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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Mar 13. 2024

똑똑똑, 학생입니다.

아들의 깜냥

"엄마,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조금만 놀다 갈게. 딸칵"

오늘도 어김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는다. 대체 왜 남자들은 전화예절을 지키지 않을까? 요즘 학교에서는 안 가르치나? 생각해 보니, 내가 몇 번이고 얘기했었으니 안배 운 건 아니다. 그렇게 여러 번 알려줬는데도, 매번 전화를 받을 때마다 "여보세요" 조차 없이 요점만 간단히 한 문장만 말하고 끊는 우리 집 남자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국어시간에 한 줄 요약을 그렇게 해봐라.)

네가 놀고 온다니 엄마에게는 조금의 자유시간이 더 생겼구나. 야호~! 일어나려던 몸을 애써 다시 눕히며 보다만 드라마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노는 시간은 아이만큼이나 어른의 시간도 빨리 간다. 한편을 다 보지 못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녀왔습니다~!"

"어. 재미있게 놀았어?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가서 씻어."

평일에는 TV시청이 금지되어 있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몸 뒤로 숨기고는 어색한 미소로 아이를 맞이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드라마를 눈치 보며 봐야 한다니 좀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대한민국 엄마들의 삶이 다 이러한 것을. (아닌 집도 있긴 하겠지?)




아이가 씻는 동안 부지런히 간식 준비를 한다. 오늘은 고구마를 에어프라이기에 돌려 우유와 함께 먹을 예정이었다. 수업 후 바로 올 줄 알고 시간 맞춰 구워놓았는데 혹여나 고구마가 식지는 않았는지 손을 대어 본다. 다행히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아이가 먹기 좋게 고구마를 자르고 우유를 컵에 따라 놓자 신나게 노래 부르며 샤워를 한 녀석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온다.

"오늘 대박 사건이 있었어."

"대박사건? 뭔데? 싸웠어?"

"아니."

"그럼 뭔데?"

"그게 뭐냐면..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얘기해 줄게. 잘 들어봐."

"아냐 아냐 아냐. 먼저 몸 닦고, 옷 입고, 머리 말리고!!! 너 발가벗고 얘기할 참이야?"

"아, 맞다. 그렇지? 금방 옷 입을게. 기다려. 진짜 엄청난 이야기야."

아이가 흥분상태로 대충 물기를 닦고 옷을 입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많은 상상이 오고 갔다.

'대체 무슨 일이 길래 저렇게 흥분을 했지? 싸운 건 아니랬으니 다행이고... 기분이 좋은 거 보니 혼난 건 아닌가 보다. 그럼 또 누구한테 장난을 쳤나? 아니면 축구를 했는데 이긴 건가?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데 왜 불안하지?'

다양한 예측을 하고 있다 보니 아이가 어느새 식탁 앞에 앉았다. 갈증이 났는지 우유부터 한잔 들이키며 나의 표정을 살핀다.

"엄마, 이제 얘기해 줄까?"

"응. 왜~ 무슨 일인데?"

"아니~그게 오늘 애들이랑 학교 끝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로 했거든?

 근데 형들이 먼저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학교 뒤 공터로 갔는데 거기도 다른 누나랑 형들이 놀고 있더라?"

"그래서 못 놀았어?"

"못 놀았으면 지금 왔겠어~? 어디서 놀았게~??"

이 질문에 덜컥 겁이 나는 건 아들맘의 특징이리라.. 두렵지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평범한 대답을 내놓는다. 제발 그게 답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놀이터?"

"땡! 정답은 강당이야."

"강당? 그래 강당에서 놀면 되겠네. 엄마도 학교 다닐 때 강당에서 많이 놀았어."

"아, 진짜? 우리는 안되는데...?"

"뭐? 안돼? 그런데 어떻게 놀았어??"

아... 이래서 이 녀석이 신이 났구나. 안되는데서 놀다가 왔구나... 그럼 그렇지. 안 걸려서 기분이 좋은 거였어. 허탈감과 괘씸함 그리고 습관처럼 나오는 한숨을 쉬며 아이를 따라 우유를 한 모금 들이켰다. 우유가 아니라 맥주였음 더 좋았을 테지만.

"엄마, 우리가 강당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아?"

그래. 너의 성공담 이야기 드러나보자. 한숨과 버럭이 더 이상 나오질 않도록 표정관리와 감정조절을 하기 위해 고구마를 제일 큰 걸로 한 입 베어 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놀데가 없어서 집에 가려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강당문이 열려있는 거야.

그래서 슬쩍 봤는데 아무도 없더라고. 그래서 애들한테 여기서 놀자고 내가 말했거든?

엄마, 근데 걔 알지? G. 걔는 엄청 모범생이잖아. G가 자기는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논다고 안 들어간다는 거야.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다녔는데 선생님들이 아무도 없더라?"

