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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24. 2024

내 안의 프레드릭을 찾아서

저녁 6시. 보통 주말이었다면 딸아이와 한창 야외 활동을 할 시간이다. 하지만 보슬보슬 내리는 비로 인해, 이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처 풀지 못한 주중의 피로에, 비까지 더해지니, 현관에서 침대까지 가는 길은 중력과의 싸움이다.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지자 구름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이대로 읽다 만 책장을 넘기다 잠이 들고 싶다.     


“엄마!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좀 봐. 꼭 둘이 춤을 추는 것 같아. 빗소리도 너무 포근해. 이리 와봐!”

역시 육아란 늘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다. 

‘휴... 가만히 옆에 앉아 있는 정도야 할 수 있지.’

납이라도 달린 듯한 사지를 억지로 끌어 딸아이 옆 의자에 앉았다. 시선은 거실 창밖의 부슬비를 향하고 있지만 초점은 없다. 창 너머의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다. 마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따금씩 유리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물방울이 같은 시공간에 있음을 일깨워 준다.     


내게는 빗방울이 나뭇잎 위에서 춤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자장가처럼 포근한 멜로디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만이 우리 둘을 감쌌다. 딸아이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 보였고, 나는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한가함이 불편했다. 순간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사랑아, 『프레드릭』 읽어줄까?”

어떤 형태로든 정적을 깨야만 했다. 이것도 병일지도 모르겠다.     


『프레드릭』은 오래된 돌담 옆 헛간에 사는 들쥐들의 이야기이다. 다른 들쥐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쉬지 않고 먹이를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다른 일에 몰두한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은 햇살뿐만 아니라 색깔과 이야기도 모은다. 마침내 겨울이 되고, 시간이 흘러, 모아둔 먹이가 부족해지자 들쥐들은 기운이 떨어진다. 친구들은 프레드릭이 그동안 무엇을 모았는지 보여달라고 한다. 프레드릭은 그동안 수집한 햇살과 색깔,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한다. 친구들은 눈을 감고 프레드릭의 이야기를 듣는다.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프레드릭의 이야기는 그들을 따뜻함과 다채로운 색깔과 매혹적인 이야기로 안내한다.      


왜 이 순간 『프레드릭』이 떠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딸아이에게는 프레드릭의 모습이 보였지만, 내게는 열심히 먹이를 모으기에 바빴던 들쥐들의 모습만 있었다. 삶의 분주함 속에서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가끔은 나 자신을 잊기도 했다. 끝없는 책임과 요구에 쫓겨, 비 내리는 오후의 고요한 고독조차 즐기지 못하는 삶이었다. 프레드릭 같은 딸아이를 통해,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음미하는 것, 매일 나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눈치채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림책을 집어 들었을 때, 책의 맨 앞 면지에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이 필기체로 빽빽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책을 펼치자마자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 촘촘한 텍스트로 책을 시작한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책을 덮고 나니, 이것부터가 그림책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삶이 단순히 먹이를 열심히 모으는 빽빽함 그 이상임을 전달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프레드릭은 왜 다른 들쥐들과는 다르게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았을까?”

“처음에는 그냥 게을러서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프레드릭은 먹이를 열심히 모으는 친구들을 보면서, 먹이 외에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아.”

나는 가끔 저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한 권의 책만큼 신통방통할 때가 있다.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식량을 모으느라 분주한 가운데, 그는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다른 들쥐들이 그의 특별함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주위 시선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스스로를 믿고, 자신에게 충실했다.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내적 만족을 찾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프레드릭처럼 자신만의 역할과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희망이 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친구들이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고 말하자, 프레드릭이 “나도 알아.”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프레드릭이 자신의 가치와 행동에 대한 의미를 이미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들의 인정이나 칭찬에 의존하지 않았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에 진심을 담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강한 내적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내면의 자신감은 우리가 용감하게 도전에 맞서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디딘 초보 작가로서, 프레드릭의 삶을 떠올려본다. 그가 햇빛을 모으고 꽃잎과 나뭇잎의 아름다운 빛깔에 취했던 것처럼, 나도 삶에 흠뻑 젖어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앞으로도 부족할 내 글을 통해, 우리가 서로 얽혀 삶을 여행하고 있음을 느끼며, 서로가 연결되어 가기를 바란다.     


딸아이에게 물었다.

“사랑이는 다섯 마리 들쥐 중에서 누구랑 가장 닮은 것 같아?”

“난 가운데 있는 친구가 마음에 들어. 너무 많은 먹이를 모으지도 않고, 프레드릭처럼 대책 없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도 아니야. 딱 한 개만 들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적당히 하는 게 필요해.”

적당히 한다는 건 균형이 있는 삶을 뜻하는 걸까? 그녀가 나보다 10년은 더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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