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냉장고
여섯 살 터울의 두 아이는 사이가 참 좋다.
첫째는 어릴 때 굉장히 예민한 아이였다. 돌 무렵까지 잠투정이 너무 심해서 아이 졸릴 시간이 다가올 즈음이면 나도 같이 두려움에 떨었던 시기도 있었다. 편도가 잘 붓는 탓인지 한 달에 일주일씩은 열이 올라 일 시작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엄마 껌딱지여서 어쩌다 한번 친정에 맡기고 친구 만나러 나갈 때면 대성통곡을 하고 엄마 언제 오냐고 전화를 해대서 마음 편하게 외출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는 둘째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도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내 삶도 좀 편해졌다고 느끼던 시기 둘째가 찾아왔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6년을 살았기에 그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는 첫째가 걱정되어 한번은 이렇게 물었었다. "그런데 연아야, 동생 태어나고 사람들이 동생만 귀엽다~ 예쁘다~ 하면 어떡해?” 그랬더니 "괜찮아. 내 동생인데! 내 동생 칭찬하면 나도 기분 좋지!" 이러는 게 아닌가. 와~ 너무 감동했다. "응 그렇지. 엄마도 사람들이 연아 칭찬하면 엄마가 기분 좋거든." 어린아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둘째 출산 날. 새벽 2시에 진통이 왔다. 남편과 아이 같이 깨워 같이 병원으로 출발했고, 친정엄마한테는 병원으로 와서 첫째 아이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아뿔싸. 둘째는 진행이 빠르다더니 이렇게 빠를 수가. 무통주사도 맞지 못하고 도착 한 시간 만에 숨풍 나와버렸다. 친정엄마가 도착했을 때 난 이미 출산 준비에 들어갔고 그래서 첫째 아이도 갓 태어난 동생을 함께 맞이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초록색 천에 돌돌 쌓여 나온 핏덩이 동생. 동생의 탄생도 함께해서일까. 고맙게도 동생을 참 많이 아껴주고 예뻐해 준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둘은 참 많이 의지한다. 큰 아이는 놀이터에서 친구들 만나면 꼭 동생 앞세워 데려가 인사시키고 같이 논다. 귀여운 동생을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다나. 겁돌이 둘째는 만들기 체험 같은 거 할 때, 놀이기구를 탈 때 혼자는 못해도 누나가 같이 하면 한다고 한다. 마마보이가 아니라 시스터보이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방학특강으로 보낸 스포츠학원에서 큰 아이가 매일 포인트를 받아 간식을 사 먹는다며 꼬마솜사탕과 뿌셔뿌셔 과자를 사들고 왔다. 동생과 반씩 나눠먹으며 아~ 맛있어~ 행복해~ 하며 단맛을 음미하던 첫째가 갑자기 자기도 동생한테 만들어줘야겠다며 열심히 작업에 돌입한다. 하얀 도화지 붙이고 흐느적거리지 않게 두꺼운 종이도 덧대고, 창문 모양 뚫어 투명시트지 붙이고 폼폼이로 손잡이 만들어 문도 완성시키고. 포인트 종이, 지갑, 그리고 간식들 몇 개 넣어놓고 <간식 냉장고>를 만들었다.
- 누나 피아노 치는데 옆에 앉아서 봐주면 100점
- 영어책 읽으면 100점
- 울지 않고 유치원 가면 150점
- 반찬 남기지 않고 골고루 잘 먹으면 100점
- 누나 말 잘 들으면 50점...
누나는 매일 자기 전 하루 포인트를 정산해서 나눠주고 동생은 지갑에 소중히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점수가 쌓이면 간식을 사 먹는다.
3주 방학 후 유치원 개학한 둘째. 누나는 집에 있으니 자기도 유치원 안 간다고 떼쓰던 아이였는데, 포인트와 간식 냉장고 덕일까. 배웅해 준 누나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하며 버스에 올라탄다. 둘이 알콩달콩 잘 노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오른쪽에는 큰 아이, 왼쪽에는 작은아이 끼고 자는 순간이 참 행복하다. 아이들 재우며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에 잠시 깨서 할 일 하다가 지치면 또다시 잠을 청하는데 패밀리 침대 위의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운데에 끼여서 자는 그 순간.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둘 낳길 잘했어. 고맙고 사랑해 우리 예쁜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