"그래서 그냥 강당에 들어갔어?"

"아니. G가 안 들어간다고 했다니까? 같이 놀기로 했는데 걔 빼놓고 놀 순 없잖아. 의리 없게."

규칙을 어기는 녀석이 의리를 찾는 다니 우습지만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이는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어깨가 천장에 닿을 만큼 으쓱해지며 대답을 했다.

"내가 누구야~ 잔머리 대장이잖아. 바로 좋은 생각을 해 냈지!"

"좋은 생각? 그게 뭔데?"

"교장실에는 교장선생님이 항상 계시거든. 그래서 교장실에 가서 허락을 맡으면 되잖아.

더군다나 학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야? 교장선생님이지! 그러니까 교장선생님한테 허락받으면, 나중에 놀다가도 다른 선생님이 뭐라고 할 때에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정말 좋은 생각 아니야?"

"그래서 교장실에 갔다고? 너희끼리?"

"나는 다 같이 가서 허락을 맡을 생각이었는데, G랑 Y가 무섭다고 안 간다는 거야.

시간은 자꾸 흘러서 놀 시간이 줄어드는데 답답하더라고. 걔네를 설득할 시간에 내가 혼자 다녀오는 게 빠를 것 같아서 나 혼자 간다고 했더니 M이랑 S가 의리 있게 같이 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끼리 셋이 갔어."

"교장실에? 가서 인사는 드린 거지? 교장선생님은 계셨고? 네가 누군지는 밝혔어?"

교장실에 갔다는 전개에 당혹스러웠다. 대부분 아이들은 선생님을 찾다가 없으면 몰래 놀다가 운나빠서 걸리면 귀가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 아닌가? 몰래 놀다가 교장선생님한테 걸리는 건 상상 가능한 시나리 온데, 놀기 위해 먼저 교장실에 가는 시나리오는 평범하다고 하기엔 너무 대범하지 않나? 대체 얘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지 이럴 때마다 신기하다.

"당연하지. 엄마는 아들을 뭘로 보고!! 먼저 들어가기 전에 노크부터 했지.

 그랬더니 교장선생님이 "네!" 하시더라고. 그래서 큰 소리로 "학생입니다!"라고 말했지. "

"아~ 이름을 말한 게 아니고?"

"당연하지. 여기서는 이 학교 학생의 신분으로 간 거니까 학생이라고 밝히는 게 맞잖아."

"어. 그래그래. 그래서 들어갔어?"

"응. 학생이라고 하니까 교장선생님이 "들어와" 하시더라고.

 그래서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 비싼 식물 있잖아.

 상감청자 같은 거에 풀때기만 있는 거. 거기에 물 주고 계시더라?"

"아하하하. 난초 말하는 거구나?

"그래. 난초. 그거 그거. 아무튼 우리 쳐다보지 않고 왜 왔냐고 물으시길래 좀 서운했는데,

그래도 빨리 놀아야 하니까 그냥 얘기했어. 강당에 아무도 없는데 놀아도 되냐고. 그랬더니 안전하게 놀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재밌게 놀고 왔지?"

"그런 거구나. 잘했네."

"나 멋있지? 애들이 나보고 대단히 댔어. 용기 있대. 다들 교장실 가는 게 무서웠었나 봐. 난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다들 왜 겁을 먹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 오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였다고!"

"우리 아들 웃으며 들어온 이유가 있었네. 수고했어. 얼른 간식 먹어."

맛있게 고구마를 먹는 녀석을 바라보며 아이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매번 쑥스러워 동생을 앞세우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친구들보다 앞장서서 교장실까지 찾아가는 깜냥이 생겼는지 기특하기도 하고, 이런 아이가 흔치 않을 텐데 교장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걱정도 되었다. 아이가 학년, 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데에 안도를 하며 다음부터는 디렉트로 수장에게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참, 엄마. 내가 그때 그거 말했나?"

"뭐?"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 때 개똥이 너무 많아서 놀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관리사무소 가서 똥 치워달라고 내가 직접 얘기했던 거? "

"너 관리사무소도 찾아갔었어?"

"응! 나 다 컸지? 엄마 없이도 이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아... 이게 맞는 건가? 틀린 건 아닌 거 같은데 맞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동안 남편과 내가 당당히 우리의 권리를 찾자고 민원 좀 넣고, 건의 사항을 했던 게 아이의 눈에 멋있어 보였나 보다. 어른 없이 140cm 겨우 되는 초등학생이 가서 건의하고, 허락받다가 괜한 욕이나 먹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이제 아무것도 못하겠다. 식당 가서 음식이 잘못 나와도 그냥 먹고, 아파트에서 관리비가 잘 못 계산되어도 그냥 내어야 할 판이다. 가정교육은 해도 해도 모르겠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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