫지는 않다. 내 성격이 아주 대쪽 같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닌 건 진짜 아니고 싫고 좋음을 못 숨기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하고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말을 못 참아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면 분개하곤 했다. 다혈질은 아니지만 나와 생각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너그러이 볼 줄 아는 마음이 부족했고 모 아니면 도의 느낌이 강했다.


결혼하고도 똑같았는데 아이를 낳으니 융통성이란 게 저절로 생겨났다. 내 고집만 부렸다가는 자기 멋대로인 야생마 같은 어린 아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기를 수 없기에 나도 커다란 마음씨가 되어 웬만한 것들은 품고 이해할 줄 아는 넉넉함과 상황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처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유연함이 생겼 아니다 싶음 그냥  부러져버리는 나무토막에서 이리저리 잘 휘는 고무재질의 성향이 되었, 자연스레 남편도 꼰대라는 단어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예전에 동네 언니가 벨라는 어느 상황에서든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항상 열린 자세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하는 여유로운 태도가 참 보기 좋다고  적이 있었다. 오, 내가 이런 말을 다 듣다니 아이가 날 진정 성숙하게 만들어주었구나,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읽어온 책들도 나를 성장시킨 게 분명하구나, 란 기쁨에 흐뭇한 감정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글 발행에 있어서는 이런 융통성과 여유로움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근데 지금 알아낸 것 같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라는 걸. 글을 통해 사랑받고 공감받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어떻게든 글을 발행하고 또 한 주를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서 한 주 쉬어가그리도 불안했다는 것을. 내가 글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글쓰기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오늘의 고민 글을 쓰며 해결됐으글쓰기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능력을 지닌 걸까. 애증인지 애정인지 모를 매력적인 요 맹랑 글쓰기 같으니라고. 아무튼 널 사랑하고 있음은 오늘 더 분명해진 것 같다. 매주 밀당하면서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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