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은채 Feb 08. 2024

길을 잃어도 산에 가는 이유

산길을 따라 걷듯.

식물을 좋아한다. 바다보다는 산 이 좋다. 싱그러운 나무와 풀냄새가 좋다. 집에서 15분을 걸어가면 제법 넓은 둘레길이 있는 봉제산이 있다. 주말아침 6시 혼자서 걸어 올라가기 좋은 코스라 자주 올라가곤 한다. 꽤 많은 등산객들이 등산장비를 철저하게 준비한 모습에 비해 나의 차림은 이 동네 주민일 뿐 인다. 잠시 집 앞 산책을 나온듯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화끈을 힘껏 조여 메고 머리를 비장하게 머리끈으로 세 번 돌려 묶었지만 등산복이 아닌탓인지 영락없는 준비성 없는 등산객이다.

사실 체계적으로 행동하길 좋아하고 준비성을 중요시 생각한다고 믿었던 나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꼭 내 인생과도 많이 닮아있다. 준비하지 않고 닥치면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기로에 놓이고 선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생각 없이 해맑던 어린 시절 지겹도록 적어 냈던 장래희망이 도움이 되긴했을까? 아니, 나의 경우 그렇지 않. 장래희망을 적어 낼 때조차 내가 하고 싶은걸 적기보다 선생님이 좋아하실만한 직업. 부모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직업을 골라서 적었으니 진정 순수한 나의 희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은 있을까? 하지만 그 당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내가 최우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즘 내 인생에서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불만이 생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이는 말일까? 모르고 살 때는 허허실실 웃으며 살았는데 나를 소중히 여기려고 보니 아픈 손가락이 너무나 많다.


답답할 때 산을 오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산을 오르며 흙냄새를 맡으며 머릿속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신랑이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라서 처음에는 이런 아저씨 노래를 왜 듣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래가사가 마음에  저장되었다.


김국환- 타타타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아 하 하 하 하 ~ ~



숨 가쁘게 앞만 보며 걷다가 멈추어 숨을 크게 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무들 사이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하고 눈이 부신다. 내가 서있는 곳이 산 어디쯤인지 알 수 없지만 올려다 본 하늘에서는 햇빛이 나무들 사이 숨어있는 나를 찾아내 비추어주는 것 같다. 그 빛이 있기에 산을 오를 수 있다.
내 삶에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처럼.

등산로 입구에는 등산로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을 보면 좀 더 순조로운 산행일 텐데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 올라간다.
그저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걷고 길처럼 보이는 곳을 걷는다.

매번 첫 산행길을 오르는 마음으로 걷는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고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헉헉 뜨거운 숨이 내 얼굴에 느껴질 즈음 정상이다. 정상을 그리 만끽하지는 않는다. 이제 얼른 내려가 아침밥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기에 서두르자는 마음으로 잠시의 머무름 도 없다. 내려오는 길에서 늘 헤맨다. 길을 잃었지만 아래방향으로 묵묵히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무서울법도 한데 신기하게 무섭지는 않더라.


산속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앱을 휴대폰에 설치는 했지만 왠지 의지하고 싶지 않다. 동네에 위치한 낮은 산 정도는 혼자 힘으로 정복하고 싶다.

이 정도는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인 것인가? 표지판도 보지 않고 산 지도 역시 보지 않는 것은 나를 믿어보고 싶은 내면인 것인가? 나 조차도 알 수가 없다.

길도 모른 체 내려오다 보면 사찰이 있을 때도 있고 동네와 연결된 공원이 나올 때도 있고 대로변, 버스정류장 등 수많은 길이 있다. 산에서 보면 평지와 연결된 길이 무수히 많다. 올라간 길로 다시 내려오는 건 재미없지 라며 피식 웃기도한다. 재미를 위해 매번 다른 길로 내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두 갈레의 길이 나왔을 때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고 다시 또 다른 갈래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 결과들이 다른 길을 걷게 한 것이겠지.
산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이 여러 갈레 이듯 우리네 인생길도 여러 갈래일 것이다. 길을 잃어도 멈추지 않고 발을 내딛을 힘만 있다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나의 보금자리도 늘 그 자리에 있으니 말이다. 내 인생이 산이라면 지금 나의 인생은 어디쯤일까? 표지판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다음번에는 산 입구에서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제그릭요거트 5분 만에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