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치과에 가야 한다고 욱신거리는 이가 내게 신호를 보내온다. 조여 오는 압박감에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마음은 싫다 하는데 이성은 내게 치과를 빨리 가야 한다고 자꾸설득한다. 협상하고 싶지 않다. 난 내 의지대로 행동하고 하기 싫은 일은 싫다고 당당히 말할 자유가 있는데 어림없지, 흥.
이렇게 굳건히 다짐을 해도 참 웃긴 건, 다음날엔 이가 전날보다 조금 더 아프다는 거다. 아니, 이젠 시큰거리는 증상을 데리고 와 이래도 계속 버틸 거냐며 아주 대단한 패라도 쥐고 있는 듯 나를 자꾸 놀려댄다. 약해지지 마, 치과에 가는 순간 넌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 입 안쪽에 길고 긴 바늘이 달린 주사기를 집어넣어 마취제를 투약할 거야. 지잉지잉 소름 끼치는 드릴은 썩은 이에 닿으면 온몸에 소름이라는 전율을 일으킬 거고. 깊이 썩어 신경치료라도 해 봐라, 이미 놓은 마취제 덕분에 죽을 만큼 아프진 않더라도 묵직하게 울리는 쓰린 느낌은 진짜 괴로울걸. 치익치익, 쉭쉭거리는 석션 소리도 스산하게 들리던 거 기억하지?
다른 사람들보다 통증에 대한 역치가 낮아 더 금세 아파하고 예민하게 느끼는 나는 유독 다른 치료들보다도 치과 치료가 참 힘들고 괴롭다. 거의 트라우마처럼 치과라는 두 글자만생각해도 식은땀이 난다. 무슨 5살짜리 꼬마도 아니고 마흔 줄의 아줌마가 치과가 무섭다고 호들갑이냐 할지 몰라도 어른도 뭐 무섭고 아플 수 있는 거 아닌가? 어른이라고 뭐 '다 덤벼, 우 씨'는 아니잖나.
사실 내가 치과를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너무 자주 이가 썩어서 자주 가야 하다 보니 그만큼 치과에 대한면역력이 생기기는커녕,깊이 썩어 치료가 더길어져지치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아서다. 입안이 많이 작은데 치료 받는 동안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하니 턱이 빠질 듯이 아픈 것도 한몫하고 말이다. 나는 최대한 쫙 크게 다 벌린 건데 의사는 더 좀 크게 벌리라니, 내 턱이 빠져야만 인정해 주실런지 매번 억울하다. 치료가 끝나면 근육까지도 무리하게 늘여놔 턱이 얼얼하고 쑤시다.혹여나 마취가 다 풀리기도 전에 식사라도 하면 혀를 신나게 깨물며 먹었다가 마취가 풀리고선 상처 난 혀까지 욱신거려 짜증이 두 배가 된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Top 5를 고르라면 그중 하나가 이가 안 썩는 사람인데 마침 우리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닦는 것도 아니고 이가 뚫어지도록 박박 닦는 것도 아닌데 안 썩는다. 달고 짜고 맵고 탄산, 커피 등등 얼마나 많이 먹고 마시는데 치과 가는 걸 본 게 그를 알고 난 뒤 한 번 있을까 말 까다. 근데 그런 신기한 사람이 우리 집에 또 있다. 바로 딸아이. 여태껏 유치였던 앞니 사이가 치실을 안 해 살짝 썩어있다가 어른 니로 바뀔 때 그냥 빠져버린 것 빼고는 12년간 충치 치료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왜 셋이 같이 먹으며 생활했는데 나만 이가 썩는 걸까. 왜 나만.
의사 선생님께서 당부하시길 손님은 이가 너무 잘 썩으니 두 달에 한 번은 꼭 정기검진을 하고, 충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검진하는 것도 무서워 치과에 안 간지 1년이나 됐다. 6번의 정기검진을 퇴짜 놓았으니 이가 욱신거리는 게 당연한 일. 남편과 딸은 조용한데 나만 또 충치치료받아야 하는 게 속상하다. 다디단 밤양갱이나 매일 먹고 이런 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렇게 이는 약하게 태어났어도 오복 중 하나라는데앞으로는 스케일링,정기검진을미루지 말아야지.공포스러운 치과랑도 이제는 친해지려고 노력해 봐야지. 누가 치과치료 안 해도 되게, 먹기만 하면 이가 안 썩는 알약을 개발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이 잘 썩는 어린양을 부디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