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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l 11. 2024

곱게 갠 수건에 담긴 예쁜 마음

아이는 숙제를, 나는 책을 읽고 신랑은 휴대폰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평일 어느 날의 고요한 밤. 띠리리로리로리로리. 건조기의 빨래가 모두 완료되었다는 음악이 나온다. 신랑은 저 소리가 꽤 거슬린단다. 알람 치고는 너무 길게 나온다나. 의식을 하지 않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조용한 밤이나 적막한 새벽에 고음의 기계음이 울려댈 때에는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서 빨래 꺼내가라고 제 소임 다하며 외쳐대는 건조기가 난 기특하기만 하다.


여름, 특히 장마가 시작되고 공기가 습하다 못해 꿉꿉해지니 욕실의 수건도 몇 번 쓰면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고 잘 마르지도 않아 선풍기나 의자에 걸쳐놓고 급속 수분 제거를 시도해 보지만 큰 효과는 없다. 눅눅한 느낌이 느껴지려고 하면 새 수건을 쓰는 게 최고다. 그러나 괴로운 건 수건이 빨래 바구니에 모아지는 속도가 겨울의 2배라는 점이다. 15개의 수건을 우리 가족 3명이서 쓴다 치면 겨울에는 1달에 2번 빨지만 여름에는 4번 빨아야 한다. 즉, 1주일에 한 번은 수건을 빨아야 한다는 소리. 생각해 보니 가족 수가 우리보다 많은 가정은 3~4일에 한번 일지도 모르겠네. 속옷, 겉옷, 아이옷, 양말 모두 따로따로 세탁해하는데 이것들도 평소보다 회전 속도가 빠른 데다 수건의 공세까지 더해지니 하루에 세탁기를 2~3번 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내가 너무 자주 빨래를 돌리나? 그렇다고 한여름에 땀에 젖은 옷을 또 입을 순 없지 않나. 원피스, 카디건 등은 매일 빨지 못한다 해도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는 남편의 티셔츠 같은 경우는 더더욱.


아무튼 쌓여가는 빨래 속에 지쳐가는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그걸 개어 넣어야 하는 나. 이렇게 우리 셋은 이 여름이 힘들다. 건조기 속에서 며칠을 묵혀 다가 다음 빨래를 돌려야 할 때 겨우 꺼내어 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날도 건조기는 다 되었다고 소리치지만 읽던 책을 중단하고 일어나기엔 너무나 귀찮아 못 들은 체 계속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 밝은 딸아이가 쓰윽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용도실로 가서는 건조된 수건을 한 아름 들고 나온다. 건조기에서 나온 뽀송하고 따뜻한 세탁물의 느낌을 좋아하는 시아는 수건에 얼굴을 묻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이걸 어디에 놓느냐고 묻는다. 몸에 닿는 거라 바닥에 놓는 건 좀 그러니 안방 위 침대 위에 두라고 이야기하고 난 다시 독서에 열중했다기보다는 수건 개기가 싫어 회피하는 마음이 더 컸겠지.


그런데 아이가 안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뭐 하고 있냐고 물으니 수건이 따뜻해서 너무 좋단다. 숙제하기 싫으니 수건 핑계 대고 누워서 뒹굴대는구나 싶어 그러렴,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머나 벌써 12시가 다 돼가네. 슬슬 양치하고 건조된 수건 개어놓고 잘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세상에, 수건이 다 개어져 있다. 그것도 높이를 맞춰서, 내가 개어놓는 방식으로, 심지어 무너지지도 않게 예쁘게도 잘 개어놓았네. 아까 안방에서 사부작거린 것이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건을 개고 있었던 거구나. 아이를 불렀다. 이렇게 수건 개는 것 어떻게 알았냐 물으니 예전에 한 번 엄마가 가르쳐 준 적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맞아, 생각해 보니 내가 수건 개고 있을 때 아이가 다가와 수건을 어떻게 개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랑 같이 개어 보자며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게 언젯적인데 기억을 했다가 이렇게 깜짝 선물을 해주다니. 고맙고 기특해라. 기쁜 마음에 엄마께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며 시아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엄마께서는 그동안 너에게 보고 배운 게 있으니 그대로 하는 거라며, 시아는 예쁘고 기특한 아이가 맞다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엄마를 보고 배운 딸이다. 수건 개는 법부터 내가 살림하는 것의 대부분은 엄마가 한평생을 주부로서 살아오신 모습을 보며 배우고 따라한 것들이다. 된장찌개 끓일 때 숙성된장과 햇된장을 어떤 비율로 넣으면 더 맛있는지, 물기만 닦은 키친타월은 말렸다가 싱크대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고 버린다든지, 화장실의 실리콘 부분이 까맣게 곰팡이가 폈을 때 두루마리 휴지에 락스를 충분히 적셔서 그 부분에 놓고 하루 지나서 보면 사라져 있다든가 하는 팁들. 이런 살림의 디테일한 부분들의 전수가 내 생활로 이어져 왔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본인의 삶을 살아갈 때 똑같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닮은 구석이 있겠지.


그렇다면 난 더 올바르고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아이의 삶을 직접 내가 가꾸고 다듬어 예쁘게 지어줄 수는 없지만 부모의 영향, 특히 매일 붙어서 생활하는 엄마의 행동과 생각들을 보면서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고 배우고 따라 하는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엄마이자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이가 보고 있기에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묵직한 책임감이 있기에 부모가 됨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옛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신 게 아닐까. 일부러 포장한 그럴듯한 어른,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내 삶, 나에게 주어진 몫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는 그 진정성을 본받아 본인의 미래를 그려가게 될 것이다. 사소해도 좋으니 그런 정직하고 올바른 삶의 태도로 아이는 진실되고 건강하게 잘 자랄 거라 믿는다.


고마운 마음은 꼭 표현하라고 했지!

아이가 잠들기 전 꼭 안아주며 말했다.

"수건 개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시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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