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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l 25. 2024

고무장갑보다는 손설거지가 좋아

뽀드득뽀드득

습하다. 우리 집은 수영장도 아니고 습식 사우나도 아닌데 왜 이리 습한 거야.


저녁 설거지 이후 생겨나는 그릇들을 예전에는 그날 다 설거지해 놓고 잤지만, 여름이 오고부터는 한껏 빠져나간 기력 탓인지 그대로 두고 자버린다. 그러곤 다음날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싱크대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어제의 잔재를 부랴부랴 걷어낸다. 여름 설거지는 게으름의 설거지.


수세미에 주방세제를 두 번 펌핑한 뒤 물에 적셔 조물조물 하얀 거품을 풍성하게 낸 후 음식물이 묻은 그릇들을 문질문질해준다. 미끄덩한 것들이 물에 씻겨 나가면서 그릇들이 뽀득뽀득하게 변하는 그 개운한 손맛이 좋다. 그래서인지 난 설거지가 참 재미나다. 주방세제가 물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진 풍성한 거품. 그것과 만난 까칠한 아크릴수세미의 보들보들, 송충이 버블크림 같은 감촉을 수가 없다. 내 손으로 직접 닦아야 세제가 제대로 닦여 나갔는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 고무장갑 설거지의 왠지 모를 찝찝함을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주부라도 손을 곱게 잘 관리해야 한다며, 고무장갑을 꼭 끼고 설거지하라는 친정엄마의 말씀을 예전부터 귀에 닳도록 들어서 최대한 장갑을 끼고 하려고 노력은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 바람도 안 통하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려니 철갑을 두른 , 답답함에 숨이 막힌다. 고무장갑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숨 쉬는 피부의 자유를 느껴보자. 그릇들이 목욕을 하면서 덩달아 내 손도 샤워를 하고, 마음까지 새로 빤 이불처럼 뽀송하니 살 것 같다. 역시 설거지는 맨손으로 해야 제맛이야.

@일오삼공

예전에 좀 기이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설거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도무지 컨디션은 따라주질 않고, 땅으로 땅으로 자꾸 꺼져만 가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 걸까? 이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설거지를 못하겠으니 공상의 세계로 재빨리 방향을 틀어버리는 나는 정말 못 말려. 아무튼 아주 오랜 옛날에는 먹고 난 그릇 그대로 다음 끼니의 음식을 올려 먹었을아니면 강물이나 개울가에서 대충이라도 헹궈서 사용했을까, 그 기원이 궁금했다. 상상진짜라먹고 난 그릇을 버리지 않고 씻어서 다시 사용했다는 점에서 역시 인간은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사용의 개념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환경보호의 3가지 요소라고 알고 있는 재활용, 재사용, 쓰레기 줄이기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인간은 태생적으로 지구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이는 본디 인간의 습성과 반대되일일 것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이는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도 위협이 되고 있으니, 생활의 편리함을 맘껏 누리는 대신 자연의 섭리를 거스름에 일종의 벌을 받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시 내가 좋아하는 설거지 이야기로 돌아와서, 주방세제 한 개도 아무거나 사용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저 손설거지가 더 뽀득한 느낌이라 좋은 것도 있지만 설거지라는 행위가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 긍정적인 행동들로 이루어진다면, 그릇도 깨끗해지고 지구도 살리는 1석 2조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을 계속 틀어놓고 사용하는 대신 받아서 사용할 것, 주방세제는 펌핑 한 번만, 기름이 심한 그릇은 찬물로 오래 헹구기보다는 뜨거운 물로 단시간에 씻어내기 등등. 어쩌면 무의식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행동들이 결국은 지구 환경을 위한 노력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실천한 그들에게 격려박수를 보내고 싶다. 생각 있는 설거지가 다른 의식적인 행위들로 이어지 그 행동들이 주변에도 널리 퍼져,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우리 지구를 살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깨끗하게 설거지된 개운한 지구를 머지않은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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