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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Sep 16. 2024

이제 차례도 못하겠다.

말속의 가시를 찾아라.

명절이라 시댁에 와 차례상 준비를 하는데에 빠질 수 없는 건 어머님의 푸념이다.

"앞으로는 차례도 못 지내겠다!"

에에? 아버님이랑 다투셨나? 일부러 우리에게 힘을 더 넣어달라고 지금 이야기를 꺼내시는 걸까?

어떤 속내인지 파악이 되지 않을 땐 조용히 못 들은 척 요리를 해본다.

"시금치가 한단에 만원이더라. 이것 봐. 이렇게 시금치도 작고 얼마 없는데 만원이라니 말이 되니?"

"아~ 명절엔 물가가 더 오르긴 할 텐데.. 이건 좀 심하네요."

그제야 어머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었다. 최대한 버리는 것 없이 싹싹 긁어서 음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코를 나물에 박을 듯이 가까이 대고 샅샅이 빠진 시금치를 찾는다.

"어머, 무는 왜 이렇게 매워. 이래서 탕국 끓이면 망하는 거 아니야?"

"아직 날이 더워서 여름 무인가 보네요. 여름무가 맵고 맛이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날이 왜 이모양인지 이러다 겨울 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네.... 그러게요."


"이렇게 더운 날 너희 아버님은 어딜 이렇게 다니신다니?"

갑자기요? 아버님 행방을 제가 알까요? 저 온 지 1시간도 안된 것 같은데요... 어머님의 물가상승은 이 말을 시작하기 위한 에피타이저였나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음식을 하면서 나오는 이야기는 몇 달째 묵어둔 아버님 흉이다.

"어머, 정말요? 어머님 서운하셨겠다."

"아버님이 왜 그러셨대요."

언제나  레퍼토리는 비슷하기에 나의 맞장구도 딱히 별다를 게 없다. 15년째 정말로 와 서운하셨겠어요로 버티고 있는 중인데 어머님이 신이 나서 이야기보따리가 자꾸 나오는 거 보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써도 될듯하다.

"그건 1호 아빠랑 똑같네요. 오빠도 매번 그러거든요."

은근슬쩍 남편을 얹어본다.

"아니야, 00은 다르지. 이 냥반이 문젠거지 00는 착해 빠져서 그런 거야."

예예~ 그런 거죠? 감히 제가 아드님을 같은 부류로 엮다니요. 제가 또 눈치가 없었네요 . 언제쯤 피는 못 속인다며 내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시려나... 며느리는 그날만을 고대하며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린다는걸 아시려나?


아버님이 들어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어머님은 부리나케 물가 이야기로 화제 전환을 하신다.

"이 생선 얼마인 줄 아니? 진짜 이제 차례도, 제사도 하지 말까 봐. 다 먹지도 않고 버리는 게 반인데... 너무 비싸."

"그러게요.. 생선 마리수라도 줄여보면 어떨까요?"

"안돼. 이게 한 마리씩 다른 조상들한테 올리는 거라 뺄 순 없어."

아... 이번에도 내 생각을 슬쩍 얹는데 실패했다. 어머님의 제사 없앤다 이야기는 결혼 초부터 들었던 거 같은데.... 진짜 없애시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장 보는데 돈이 많이 들었으니 눈치껏 용돈을 준비하라는 눈치를 주시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어머님의 말속의 가시를 찾아 발라대는 데에 초짜인가 보다.

매번 가시를 찾다 찔리기만 한다.


어머님, 그냥 편하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꺼내어 주시면 안 될까요?

요리하랴, 머리 쓰랴 너무 힘듭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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